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양적완화’는 정말로 한국의 양적완화인가

▲ 김종민(철학·14)

 

정말로 영원한 왕국은 없는 것일까. 이 말이 떠오를 정도로,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켰고 앞으로도 그 자리를 수성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대한민국의 조선 해운 산업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중국에 따라잡힌 기술력과 상대적으로 비싼 단가로 인해 국제 경쟁력조차 후순위로 밀려버렸으며, 내부적으로는 기업들의 과잉 투자와 몸집불리기로 인해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정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중공업 성장에 대한 신화와 성과에 도취되어 있던 관련 업계의 사람들은, 결국 차가운 실직의 바람을 맞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실직과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전체적인 시장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제조업 위주의 성장을 지속했고, 오늘날까지 산업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인 중화학공업이 국가 경제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결국 대표적인 중공업인 조선 산업이 휘청거린다는 것은, 그 지지대를 받치고 있는 국가 경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 해운산업의 몰락이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파장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에서는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라는 것을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굳이 ‘한국형’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 것일까. 알파고(인공지능), 인공위성 심지어는 민주주의까지 한국형으로 변형하자는 말이 많았고 그 결과는 매우 우스꽝스러웠기에 ‘한국형’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불안하게 들린다.


본디 양적완화는 미국이나 일본, EU에서 시행되었던 정책을 개념화한 것이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을 말한다. 즉,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서 금융자산을 사고, 그로 인해서 풀린 화폐가 전체적인 시장에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급된 화폐는 시장을 유동적으로 만들고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한국형 양적완화’는 이와는 다르다. 대상이 ‘시중’이 아니라 특정 업계의 기업들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서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는다는 사실만 같을 뿐, 사실상 양적완화하고는 아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기업구조가 이중적이므로, 결국 이렇게 생산된 자본은 관련 대기업에게 돌아갈 것이다. 결론만 놓고 생각하면, 정부가 특정 기업을 위해서 돈을 몰아주는 셈이 된다.


자연스럽게 양적완화도 아닌 이 ‘한국형 양적완화’가 정말로 이러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 지에 의문을 품게 된다. 조선, 해운업계의 침몰은, 한국 경제에 큰 해일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러한 방식으로 기업의 구조조정을 정부가 도와야만 하는 것일까. 조선업계의 회복을 위해 ‘한국형’으로 제시한 이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파장이 오히려 더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특정 산업과 기업에 대한 정경유착, 공정성과 형평성의 문제, 새로 생산된 화폐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들을 골고루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 한국형의 정책은 이미 앞서 보았던 다른 ‘한국형’의 이름을 가진 것들의 절차를 따라가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말 대한민국의 실정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조선 해운 기업의 위기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범시장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고, 다양한 정책들이 가진 장단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정부가 어떠한 방침을 갖고 행동하든지 그것에 대한 국민적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실패한 ‘한국형’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원론적인 결론이지만, 정부가 이러한 원칙을 갖고 있을 때, 진정으로 ‘한국의 상황에 맞는’ 방안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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