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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의 살인, 어떻게 일어날까?극한 상황 속에서의 전쟁심리학
  • 이예지 기자
  • 승인 2016.05.15 00:20
  • 호수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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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무기가 될 것이다. 너희는 지금 인간이 아니다.
해병은 로봇을 바라지 않는다. 두려움 없는 킬러를 원한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에서 교관이 훈련병들에게 한 말이다. 이 영화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잔인한 과정을 그려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영화 속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도 전쟁터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살인을 저지른다.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병기로 변하게 되는 걸까? 이에 인간이 전쟁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세 가지 관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영화포스터

죽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전직 미군 중령이자 심리학 작가인 데이브 그로스먼(Dave Grossman)은 자신의 저서 『살인의 심리학』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면서 겪는 내적갈등 과정을 ‘살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살해론에 따르면, 병사들의 무의식 속 ‘이드(id)’, ‘자아’, 그리고 ‘초자아’는 극도의 긴장감에 서로 뒤엉켜 눈앞에 있는 적군을 죽여야 할지 말지에 대한 판단에 혼란을 일으킨다. 그중에서도 ‘이드’와 ‘초자아’의 충돌로 인해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데 본능적으로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된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품고 있는 ‘이드’는 병사들에게 적군을 무자비하게 죽이라고 명령한다. 반면, 사회적으로 옳은 선택과 이상을 반영하는 ‘초자아’는 살인이 사회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판단 내린다. 이때 인간의 선택을 좌우하는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의 갈등 사이에서 다방면의 통찰을 거쳐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는 병사들이 겪는 내적갈등이 조금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병사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타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평소엔 살인이 사회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던 ‘초자아’가 자기합리화 단계를 거치면 ‘살인이 전체 집단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도, 두 집단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병사들은 상대방을 ‘적군’으로 인식하며 살인의 필요성에 수긍하고 살인 자체에 거부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저지르는 살인


전쟁터에서 살인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은 윌리엄 맥두걸(William McDougall)의 ‘본능이론’을 통해 해석될 수 있다.
맥두걸의 ‘본능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본능을 갖고 있으나, 외부적인 요소가 적용 될 경우에는 예외가 발생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병사들은 그 ‘예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동료를 배신할 수 없어 배신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동료압력(peer pressure)과 위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책임감 등의 외부 요인들이 작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극도의 긴장과 공포가 존재하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 적군의 손에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적들이 공격하기 전에 그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는 생사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지극히 감정적이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매 순간순간 생명의 연장에 절박하게 집착하는 병사들이기에, 지금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적군을 죽이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보다 무서운 집단 살인

독일 군의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또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로렌츠는 소련군에 잡혀 4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지내면서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로렌츠에 따르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동물과 유사하다. 하지만 인간은 지성과 이성을 통해 공격성을 억누를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지성과 이성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전쟁 상황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 중에 하나는 병사들이 개개인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집단에 의지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집단에 의존하는 개인들은 살인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 이뤄진다고 믿게 된다. 개개인에게 내재돼있는 공격적인 에너지가 집단의 형성과정과 결합하면 그 공격성이 증폭된다는 것이 바로 로렌츠의 ‘공격성향론’이다. ‘공격성향론’에 따르면 병사들이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면, ‘대량학살’과 같은 더 큰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
대량학살은 집단적 차원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집단 내 속한 개인들이 더 과감하고 자극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병사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소속감을 갖고 자신의 집단과 상대편의 집단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이 과정에서 병사들이 적군을 향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심리적 거리는 개인과 타인 사이의 공감능력을 뜻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문화적 거리와 도덕적 거리다. 문화적 거리는 본인이 속한 집단과 상대 집단의 인종 및 민족적 차이를, 그리고 도덕적 거리는 본인이 속한 집단의 계급차이를 말한다. 전쟁 속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려면 이러한 심리적 거리의 붕괴 과정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문화적 거리가 제거되면 적군은 같은 종족이 아닌 ‘열등한 존재’로 합리화되기 때문에, 같은 종을 죽인다는 사실에서 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줄어든다. 도덕적 거리는 본인이 속한 집단이 더 우월하다는 믿음과 앙심이 담긴 보복 행위로 인한 것인데, 자신이 속한 집단의 대의를 위해 적군에게 행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적군의 죄가 자신의 집단보다 더 크며, 보복 행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전쟁에서 병사들이 살인에 대해 거리낌이 없어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처럼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인을 하는 데 주춤하게 되지만 전쟁터라는 극한 상황에서는 살인의 필요성을 수긍하게 된다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적군들을 죽인다는 해석도 있다. 또한, 개개인의 폭력성이 집단적으로 더해져 더 큰 폭력을 불러 대량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관점이든 병사들이 적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를 할 때까지 수많은 내적갈등과 심리적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쟁은 개인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병사들 내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와 관련한 읽을거리로는 『살인의 심리학』, 『전쟁을 생각하다』, 『전쟁의 심리학』등이 있다.


이예지 기자
angiel@yonsei.ac.kr
<자료사진 flickr.com>

이예지 기자  angie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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