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가 사진 한 장으로 슈퍼스타가 됐다면 믿겠는가? 그녀는 앨범 자켓 사진 한 장으로 동시대를 풍미하던 팝스타 신디 로퍼를 제치고 최고로 떠올랐다. 이때 그녀에게 ‘팝의 여왕’이라는 목걸이를 걸어준 사진작가가 바로 허브 릿츠(Herb Ritts)다.

 

▲「Madonna」 (True Blue Profile), Hollywood, 1986

허브 릿츠의 사진은 ‘자기소개서’와 다름없다. 모델의 성격, 직업, 인생은 물론 나아가 고유의 아름다움까지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이렇게 말하면 기자가 무슨 평론가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니다. 기자는 ‘사알못(사진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중문화의 똥강아지로 예술사진이라고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가는 예술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은 물론 기자까지 단번에 사로잡아 버렸다.
전시회가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갈 때만 해도 ‘그래 봤자 이해도 못 할 예술사진이 아닌가’ 싶어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다. 바보 같게도, 가랑이를 잡고 웃옷을 쓸어 올리고 있는 마돈나가 사진전의 포스터를 장식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 작가가 순수 예술 뿐만 아니라 대중 예술까지 섭렵한 사진계의 권위자라는 것을!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그 느낌!

▲「Stephanie, Cindy, Christy, Tatiana, Naomi」. 1989

위 사진은 그의 작품 중 하나로, 그의 다섯 뮤즈를 찍은 것이다. 이 다섯 명의 여성들은 1980-90년대 패션계를 풍미한 톱모델 스테파니 세이모어, 신디 크로포드, 크리스티 털링턴, 타티아나 파티즈, 나오미 캠벨(왼쪽부터)이다. 이 사진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허브 릿츠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그녀들은 그의 스튜디오를 아지트 삼아 노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옷을 벗고 사진을 찍자는 그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다들 흔쾌히 응했다.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신디는 “나는 그가 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는 반드시 나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찍어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모두 당신과 같은, 바로 그 느낌을 받았다. 전시회장에 걸린 이 작품을 보고 도슨트*가 설명을 시작했을 때 그곳에 모인 관람객들은 모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처럼 허브 릿츠의 사진은 매우 명료해서 우리는 혹시라도 자신의 식견이 무시당할까 봐, 또는 부족한 안목을 들킬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실 문화를 즐기는 데 수준을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지금껏 문화를 계급화해온 우리사회에서 남의 눈치 볼 일 없이 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다. 허브 릿츠는 자신의 뛰어난 작품을 통해 비평에 대한 기자의 부담감을 덜어줬으며 오히려 맘 놓고 왈가왈부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있다.

#남성을 바라보는 섹시한 시선

그는 남자를 ‘섹시하게’ 표현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섹시함은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모델의 몸에 대한 고찰은 수없이 이뤄져 왔으나 남성모델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성의 섹시함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Richard Gere」, San Bernadino, 1978

이는 허브 릿츠의 데뷔작으로 모델은 리처드 기어다. 당시 무명배우였던 기어는 허브 릿츠와 절친한 사이로, 함께 드라이브하던 도중 릿츠가 자동차를 수리하는 그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1년 후 기어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사람들은 남성적이면서도 섹스어필하는 기어의 이 사진에 열광했다. 그리고 릿츠는 스타 사진작가 반열에 들었다. 운도 운이지만 사실 이 데뷔작부터 릿츠의 끼가 엿보였던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남성들의 남성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숨겨진 관능미까지 거침없이 끌어낸 작품들을 계속해서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성애를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그리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동성애자를 사탄과 동일시하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이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성으로 논란을 잠식시켰다. 아래는 그가 성소수자를 위해 작업한 누드집 <듀오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사진이다.

 

▲「Duo I」, Mexico, 1990

그의 동성애 시리즈를 보면 사람과 사람이 나체로 뒤엉켜 있는데도 외설적인 느낌은커녕 거부감도 들지 않는다. 그저 배경과 어우러진 미끈한 곡선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눈이 즐거울 따름이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우아미를 잡아내면서도 동성애가 주는 내면적 의미를 놓치지 않고 전달하고 있다. 이러니, 어찌 우리가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실제로 허브 릿츠는 매우 신사적인 성격의 미남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찍다니, 어떤 모델이든 어떻게 그의 앞에서 옷을 벗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에 다신 없을, 아니 적어도 당분간은 없을 이 전시회에 꼭 가보도록 하자. 적어도 마돈나가 왜 춤추게 됐는지는 직접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

‘마돈나를 춤추게 한 허브릿츠’, 오는 5월 2일(월)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연세대 학생증(모바일 가능) 지참 시 9,000원 할인가 적용 및 엽서 증정

*도슨트: 지식을 갖춘 안내인으로,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 일반 관람객들을 상대로 전시물과 작가 등 두루 안내하는 일을 함.

 

장혜진 기자
jini14392@yonsei.ac.kr
<자료사진 herbrit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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