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나만이 없는 거리』리뷰

누구나 살면서 후회하는 것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단짝친구와 별거 아닌 이유로 싸웠을 때 내가 먼저 사과했더라면, 밤늦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더라면…. 그런 후회들은 때로는 죄책감으로 남아 마음속에 깊게 새겨지기도 한다.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들. 그런데 당신에게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지난 2012년 산베 케이(三部けい)가 연재한 동명의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2016년 1월에 방영한 일본 애니메이션 『나만이 없는 거리(僕だけがいない街)』는 29살 청년 후지누마 사토루 과거로 돌아가 그가 가장 후회했던 사건을 막는 이야기다. ‘타임슬립(Time slip)*’은 여러 작품에서 꽤 로맨틱한 장치로 사용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극적일 뿐 낭만적이지는 않다. 다만 주인공에게 주어진 기회로서 작품을 관통할 뿐이다.

 

‘주마등(走馬燈)’

사토루에게 ‘리바이벌(재 상영)’이라는 타임슬립 능력이 발현된 것은 그의 초등학생 시절 어느 사건을 겪은 이후. 친구들이 사라졌던 ‘그 사건’을 자신이 막을 수 있었다면서 자책하던 사토루에게 다시는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주어진 기회였을까, 언젠가부터 주변의 사건사고가 발생할 조짐이 사토루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사토루가 사건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주마등같이 기억의 필름이 되감기면서 사건이 발생하는 직전으로 시간이 돌아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리바이벌의 속성과 남에게 관여하고 싶지 않아하는 내성적 성격 때문에 사토루는 다른 타입슬립 작품 주인공들과 달리 이 능력을 귀찮아한다. 그러나 사토루가 사고를 막기 전까지는 리바이벌이 끝나지 않기 때문에 그는 항상 적극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타인에게 무심한 채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인생에서 ‘리바이벌’만이 좀 더 파고들어 살라는 듯 그를 채찍질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건’은 느닷없이 사토루의 평화로운 일상을 다시 습격했다. 고향에서 오랜만에 어머니가 찾아왔던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주차장에서 갑자기 리바이벌이 일어난 것이 계기였다. 무엇이 리바이벌의 원인인지 찾지 못하던 사토루 대신, 어머니 ‘사치코’가 날카로운 눈썰미로 리바이벌의 원인인 유괴현장을 목격하여 유괴가 미수에 그친다. 그러나 그 때문에 힘들게 묻어두었던 ‘그 사건’에 대한 기억들이 모자(母子)를 엄습했다. 집으로 돌아와 최근 연이어 발생한 아동실종 사건에 관한 뉴스를 보며 사치코는 그때 ‘그 사건’을 기억하느냐고 아들을 떠본다. 사토루의 초등학생 시절,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던 같은 반 친구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연속 유괴 살인사건’ 말이다.
 

과거로의 ‘도주(逃走)’

 

18년 전, 실종된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동네 무직 청년이 정황상 범인으로 지목돼 일단락된 줄 알았던 ‘그 사건’이 아직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치코는 주차장에서 마주친 아동 납치 미수범의 눈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가 ‘그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 역시 직감했다. 아들 사토루는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건의 악취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들추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곧 자신이 들켰음을 눈치 챈 진범에 의해 사치코가 살해된다. 그때부터 사토루의 인생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범인이 능숙하게 살인혐의를 사토루에게 뒤집어씌운 덕분에 졸지에 용의자가 돼버린 것이다. 다행히 운명은 사토루에게 상황을 뒤집을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어머니가 살해된 충격에 빠져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한 채 경찰에게 붙잡힌 순간, 그의 인생을 뒤바꿀 리바이벌이 일어난다. 평소처럼 사건 발생 단 몇 분 전도, 어머니가 목숨을 잃기 몇 시간 전도 아닌 ‘쇼와 63년(1988년)’ 홋카이도. 바로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때로.
이때 하이라이트는 바로 화면연출의 변화다. 우선 화면비가 16:1에서 영화에서 종종 쓰이는 2.39:1로 변한다. 이는 애니메이션에서는 흔치 않은 연출이다. 이후 화면비는 리바이벌한 과거(1988년)와 작중 어른 사토루의 ‘현재’인 2006년을 구분 짓는 장치로 사용된다. 시야의 높이 역시 변했다. 줄어든 키에 맞춰 아이의 시점으로 보일 때 연출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또 주목할 점은 목소리다. 사토루의 내레이션은 어른 성우 그대로이지만,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아역 성우가 연기한다. 이점은 사토루의 버릇인 ‘생각한 것을 무심코 그대로 입 밖에 내뱉기’에서 어른의 목소리와 아이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소소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전개상 어른의 몸에서 아이의 내레이션이 나올 때도 오는데, 이는 또 다른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는 만화책이 아닌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다.
 

‘멍(痣)’을 통해 얻은 ‘달성(達成)’

초등학생의 몸에 29세의 정신을 가진 사토루는 같은 반 친구들이 보기에 하룻밤 사이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것만 같았다. 그동안 타인에 관심 있는 ‘척’ 만하던 친구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사토루가 미래에 친구들과 어머니의 살해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더 나아가 범행 자체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탓에 소극적이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미래에서 살해된 반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그 소녀가 학대당하고 있음을 눈치 채곤 어른들에 맞서 소녀를 지킬 대담한 계획까지 실행했다. 미래에서 살해될 희생자들을 차례로 구해내며 사토루는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항상 홀로’였음을 깨닫게 된다. 나머지 희생자들도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거나 반에서 외톨이, 전부 소외된 아동들이었다.
이렇듯 ‘아무도 죽지 않는 미래로 바꾸겠다’는 결심은 지난 세월동안 사토루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던 마음을 열었다. 바뀐 사토루의 태도에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 역시 그에 감화돼 사토루의 계획에 동참한다. 그렇게 미래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미래(未来)’

 

결국,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토루의 행동 변화에서 드러난다. 29세 청년 사토루의 성장기로 봐도 무방한 듯싶지만, 단순한 주인공 개인의 성장기만은 아닐 것이다. 망설여지는 순간에 용기를 갖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어느 순간 우리에게도 직접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 돼버리진 않았는지. 사토루처럼 성격상의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당장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듯,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아니던가. 이런 상황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사람 사는 냄새’를 그리워한다. 실제로 『나만이 없는 거리』가 방영한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tvn 드라마『응답하라 1988』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우리가 TV 속 정겨운 모습에 울고 웃던 와중에 현실 속 누군가의 이웃집에서는 아동학대로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더라면, 이웃집 그 아이 잘 지내는지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작중 배경 2006년에서 10년이 지난 2016년임에도 이 작품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나만이 없는 거리』는 지난 3월 19일 일본에서 실사영화로도 개봉됐다. 원작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실사영화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평생의 후회로 남지 않도록 용기를 내는 것, 그리고 그 결심에 당신을 믿어주는 또 다른 이들이 생기는 소중함. 애니메이션『나만이 없는 거리』를 통해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타임슬립(Time slip) : 어떤 사람 또는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초자연적 사고.

 

 

글 이주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자료사진 애니메이션 나만이 없는 거리(僕だけがいない街)>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