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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변호사, 세상을 변호하다박주민 은평갑 국회의원 당선인을 만나다
  • 김홍준 수습기자
  • 승인 2016.05.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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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욕심 없이 오로지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맞서는 변호사 이야기다. 드라마 속에서만 있을법한 이 주인공은 우리 주위에도 있어왔다. 세월호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곁에 있어온 ‘거리의 변호사’, 박주민 20대 은평갑 국회의원 당선인 만났다.

   
 

약자의 공간 철거촌에서 변호사를 결심하다

대학시절 박씨는 철거촌에 있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교육봉사와 같은 권익보호 활동들을 활발히 했다. 소위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마주한 문제들과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공장에 직접 들어가 노동자들과 함께 일할 정도로 그는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사회의 모순에 대해 알고자 수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경험을 해보려 노력했다.
박씨가 변호사가 되기를 결심한 시기는 대학생 때였다. 대학입학 이래로 꾸준히 철거촌 불우이웃을 돕는 봉사를 했던 박씨. 그는 4학년이 되던 해 신도림역 부근 철거촌에서 법대 동기들과 함께 철거촌 주민들의 집을 청소하고, 벽지를 발라주고, 아이들에게는 공부를 가르쳤다. 그러던 중 구청장에게 영구 임대 주택의 입주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철거촌 주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청장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하지만 구청장의 만나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박씨와 철거촌 아이들은 구청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4시간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청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내가 변호사였으면 만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때가 박씨가 변호사의 길을 걷고자 다짐한 첫 순간이었다.

‘세월호 변호사’, 세상을 변호하다

박씨는 약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해 왔지만, 그의 대표적인 수식어는 단연 ‘세월호 변호사’다. 그는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의 담당 변호를 맡아오고 있다. 그 계기는 단순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이미 팽목항에 도착한 지인들이 그에게 함께하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약자를 돕는 것은 박씨에게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를 향하던 세월호는 침몰했고, 476명의 승객 중 295명이 사망했다. 그 중 상당수가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의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그 아픔은 더 컸다. 세월호 참사는 당시 우리나라에 큰 충격과 함께 개선해야 할 많은 문제점들을 안겨줬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박씨는 ‘공동체 의식의 부재’에서 찾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사회 공동체 의식이 이미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느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일부 사람들이 배상금 문제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등의 논란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박씨는 “우리사회 안에서 공동체가 해체돼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느끼던 감수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유가족을 변호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많은 일들을 했지만 성과가 크지 않아 유가족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큰 성과를 내지 못해 안타까웠던 것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사회 내에서 많은 논란이 이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일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왜곡시키려 하는 것이 제일 속상하다”며 “이를 ‘특별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려고 한다’며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는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관리 감독의 부재와 여러 사회문제들이 얽혀 발생한 인재(人災)인 세월호 참사의 문제 해결책은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는 것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의 양심적 운영과 기업에 대한 국가 기관의 관리 감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건에 대한 언론·검찰·경찰의 명확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수행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회에 필요한 법안을 들고 정계에 진출하다

‘세월호 변호사’를 비롯해 다양한 변호사 활동을 하며 그는 변호사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정계에 나아가 근본적으로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 마침 박씨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추천을 받아 ‘영입인재 17호’로 정계에 입문했고, 선거일로부터 25일 전에 공천됐다. 가장 늦게 공천된 데다 연고 없는 지역인 은평구로 공천 받아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카페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을 때의 그 막막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이렇게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박씨를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 중 가장 그에게 힘이 됐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세월호 유가족들이었다. 그들은 ‘세월호 유족’이라는 그들의 수식어가 박씨에게 폐가 될까 두려워 인형 탈을 쓰며 선거를 도왔다고 한다.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그들의 상황에 대해 박씨는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도 숨겨야 하는 그들의 슬픔이 더 큰 원동력이 돼 더욱 당선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도움에 대해 개인적으로 은혜를 갚는 것보다 나라를 위한 일꾼이 돼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선 후 박씨는 그간 변호사 활동을 하며 느꼈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법안들을 구상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공공갈등관리기본법’으로, 정부가 대규모 국책사업을 할 때 해당 지역 주민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통보하는 형식을 바꾸고자 하는 법이다. 이에 대해 그는 “강정이나 밀양에서의 변호사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라며 “또 다시 억울한 주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갈등관리기본법과 같은 절차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가 준비하는 또 다른 법안은 ‘조약체결법’이다. 박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 행정부가 조약을 체결하는 것에 대한 절차법이 없다. 그는 “국회에 보고를 하거나 국민의 동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맺는 조약들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생기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더불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대해서도 그는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경우 선샤인 액트(Sunshine Act)*에 따라 공공기관의 회의를 전부 회의록으로 만들어 공개하게 돼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가 사실상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법률개정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남을 위해 행동하고, 남을 앞서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약자의 곁에서 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정치적 견해를 떠나 본받을 만할 것이다. 앞으로 그의 의정활동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선샤인 액트(Sunshine Act) : 미국의 ‘행정기관 회의공개법’으로 일조법(日照法)이라고도 한다. 이 법은 서두에서 ‘시민은 연방정부에 의한 정책 결정의 자문과정에 관하여 최대한으로 충분한 실용적인 정보를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글 김홍준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김홍준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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