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 대나무숲

▲ 성세현(심리·11)

대나무숲은 관리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운영하는 익명 메시지 전달 페이지다. 대나무숲의 잠재적-또는 현재 진행형일 수도 있는- 문제점은 그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페이스북을 통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운영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라고 생각해본다면 지금 당장 부계정을 만들어보라. 이메일 계정이 있다면 5분 안쪽으로 실존하지 않는 연세대학교 학생 아무개를 ‘생성’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계정으로 대나무숲에 사연을 기고할 수 있다. 그리고 사연은 한 연세대 학생의 의견으로 포장되어 모두가 볼 수 있는 SNS에 공개되고, 그 글을 캡쳐해 인터넷을 떠돌수도 있다. 만약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악용하려고 한다면 그대로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대처방법은 없다시피 하다. 주커버그가 프로필에 연세대 학력을 입력하려면 연세대학교 포탈과 연계해서 인증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이런 유령 계정은 쉽게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우리 과에는 저런 사람이 없다.’ 라는 반박이 가능하며, 또 실존하는 사람의 계정을 그대로 베껴내서 유령 계정을 만든다면 본인이 직접 나와 ‘저것은 내가 만든 계정이 아니다.’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학우의 이름으로 계정을 만든다면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이 계정으로 논란이 될 만한 글을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 계정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댓글창과 그 글을 퍼나른 커뮤니티의 여론은 난장판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굉장한 순기능들도 많다. 올해 초를 뜨겁게 달군 경희대 OT 비용 사태로 대표되는 학내 비리 등에 대한 내부고발은 대나무숲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크게 공론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큰 사안이 아니더라도 대나무숲이 가져온 새로운 소통의 방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의 관리자가 OT 사태의 관련된 사람이었다면 그 글을 사전검열 했을지도 모른다.

유희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나무숲에 왜 이런 음모론을 제기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익명 커뮤니티와는 다르게 대나무숲은 SNS를 기반으로 한, 누구나 볼 수 있는 페이지다. 이미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오는 의견을 일반적인 연세대 학생의 의견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 정도는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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