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녀의 숨비소리를 위해

인어공주처럼 물고기의 꼬리를 갖고 있지도, 오늘날 잠수부처럼 첨단장비를 갖추지도 않았지만 깊은 수심에도, 추운 바닷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해녀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등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수많은 언론의 집중을 받았던 해녀지만, 흥미에 그친 관심으로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직접 제주도로 떠나 현직 해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해녀 분야 전문가와의 만남을 통해 진짜 해녀에 대해 알아봤다.
 

노동 그 이상의 의미
 

해녀는 화산섬이라는 제주도의 지리적 환경과 여성 인구가 많은 역사적 배경에 의해 탄생했다. 제주도는 화성암의 한 종류이자 다공질* 암석인 현무암으로 이뤄져 있어 논농사가 불가능하고, 예부터 남자들이 먼 바다로 나가 어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여성 인구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런 환경 때문에 가부장제가 깊이 자리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게 됐다.
하지만 해녀들에게 물질**은 생계수단 그 이상의 의미다. 물질은 그녀들에게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이 될 수 있도록 했고, 부엌이 아닌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제주도 김녕마을 해녀회장 이은화(69)씨는 “여자가 물질을 하고 남자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니 여자도 남자만큼이나 집안의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도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참여 역시 해녀라는 이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녀가 물질을 하는 곳에서는 ‘불턱’이라는 이름의 낮은 돌담을 볼 수 있는데, 해녀들은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물질 후 몸을 말리기 위해 불을 쬐곤 했다. 물질을 하기 전과 후 해녀들이 모두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불턱은 자연스럽게 해녀들의 사랑방이 됐고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녀 공동체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하며 마을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앞장서서 해결하기도 했다. 성산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 김옥자(78)씨는 “물질을 해 번 돈으로 마을에 비포장도로를 만드는데 기부하거나 학교를 짓는 등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뿐이 아니라 더 먼 과거에는 바다의 특정 구역을 ‘이장바당’, ‘학교바당’ 등의 이름으로 지정해 놓으며 그곳에서 번 돈은 각각 이장을 위해, 마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각자의 부엌 대신, 바다로 나가 공동체 속에서 일하며 그녀들은 주체적이고 사회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해녀에게 물질은 삶 그 자체이다. 어언 오십 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물질을 해왔지만 아직도 바다에 나가는 홍순자(68)씨는 “바다는 우리 삶의 일부다”며 “나이가 들며 심장에 무리도 오고 숨을 참기도 이전보다 힘들어지긴 했지만 바다 속에서 헤엄칠 때가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김씨와 이씨도 입을 모아 ‘바다에 나가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헤엄을 못 치는 날까지 해야 할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씨, 이씨, 홍씨의 평균 나이는 72세. 지난 2015년 서귀포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주 현직 해녀 중 70대는 60%였다. 그녀들이 바다에 나가는 이유를 ‘돈을 위한 노동’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있다. 더 이상 기를 자식도, 짊어져야 할 가정도 없지만 한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해녀는 물질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 평상 위 테왁 및 물질 도구를 말리고 있는 모습

해녀 vs. 아마?
 

한동안은 이런 해녀들의 이야기를 육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해녀와 비슷한 일본의 아마와 경쟁구도가 펼쳐졌고 일본이 아마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할 것이라는 소문은 큰 이슈가 됐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경쟁심과 자극적인 언론의 보도로 왜곡된 사실일 뿐, 실제 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한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해녀 유네스코 등재 신청에 직접 참여했던 제주대학교 철학과 유철인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3월 31일 처음으로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심사대상 기준에서 제외돼 2015년 3월 31일, 재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과는 오는 11월에 나올 예정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아직까지 정부 차원에서 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한 바가 없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아마 보존을 위한 노력이 빠른 속도로 실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 캐릭터를 개발해 상품화하고 현지에 외신 기자를 직접 초청해 아마를 소개하는 등 대외적인 홍보도 하고 있다. 또한, 젊은이들도 아마에 관심을 갖고 물질을 배우는 등 이른바 ‘아마 신드롬’이 일어나 쇠퇴하는 우리 해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해녀가 먼저이지만, 유네스코 등재는 아마가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근거 없는 두려움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편, 해녀와 아마의 경쟁적인 모습과는 달리 공동등재도 논의된 적이 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해 제주도에서 개최된 ‘세계잠녀***학 대회’에서 처음 대두된 이후 지속적으로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이뤄졌지만, 불안한 한·일관계 및 반일감정으로 인해 무산됐다.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고창훈 교수는 “개인적으로 ‘지속가능한 전통적 해양문화의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해녀와 아마가 공동등재가 되길 바라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그럴 의향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정치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인류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유산으로써 해녀와 아마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바다박물관장 이시하라 요시카타씨 역시 제주신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은 지금도 제주와 일본 해녀가 공동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유네스코 등재만큼이나 해녀 문화를 발전, 계승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대다수의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해녀와 아마는 적대적인 관계일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유네스코 등재가 돼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들은 재정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등재에 특별한 불이익이 없다. 

