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미치다’ 조준기 대표를 만나다

아, 떠나고 싶다. 개강한 지 어언 한 달, 벌써부터 종강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직장인들이 품속에 상비한다는 사표처럼 지금이라도 당장 휴학계를 내고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건 나, 너 우리 모두의 이야기겠지. 일상에 치이다 보면, 문득 어릴 적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며 꿈꿨던 여행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온다. 떠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라 꼬깃꼬깃 접어둔 마음속 세계지도를 꺼내 펼쳐보면, 용기는 곧 온데간데없이 그놈의 돈! 시간! 역시 마음만으로는 쉽지 않은 것이 여행인가 싶기도.
그럴 때 찾아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나대신 다녀온 누군가의 기록들이다. 배 아프면서도 나중에 여유 생기면 나도 여기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여행사진과 동영상 말이다. 그중에서도 여행을 다녀온 이부터 준비하는 이, 대리만족하는 이들까지 모두 모인 국내 최대 규모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으니, 바로 ‘여행에 미치다(아래 여미)’이다. ‘여행을 일상으로’ 끌고 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페이지의 창시자, 조준기 대표를 만났다.

 

 

삶은 여행

Q. ‘미치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여행에 대한 열정이 큰 것 같다. 여행에 미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사실 ‘미친’ 정도는 아녔지만 고등학생 때 한 잡지에서 홍콩 야경 사진을 본 것을 계기로 무역을 하기로 결심했다. 무역을 전공하며 직접 해외로 나갈 기회도 많아졌고,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인턴을 하다 보니 세상에 대한 견문이 넓어졌다. 그러다 문득, 세계를 누비기 위해 이런 스펙을 쌓는 것이 진정으로 나의 행복과 꿈을 추구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정확히 2년 전, 지금 이 시간에 도서관에 앉아 그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여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차, 사람들이 여행 콘텐츠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즉석에서 여미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니 정말로 여행에 미치게 되더라. 페이지를 운영하면서도 워킹홀리데이나 여행을 틈틈이 다녀왔고,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여미의 비전도 차츰 확립해 나갈 수 있었다.

Q. 지난 1월, 이태원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살았다고 들었다. 삶의 공간에서 여행자들을 만나면 떠나지 않아도 여행이 일상으로 들어온 느낌일 것 같은데, 지금도 그곳에서 지내는가?
A. 일상에서도 여행자의 관점에서 생활해보고자 2개월간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들과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함께 생활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2개월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 고충도 있었다. 8인실에서 지내다 보니 사생활이 없기도 했고, 다른 일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은 일 때문에 나오게 됐지만 그래도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삶이 색다른 추억이자 많은 공부가 됐다.

Q. 자신만의 일상 속 여행지나 여행방법이 있는가?
A. 아무래도 업으로 삼다 보니 답하기 오히려 어려운 것 같다. 나처럼 여행이 직업이 아닌 일반인이 일상 속에서 여행 기분을 낼 방법은 역시 여행 콘텐츠를 보며 대리만족 하기!? 아니면 여행대학이나 여행 세미나 등 오프라인 행사에 가는 것도 추천한다. 각지에서 모인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자신의 경험도 공유하면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대학생이라면 여행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구나 여행 지식인이 되는 곳

Q. ‘여행에 미치다’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구독자들이 공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래서 흔한 광고성 게시물과 달리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이러한 페이지 운영방식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초창기인 2년 전에는 내 경험담은 물론 기존의 잡지와 TV 등에 실린 여행 정보를 페이스북에 맞게 각색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곧 저작권 상의 한계가 왔다. 그렇다면 아예 일반인들이 직접 다녀온여행담을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구독자들로부터 각종 여행정보와 경험을 제보 받아 콘텐츠로 각색하기 시작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Q. 어느덧 여미 페이지 구독자만 80만 명에, 구독자의 생생한 경험이 오가는 장(場)인 ‘여미그룹’에는 11만 명이 가입했다. 이 정도면 ‘대형 커뮤니티’ 수준인데 페이스북에서 독립할 계획은 없는가?
A. 어플리케이션(아래 어플)을 만들면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플도 물론 좋지만, 지금의 여미처럼은 운영되지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SNS기반이다 보니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여미‘도’ 보는 것이지, 여미‘만’을 보기 위해 따로 어플을 찾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콘텐츠를 기록하고, 여미의 팬들을 위한 상품을 파는 홈페이지는 제작 중이다.

Q. ‘여행을 일상으로’라는 여미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일상으로도 점점 들어오는 중이다. 지난 12일에는 ‘제1회 여행에 미치다 페스티벌’을 성황리에 마쳤다. 행사를 개최한 계기가 무엇인가?
A. 지난해 몇 번의 오프라인 행사를 했지만 여미 단독으로 페스티벌을 주최한 것은 처음이다. 19일인 오늘이 여미가 딱 2주년 되는 날이다. 행사 당시에는 여미 2주년을 앞두고 있었기에 여미를 좋아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열게 됐다. 행사는 자선 바자회, 여행 강연, 축하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는데, 지루했다는 분들이 있어서 다음에는 더 알차게 준비하려 한다. 힘들기는 했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좀 더 체계화된 모습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Q. 지난 10일부터 13일에는 여러 여행 단체들과 함께 ‘내 나라 여행박람회’에 참가해 새로운 여행트렌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여행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보는가?
A. 현재 여행 산업에서는 여전히 대형 여행사와 항공사가 95%로 강세다. 나머지 5%가 여행 가이드나, 현지티켓과 숙소 등의 결제대행사, 즉 수수료기반의 소형 여행서비스업체들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행트렌드가 점점 패키지투어보다는 자유 여행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IT를 결합한 여행서비스나 여행 커뮤니티들이 트렌드에 발맞춰 점차 10%, 15%까지 성장하리라 본다.

조준기 대표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이 여행을 일상처럼 익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조씨는 “여행이라는 단어는 평소에도 많이 쓰이다 보니 일상적으로 느껴지지만, 막상 떠나기는 어렵다”며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여행이 일상이 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로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까지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포부 역시 밝혔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여행이 모든 고민의 답은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으나,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을 추구하되 거창한 의미를 일부러 찾으려 들지 않았으면 한다”며 “소소할지라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여행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모두가 여행의 가치를 즐겁게 나누는 ‘여행의 미치다!’2년 전 도서관에서 한 시간 만에 만들었다는 미미한 시작, 치기 어렸던 한 청년의 도전이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듯, 조준기 대표와 ‘여행에 미치다’가 이끌어갈 앞으로의 여행문화 역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도 여행에 미쳐보자!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 :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선전구호

 

 

글 이주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사진 한동연 기자
hhan58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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