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던 기자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운명적인 사랑을 기대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좀 기대하면 어때?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온갖 간섭 때문에, 연애 조장 사회에서 솔로로 살아가기란 이렇게나 힘들다. 남의 삶에 끼어들지 못해 안달인 이들의 입을 잠시나마 막아보기 위해, 영화 리뷰를 시작하기 전 운명적 사랑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한 변(辯)을 몇 마디 해볼까 한다.
운명에의 불신은 신분제의 타파로부터 비롯됐다. 날 때부터 숨을 죄고 있던 목줄을 끊어내고 나자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현실적인 것’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고질병이 발현된 듯싶다. 사람들은 현실적인 것을 숭배하다 못해 우연한 사랑, 영화 같은 사랑은 모두 운명으로 치부하며 현실에서 밀어냈다. 우리가 영화 『클래식』 속 절절한 사랑을 동경하면서도 다른 세상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게 좀 웃기다. 소개팅은 현실적이고 우연한 만남은 운명적이란 말인가? 물론 소개팅이 확률을 높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로또란 말인가?
적어도 당신이 비(非)운명론자라면, ‘운명적인 사랑’은 잘못된 표현이다. 운명이란 초인적인 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삶을 의미한다. 애초에 어떤 힘으로 꺾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옛날에야 신분제가 초인적인 힘으로 여겨졌겠지만 사실 그것도 인간이 만들고 역사가 견고하게 쌓은 장벽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운명적 사랑이란 그저 그 만남의 방식이 당신의 판타지를 충족시켰냐 아니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기대할 자격이 생겼다.
운명을 믿어요?…믿어요.
지금 이순간도 운명 같아요.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레터스 투 줄리엣』은 우리들의 판타지를 훌륭하게 충족시켜주는 영화다. 물론 아만다의 압도적인 미모와 크리스토퍼 이건의 깊은 눈빛이 한몫했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관객들의 심장을 노리고 만들어졌다. 배경이 이탈리아의 베로나기 때문이다. 이곳은 바로 셰익스피어의 로맨스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지다. 정작 셰익스피어는 이 도시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는 점이 모순이지만, 어쨌든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곳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
극중의 작가지망생 소피는 약혼자를 따라 베로나에 온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내버려두고 일에만 열을 올리자 혼자서 도시를 관광하러 다닌다. 그러던 도중 ‘줄리엣의 발코니’에 들르게 된다. 은밀한 밤,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사랑을 속삭였다는 이 장소는 그 판타지 같은 로맨스 덕분인지 여자들의 성지로 유명하다. 많은 여자들은 이곳에 방문해 가상의 줄리엣에게 자신의 은밀한 사랑을 고백하고 떠난다. 발코니를 둘러보던 소피는 낡은 벽돌 틈에서 50년 전 한 소녀가 쓴 러브레터를 발견한다. 심심했던 소피는 러브레터에 답장을 써준다. 물론 그 ‘남자’인 척하고 써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소피는 그렇게 개념 없지 않다. ‘줄리엣’으로서 써주는 것이다. 왜 그곳에 편지를 꽂아뒀는지, 왜 소피가 난데없이 답장을 쓸 생각을 했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고해하길 바란다. 어쨌든 사연의 주인공 클레어는 소피가 보낸 답장을 들고 베로나에 나타난다. 일중독 약혼자 때문에 심심했던 소피는 그녀의 ‘50년 전 사랑 찾기’에 가담한다. 남자주인공은 어디 있냐고? 바로 클레어의 손자 찰리다.
이때부터가 진짜 킬링파트다. 클레어의 여정이 걱정돼 그녀를 쫓아온 찰리는 그야말로 ‘츤데레’의 정석이다. 소피와 치고받고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할머니의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가 진행되는데 이때 찰리가 정말 달콤하다. 그는 굉장히 현실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소피에게 ‘50년 전 사랑 찾기’가 가능하겠냐며 불평하지만 이 둘을 따라다니며 보호해준다. 자신이 사랑하는 할머니가 옛사랑을 찾아 떠난다니 배신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찰리는 어른스럽게 극복해낸다.
만약 내가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면…
줄리엣을 발코니에서 내려
끝장을 내버렸을 거야.
상영된 지 5년이 흘렀음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름다운 영상미에 있다. 소피와 찰리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장난치는 장면, 맑은 날 새파란 잔디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입 맞추는 장면 등등 영화 구석구석 로맨스가 흘러내린다. 사실 영상 곳곳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클리셰*가 매우 많은 편이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흔한 표현이 가장 좋은 표현이라고. 고전적인 장치와 베로나의 전원적인 영상미 그리고 아만다의 눈웃음이 가미돼 로맨틱함이 한층 진하게 느껴진다. 영화 끝부분에 소피의 상사가 “이제 많은 여자들이 베로나행 티켓을 끊게 될거야”라고 하는데, 기자도 하마터면 비행기 티켓을 끊을 뻔했다. 적어도 1년 뒤에는 이탈리아에 가리라는 때 아닌 결심을 하게 됐다.
여느 로맨스 영화가 그렇듯, 찰리와 소피 사이에는 우여곡절도 있고 약간의 긴장도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소피가 무사히 행복한 결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너무 비판적 시선 없이 영화를 본 것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취향 따라 문화생활을 하면서 머리아파 할 이유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스토리텔링해주는 대로 즐겨도 되는 일이다. 이런 로맨스 영화는 이 생각 저 생각에 과부하 된 우리의 머리를 식혀준다. 그리고 상기했듯, 이 영화를 보고서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가 소피를 향해 날리는 명대사를 음미하며 설레도 괜찮다. 아, 소피의 약혼자 걱정은 접어둬도 된다. 애인을 외롭게 내버려두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이 아니니까.
*클리셰 :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
장혜진 기자
jini14392@yonsei.ac.kr
<자료사진 minidisc,Uthm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