하지만 공동등재에도 분명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해녀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를 해온 우리대학교 조한혜정 명예교수(연세대·문화생태)는 “자연환경을 잘 파악하고 그를 존중하는 생산활동과 사회활동을 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해녀가 가진 가치라고 말했다. 일본의 아마는 ‘자연환경을 존중한 생산활동’이라는 특징은 갖고 있지만, 물질이 개인 단위로 이뤄졌기 때문에 ‘사회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해녀문화보존협회 및 주식회사 숨비의 이한영 대표는 “단순히 해녀의 물질 기술이 아니라 해녀 노래, 해녀굿 등 해녀 공동체 및 해녀 문화 전체가 유네스코 등재 대상이다”고 전했다. 물질 기술만큼이나 해녀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문화가 해녀가 가진 독보적이고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단독등재든, 공동등재든,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어업을 해왔다는 점에서 해녀와 아마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무조건적 반일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문화인류학적 가치에서 해녀와 아마에 대해 공동연구를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해녀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당장 해녀가 직면한 중요한 사안 중 하나는 유네스코 등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유네스코 등재는 우리의 최종 목표가 아닌 하나의 단계일 뿐,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등재가 된다고 해서 해녀 문화가 갑자기 부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녀문화 보존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이 대표는 “해녀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로 얘기를 꺼냈다. “해녀는 충분히 자생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지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현재 제주도 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의료비 혜택이나 잠수복 지원, 탈의실 건립보다는 하나의 문화로서 해녀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그 예로 자신이 개발한 ‘해녀 물질 공연’을 들었는데, 물질을 통해 채취한 해산물뿐 아니라 물질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컨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해녀는 직업 그 자체로서의 잠재력도 갖고 있다. 조 명예교수는 해녀를 ‘지속가능한 인류문화의 좋은 예’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물질은 단순한 채취가 아니라 마치 밭농사를 짓듯 동네 앞바다를 보호하고 추수하는 등 매우 정교한 생태적 지식과 활동의 합”이라며 “해녀의 물질은 바다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오래된 방식을 갖고 있는 오래된 미래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달된 기술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가져다 줬을지 몰라도 자연과 더불어 욕심을 내지 않고 물질을 하는 해녀만큼 지속성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해녀는 직업적으로 지속가능하며,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지원이 아니라 문화로써 거듭날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반이 생겨도 물질을 이어갈 자들이 없다면 해녀 문화는 보존될 수 없다.

이에 신입 해녀를 육성하고자 해녀학교가 생겨났지만,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아직은 섣부르다”고 생각을 표했다. 물질 교육을 받아 해녀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해도 해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아마와 구별되는 해녀의 특징이기도 한데, 바다를 마을이 공동 소유하고 함께 관리한다. 또한 물질 전 마을 단위로 무사귀환과 풍작을 바라는 영등굿을 하는 등 모든 구성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이런 해녀 공동체가 있기에 물질 기술만 갖고는 해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신입 해녀를 받아주는 어촌계에 혜택을 주는 등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지원이 너무 적고, 실제로는 신입 해녀를 받지 않고 이름만 올려 지원금만 챙기는 경우 등으로 인해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 대표는 “각 어촌계마다 수습해녀를 받고 그들을 교육시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녀에 대한 관심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잘못된 편견, 언론의 왜곡된 보도로 인한 아마에 대한 오해, 그리고 섣부르게 당장 지원을 하려는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이 대표는 “안동 하회탈을 안동의 문화가 아닌 대한민국의 문화로 인식하는 것처럼 해녀 역시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문화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해녀가 아닌 대한민국의 해녀의 숨비****소리를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공질 : 마그마가 급격히 냉각될 때 가스가 팽창해 만들어지는 암석 속 기공이 많은 상태.
**물질 : 해녀들이 바다 속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따는 행위.
***잠녀 : 해녀를 지칭하는 다른 말.
****숨비 : 잠수.
 


글 서형원 기자
ssyhw35@yonsei.ac.kr
사진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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