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특집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 선전(Propaganda)전쟁 동원의 명분부터 현대 민주주의 여론 형성의 핵심 수단까지
  • 정서현 기자
  • 승인 2016.05.14 18:27
  • 호수 1773
  • 댓글 0

지난 2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두 국가 간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전투를 벌여 30여 명이 사망했고, IS의 프랑스 파리 테러와 그에 대한 프랑스의 시리아 락까 보복 공습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악한 평화는 없고 좋은 전쟁은 없다는 말도 있듯이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을 보는 우리는, 그 전쟁들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탄식하면서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전쟁은 단어 자체만으로도 공포와 반감을 느끼게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동원되고 그 논리에 설득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을 이끌고 내 편으로 만드는 설득의 기술, ‘선전’에 대해 알아보자.

조국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 전시 선전


선전(propaganda)이란 상대방의 태도나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며, 진실과는 관계없는 의도적·계획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상징 등의 수단이 사용되며 메시지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개인이나 조직의 활동, 업적 등을 널리 알리고 호감을 갖도록 하는 홍보(Public Relation)와는 달리 선전은 이념·주장을 전파·주입하는 성격이 강하다. 선전은 보통 전시 상황이나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집단의 선동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이었던 미국에서부터다.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1916년 반전 공약으로 당선됐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미국은 타국 간의 전쟁에 싸우러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에 윌슨은 ‘연방공보위원회’라는 선전 기관을 설치해 사람들을 선동한다. 연방공보위원회는 ‘4분 선전가(Four Minute Men)’라는 하부 조직을 꾸려 미국에 유리한 선전 정보를 전했다. 이 선전 정보는 영화관에서 필름 한 권(reel)이 돌아갈 때마다 상영돼 8개월 동안 1천100만여 명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반(反)독일 감정 주입으로 몇 달 만에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고, 미국의 참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이어졌다.

▲ 알프레드 레테,《조국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1914). 신체 묘사가 생략된 얼굴, 정면을 응시하는 두 눈, 앞을 향해 가리키는 손가락 등 직접적인 화법으로 구성된 이 포스터는 개인과 국가의 돈독한 유대 관계를 강조했다.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Louis Bernays)도 당시 연방공보위원회에서 활약했다. 버네이스는 대중심리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결합해 최초로 선전과 홍보에 이용했고, 홍보를 과학적으로 정립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성공적으로 선전을 사용한 것을 기점으로, 홍보 산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전시 선전과 정치적 이미지 만들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동안 미국의 선전 전략을 주시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다. 1930년대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데다 경제 불황, 대량 실업까지 겹쳐 사회적인 위기 상태였다. 이에 히틀러는 나치당을 중심으로 하나의 국민성을 강조하고, 독일 전통적으로 뿌리 깊은 반(反)유대인 의식을 이용해 선전 전략을 펼친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있었던 파시즘이다.

히틀러는 그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헌신이며, 대중이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는 것은 일종의 광란 상태’라고 전한다. 이처럼 파시즘의 선전은 사람들의 감정과 신체적 반응을 부각시키고, 단순히 개인들을 규합하기보다는 전체주의적인 국민성을 강조한다. 당시 문맹 비율이 높았던 대중에게는 이미지로써 선전 전략을 펼쳐야 했고, 대량 복제가 가능해 유포가 쉬운 포스터 또한 선전의 적절한 매개체로 사용됐다. 여기에 히틀러 정권은 각기 이해타산이 다른 대중들의 관심사를 공략하기 위해 중산계급에는 볼셰비즘*의 타파를 외치고 노동계급에는 노동의 영웅화와 직업의 보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지지를 얻는다. 이는 마케팅으로 따지면 전체 시장을 세분화해 집단별로 적합한 마케팅 전략을 실시하는 표적화(targeting) 방법과 비슷하다.

또한, 파시즘 정당들은 제복의 디자인이나 휘장, 국가적 상징 등 시각적인 면에 주의를 기울였다. 히틀러의 경우 다양한 동작과 연설에 필요한 언어구사 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연극배우에게서 수업을 받기도 했으며,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될 몸동작과 표정을 규칙화했다. 행사를 개최할 때도 히틀러는 사람들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하고 자신은 군중 한가운데 우뚝 서서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자처했다.

▲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의지의 승리》(1934) 중 한 장면. 행사무대가 어떻게 이미지로 구성된 상징적 문양으로 조직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것은 무질서한 대중들이 하나로 통일된 국가세력으로 변화되었음을, 단상에 서 있는 히틀러는 성직자나 신에 버금가는 이미지로 형상화됐다.

일방적 선전에서 관계 중심적 홍보로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선전은 대중적인 용어가 됐지만 동시에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의미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국민은 자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사용한 거짓말과 과장을 알게 됐고 파시즘 정당들은 극단적인 전체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학살을 일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선전’이라는 용어는 새빨간 거짓말과 동일시됐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
- 에이브럼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

전쟁 수행 과정에서 핵심 수단이 된 선전은 이후 학문적인 연구와 실제적인 적용이 활발히 이뤄졌다. 그리고 선전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홍보라는 형태로 변화해 다양한 분야에서 퍼져나갔다. 일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인 선전과 달리 홍보는 관계 지향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뜻한다. 이는 정치·문학뿐 아니라 그린피스의 환경보호와 평화증진 캠페인, 아동구호단체의 활동이나 후원 모금과 같은 자선사업에도 이용되고 있다. 버네이스는 저서 『프로파간다(Propaganda)』에서 ‘선전은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존재하며, 우리의 세계관을 바꿔놓는다.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그 효율성을 인정받으면서 선전의 사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흑인민권운동단체와 노동조합을 위한 홍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고, 페미니스트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우중(愚衆) 민주주의를 우려해 선전 기술은 소수의 지도자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버네이스는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해 선전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선전의 필연성은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네이스가 바라보는 선전과 홍보관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여론 정치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대중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아무리 명분이 훌륭한 운동도 대중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 실패하기 쉽다. 전쟁으로 인해 발전됐지만 동시에 오명을 쓴 ‘선전’이 과연 사회 속에서 이로운 전략으로 쓰일지, 또 다른 전쟁을 낳게 할 것인지는 이제 이 수단을 쓰고 접하는 우리에게 달렸다.

*볼셰비즘 :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급진파인 볼셰비키의 정치적 사상 및 이론. 의식 있는 소수정예의 직업적 혁명가들에 의한 중앙집권화된 당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들로 구성된 혁명당에 의한 폭력혁명과 독재정치의 이론을 펼쳤다.

글 정서현 기자
bodowoman@yonsei.ac.kr
<자료사진 유튜브, Wikimedia commons >

정서현 기자  bodowoman@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