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안 오십니까?" 빈번한 예약부도에 한숨짓는 소상공인들


“약속하긴 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다. 이러한 태도는 소비문화에 적용되기도 하는데, 사전연락 없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거나 예약시간 직전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하는 것을 ‘예약부도(No-Show)’라고 한다. 최근 다양한 트렌드를 주도하며 문화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예약문화’도 문화선진국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일까?
 

▲ 예약부도로 인한 5대 서비스 업종의 매출손실은 연간 8조2,8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끊이지 않는 예약부도행태
 

예약부도를 가리키는 노쇼(No-Show)는 원래 항공사에서 사용되던 용어다. 예약한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수수료만 물면 환불이 가능하며, 시간이나 날짜 역시 쉽게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항공업계에서는 예약부도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1년 한국소비자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항공을 이용하는 고객의 예약부도율은 평균 20% 정도이며, 이 경우 해당 자리는 빈 좌석으로 운영돼, 예약고객을 위해 준비됐던 식사와 서비스는 무용지물로 허공에 실려 가게 된다.

한편 항공 이외에 교통, 병원, 숙박,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예약부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공급자 측의 손실을 입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병원의 경우 예약부도의 결과는 더 심각하다. 지난 4월 26일 공정거래위원회(아래 공정위)가 개최한 ‘예약부도 근절을 위한 의료계 현장 간담회’에서 공정위 김학현 부위원장은 “중요한 수술이나 검사에서 예약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병원 측이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치료가 시급한 다른 환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며 예약부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식당가의 예약부도행태 역시 심각하다. 에드워드 권 셰프가 지난 2015년 크리스마스이브에 70%의 예약부도를 경험하며 엄청난 적자를 경험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엘본 더 테이블’의 최현석 셰프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예약부도 고객들에게 “예약은 분명한 약속이다.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당신들을 기다렸지만 당신들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당신들은 우리 레스토랑에 오지 말아 달라”고 전했다. 이처럼 예약부도 고객들로 인해 현재 사회 각계각층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 주변의 예약부도
 

예약부도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공연장에서는 단체행사 및 관람이 많이 이뤄진다. 그러나 계약금이 없는 만큼 예약 이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직전에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대학로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이정우(23)씨는 “단체가 갑자기 예약을 취소하면, 해당 연극을 보고 싶어도 예매하지 못 했던 개인들까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학로 소리아트홀 관계자는 “단체관람의 경우 결제는 전화예약 이후 현장에서 이뤄지기에 단체의 예약부도에 대한 제재가 힘들다”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교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콜택시 호출 후 다른 택시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는 명지대 김소희(사복·14)씨는 “다시 전화해서 예약을 취소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서로 얼굴 붉히기가 싫어 취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콜택시 및 카카오택시 기사 민경석(52)씨는 “예약을 취소하더라도 사전에 연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택시업계에는 예약부도 관련 규정이 없기에 발생하는 피해는 택시기사들의 몫”이라고 전했다. 또한 민씨는 “예약문화는 소비자와 공급자 간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약에 대한 책임의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학 식당가에서는 미리 약속한 인원수가 채워지지 않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수요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행사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대학가인 신촌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47) 씨는 “학생들이 단골인 것을 알기에 인원을 못 채워서 오더라도 안 받아줄 수가 없다”며 “예약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밝혔다. 대학가에 위치한 큰 술집들은 주로 단체예약제로 운영되며, 이 술집들의 경우 예약된 단체인원 중 일부가 참석하지 않아서 좌석이 비더라도 그 자리에 다른 손님을 받기 힘들다. 늦은 시간에 예약 없이 술집을 찾는 단체는 많지 않을뿐더러, 개인손님들 역시 다른 단체가 이미 있는 술집은 잘 방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학 식당가의 예약부도는 상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우리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부학생회장 송현우(언홍영·14)씨는 “다양한 행사에서 사전 수요조사에 참여한 후 당일취소를 하거나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송씨는 “개강 초에는 당일취소를 너무 많이 해서 약속한 금액에 훨씬 미달했다”며 “돈을 더 받지는 않았지만, 이후 이 술집을 이용하기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개개인의 약속을 등한시하는 태도가 상인들과 학생단체 사이의 신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으로 일정 금액을 채워야하기 때문에 채워지지 못한 금액을 학생회 또는 과사무실에서 부담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다양한 행사에서 학생들의 당일 취소를 목격했다는 우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학생회장 고현창(정외·14)씨는 “부족한 금액이 너무 많으면 회장단 사비로 메우기도 한다”며 “자신이 한 말과 약속에 책임지는 분위기가 학생사회에 전반적으로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부터 약속을 중요시하지 않는 태도가 개선돼야 하며, 예약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예약부도 근절을 위해 캠페인을 하고 있는 유명주방장 백종원, 이연복씨.

‘노쇼는 노(No)!’를 외치는 최근의 변화들
 

최근에는 예약부도를 ‘어쩔 수 없는 행위’가 아닌 ‘근절돼야 할 행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인기 중식당 ‘목란’의 이연복 셰프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예약부도를 막기 위해 예약고객에게는 미리 ‘2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으면 예약이 자동으로 취소된다’는 문자를 보내고 있다”며 “20분 뒤엔 예외 없이 다른 손님을 받는다”고 전했다. 한편 공정위는 지난 1월 업무계획 보고에서 2016년의 주요 과제로 ‘예약부도 등 무책임한 소비 행태를 보이는 블랙컨슈머를 근절하여 책임 있는 소비문화를 확산할 것'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하이트진로, 포스코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 역시 사내에서부터 예약부도행태를 근절하는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렇듯 예약부도를 근절하기 위한 개인적·사회적 노력들이 병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예약부도를 확실하게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못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강제적인 위약금 시스템을 도입하는 업계가 증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업계는 항공업계이다. 항공사에서 예약부도 고객에게 환불 수수료와 더불어 예약부도 수수료를 추가로 받아, 실제 탑승을 필요로 하는 승객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물론 위약금제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우리대학교 박주미(화학·14)씨는 “항공의 경우 환불 수수료도 있고 예약부도 고객들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오버부킹제도*도 존재하는데, 위약금이 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억울한 사정으로 탑승하지 못하는 고객에게는 가혹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홍보팀 임대웅 사원은 “불필요한 예약부도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그 심각성을 환기시키고자 부득이하게 노쇼 수수료를 도입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임 사원은 “환불 수수료를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비행기에 탑승하지 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약 고객이 모두 탑승을 원해 정원이 초과되는 경우를 고려하면, 오버부킹제도 역시 차선책일 뿐 이상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예약이 필요한 음식, 교통, 숙박 등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문화다. 위약금제도와 같은 경제적 제재는 예약부도의 정도를 완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절차의 복잡성과 강제성을 고려했을 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예약부도행태를 근절하고 더 바람직한 예약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노력과 함께 예약문화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들과 함께 고객들의 예약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에티켓이 함양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버부킹(Over Booking)제도 : 초과 예약제도, 즉 만원임에도 불구하고 취소가 있을 것을 생각하고 그 이상의 예약을 접수하거나 판매하는 제도.


주은혜 기자
gracecho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