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이형목 교수

중력파가 발견되고 세계인의 관심이 쏟아진 지 벌써 한달이 넘게 지나갔다. 최근 들어 과학에 관한 뉴스가 이렇게 언론의 관심사가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구성원들도 배포된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신문이 취급하면 다행이 아닐까 생각했다. 더군다나 중력파 발견의 주역은 아무래도 가장 많은 연구자들이 집중돼 있을 뿐 아니라 거대한 검출기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한 미국이었고, 한국에서는 20명 이내의 연구자가 참여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기자회견은 그냥 외국의 빛나는 결과를 전달해 주는 행사 정도로 간주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국내 기자회견장은 발디딜 틈조차 없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기여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력파의 최초 발견이라는 인간의 지적 활동의 승리에 대해 취재진들이 감격하고 격려해 준 덕분에 연구협력단원들이 크게 고무받았다. 실제 검출은 2015년 9월 14일에 이뤄졌으나 면밀한 검증을 거쳐 한국시간 기준 지난 2월 12일에 비로소 공식 발표됐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경에 중력파에 대해 이미 예측했지만,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야 시작됐다. 우리가 천체를 관측한다는 것은 천체로부터 나온 신호가 검출기에 주는 영향을 찾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카메라에 부착된 필름이나 CCD는 빛을 받아 화학적 또는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을 기록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중력파는 빛과 달리 물체와 상호작용하는 정도가 너무 작아서 그 효과를 찾기 매우 어렵다. 중력파가 지나갈 때 시공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측정해야 하는데 그 정도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에 검출된 중력파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보다도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격렬한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통과할 때 지구를 약 10만분의 1 나노미터 정도 변형시킨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미세한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게 해 준 라이고(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는 기본적으로 19세기 말경 제작된 마이켈슨 간섭계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1m정도의 크기를 4km로 늘였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레이저가 수백번 왕복할 수 있도록 패브리-페로 공진기를 삽입시켰다. 이 아이디어는 1970년대 초부터 미국·영국·러시아 등에서 제시됐고, 1979년부터 미국과학재단이 기초 연구를 지원했으며 1990년에는 미국의 국가과학위원회가 정식으로 이번에 검출에 성공한 라이고 프로젝트를 승인함으로서 본격 추진됐다. 한 변의 길이가 4km인 ‘ㄱ’자 모양의 검출기를 직선 거리로 3000km 떨어져 있는 워싱턴주의 핸포드와 루이지애나 주의 리빙스턴 두 곳에 설치하는 공사가 1999년 완공됐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1997년에는 검출기를 건설·운용하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라이고과학협력단(LSC)이 출범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2009년에 LSC의 회원으로 가입했으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직접 검출을 위한 준비와 가동 과정에서 전세계 15개국 가까운 나라로부터 온 연구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라이고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감도를 점차 올려가면서 가동을 반복했다.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어드밴스트 라이고(advanced LIGO, aLIGO로 약칭)로 업그레이드하는 공사를 진행한 후 2015년 여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자마자 최초의 중력파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라이고가 관측하려는 것은 블랙홀이나 중성자별로 이루어진 쌍성계의 두 별이 중력파를 내면서 점차 가까워지다가 마지막에 폭발적으로 부딪히는 합병 현상이었고 실제로 블랙홀 쌍성의 충돌이 이번에 검출된 것이다. 이러한 합병은 어느 은하에서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검출기를 가동시켜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일반 망원경과 달리 중력파 검출기는 어느 방향에서 오더라고 검출이 가능하다. 이번 관측이 검출기를 가동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심스럽다는 이도 있었고 너무 운이 좋지 않았느냐는 이도 있었다. 의심스러운 신호가 아니라는 것은 가짜 신호일 가능성을 모두 배제시킴으로서 해소될 수 있었으나, 운이 좋았다는 것은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행운이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을 가져다 줄 만한 감도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고는 지난 1월 가동을 잠시 중단했고 조정 작업을 거쳐 하반기에 다시 가동될 것이다. 이때 라이고의 감도도 더 높아질 것이고 더 많은 중력파가 관측될 것이다. 이번 관측을 통해 우리는 블랙홀을 의심없이 증명할 수 있었고 질량을 측정함으로서 생각보다 무거운 블랙홀이 우주에 존재함을 보았다. 더 많은 중력파가 관측되면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우주의 진화 과정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인리히 헤르츠는 거의 130년 전 지금 우리가 전파라 부르는 전자기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 검출에 성공한 후 그 의미에 대한 질문에 ‘도무지 쓸모 없다. 나는 단순히 막스웰 이론을 맞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헤르츠의 생각과 달리 전파의 발견이 인류에 가져다 준 변화는 이루 열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중력파의 미래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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