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여성 센터’ 서정화 소장을 만나다

 IMF 외환위기 후 실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야했다. 그 결과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숙인들은 시설에 있는 1만 2천 명과 아직 거리에 있는 2천 명을 합쳐 약 1만 4천 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여성노숙인들의 비중은 약 35%로 빈곤과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아픔에 공감하고 일찍부터 여성노숙인들의 건강 회복과 자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다. 2004년부터 여성노숙인들을 위해 헌신한 ‘열린 여성 센터’의 서정화 소장을 만나봤다.'

여성노숙인들의 독립을 위한 새로운 시작

열린 여성 센터(아래 센터)는 여성노숙인을 위한 응급 임시보호시설로 지난 2004년 개설됐다. 센터는 위기상황에서 거리로 내몰린 여성노숙인과 가정폭력 등으로 가정을 벗어나 갈 곳 없는 아동을 보호해 회복을 지원한다. 또한 재활·자활지원을 통해 노숙에서 벗어나고 사회에 복귀하도록 돕는다.
응급 지원이 필요한 여성노숙인이 센터를 찾아오면 우선 전문 사회복지사에게 상담을 받는다, 서 소장은 “센터에서는 일차적으로 노숙인들의 상담을 진행하고, 개인의 욕구에 따라 다양한 직업훈련을 진행해 경험을 쌓도록 돕는다”고 전했다. 또한 서 소장은 “정신건강보건전문요원이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상담을 진행하여 노숙인들의 정신건강을 돌본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센터에서는 여성노숙인들의 일자리를 알선하고 신용 회복을 지원하며 임대 주택 마련 등의 지원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센터의 또 다른 목표는 독립한 여성노숙인들 대인관계의 안정을 돕는 것이다. 서 소장은 “여성노숙인은 독립을 하게 되더라도, 대인관계가 결여된 상태”라며 “외로움으로 인해 질병이 재발하거나 알코올 문제가 다시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서 소장은 현재 여성노숙인의 대인관계 해결하기 위한 ‘Supportive Housing’이라는 실험적 주거 형태를 연구하고 있다. ‘Supportive Housing’은 여성노숙인들이 센터에서 독립한 뒤 한 빌라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현재 한 곳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서 소장은 이를 확대하는 것을 앞으로의 계획으로 잡고 있다.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한 삶

서 소장은 센터를 이끌게 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서 소장은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한 뒤, 10여 년 가까이 공장의 노동자들을 상담하는 노동 운동을 진행했다. 노동 운동을 마무리하려던 시점인 지난 1997년 경 IMF가 터지면서 많은 회사들이 쓰러졌고,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서 소장이 당시 일하던 작은 공장들의 노동자들은 매우 가난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장의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였고, IMF로 인해 공장이 망하자 일터와 집을 동시에 잃게 된 것이다. 이 때 서 소장은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 센터’라는 기관에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상담하고 지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노숙 관련 일을 하게 됐다. 서 소장은 “이전부터 노동운동을 해왔고, 그 연장선으로 노숙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무려 20여 년 가까이 수많은 노숙인들을 다시 일으키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데에 바친 서 소장.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서 소장은 “그분들이 거리에서의 상처를 극복하고 독립해서 당당히 세상을 살아가시는 모습들을 볼 때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서 소장 또한 노숙인들이 새 삶을 살도록 도와줄 수 있어 행복했지만 때로는 남을 위하는 일에 무게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센터에서 독립해 잘 생활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숙인들이 삶의 고통을 버티기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서 소장은 “내가 그분들과 함께 한다고는 하지만 때론 내가 할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며 “그 한계를 마주하게 됐을 때 제일 괴롭다”고 전했다.

노숙인 없는 세상, 아직 ‘진행 중’

서 소장에 따르면 여성노숙인들이 근본적으로 노숙을 하게 된 이유와, 쉼터에 온 이후 다시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 남성노숙인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남성의 경우 70~80%가 실직으로 주거비 마련이 어려워 노숙을 한다. 여성의 경우 모자 가정은 70~80%가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오고, 혼자 사는 여성들은 그 이유가 더욱 다양하다. 여성도 결과적으로는 주거비 마련 문제로 노숙을 시작하지만, 대게 그 이유들이 남성들보다는 훨씬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예를 들어, 이혼을 한 모자가정의 경우 만약 집안이 부유하지 않으면 주거비 마련이 힘들어 결국 노숙을 선택하게 된다. 혼자 사는 여성들의 경우는 신체·정신적 건강상의 문제, 대인관계 문제 등 노숙의 요인이 더욱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쉼터에 온 이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까다롭다. 서 소장은 “남성의 경우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센터에서 독립하는 방향으로 지원하면 된다”며 “하지만 여성의 경우 일단 건강상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우선적으로 회복시킨 후 일자리를 알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세밀하고 다양한 추가 지원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와 같은 노숙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서 소장은 우선 여성빈곤문제를 언급했다. 서 소장은 “여성노숙문제는 여성빈곤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한다”며 “요즘에는 여성가장가구가 25% 가까이 되지만,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벌수 있는 돈은 남자의 60%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즉, 여성가장들이 훨씬 더 빈곤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이고, 이에 비해 턱없이 비싼 주거비를 지불할 능력이 부족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국 노숙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 소장은 “우리나라에 빈곤한 여성들이 점점 많아지는데도 노숙인들을 위한 시설이나 복지 체제는 전혀 늘어나고 있지 않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에서 자화지원시설을 더욱 늘리고, 전문가들을 여성센터에 배치해 정신보건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근본적으로 노숙이 발생하게 된 비싼 주거비 문제 해결과 정신건강 치료를 받는 것을 자유롭게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서 소장은 무엇보다 “노숙인들의 문제는 예방이 중요하다”며 “국가에서 주거위기대상을 단속하고, 주거비 지원 등을 통해 그들이 다른 길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노숙인들과 함께한 지 어느덧 20여 년이 다 돼가는 서 소장. 그녀는 무엇보다 노숙인들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다시 당당하게 사회로 나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녀의 삶은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를 연상케 한다. 서 소장을 거쳐 갔던 이들에게 서 소장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노숙인들에게 항상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주는 서 소장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박기인 수습기자
신유리 수습기자
천시훈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