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 만들어낸 왜곡

 “누나, 내일모레면 꺾일 나이네요.” 개강 후 처음으로 맞이한 술자리에서 동기가 대뜸 던진 한마디다. 평소에도 농을 잘 거는 녀석이라 한 대 찰싹 때리고 웃어넘겼는데 웬걸, 그 한마디가 마음 한편에 남아 시시때때로 고개를 내민다. 요즘 세상에 나이 때문에 전전긍긍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왠지 모를 조바심까지 불러일으키면서.
나이에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에 발을 내디딘 순간 나이는 ‘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그 위에는 으레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어떠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천년 묵은 꼬리표는 오랜 사회문화적 배경을 등에 업고 위세를 떨친다. 그 위력은 실로 막강해서 타인에 대한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부지불식간에 타인에 의해 수도 없이 재단돼 왔을 것이다. 설령 상대에게 악의가 없었더라도 말이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래 나이 발언에 관한 체크리스트에서 자신이 들어본 문항을 체크해보도록 하자.

이 네 가지 문항의 공통점은 개인이 지닌 여러 가지 특수한 모습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나이’라는 하나의 특징으로 그들을 묶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이차별이다. 하지만 나이차별을 인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 차별적 관념들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져있던 탓이다. 특이하게도 인종차별, 남녀차별 등 다른 여러 종류의 차별과 달리 나이차별은 특정 집단에 한정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세대에 걸쳐 일어난다.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너, 아직도 졸업 안했니?”

그렇다면 이렇듯 우리 삶에 녹아있는 나이차별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보자. 얼핏 생각하기에 우리는 가끔 기분이 나빴던 것 외에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차별이 주는 압박은 생각보다 크며 심할 경우 당신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든다.
대학생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이차별은 ‘생애 주기식 연령주의’일 것이다. 생애 주기식 연령주의는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관념을 의미한다. ‘스물여덟이면 취직해야지’와 같은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직장인 이영란(29)씨는 “혼기가 찼는데 결혼할 남자는 없냐는 질문을 받는 것이 일상”이라며 “아직 결혼할 마음도 없는데 자꾸 재촉을 받으니 내가 뒤처지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우리 시각에서야 결혼이 늦어지는 것이 무슨 문제랴 싶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 나이에 맞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아직 패배자 그 자체다. 여성가족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서강대 정희진 강사는 본인의 저술 『나이 듦, 늙음 그리고 성별』에서 “우리는 삶 전반에 걸쳐 특정한 나이에 맞는 정상성을 요구하고 요구 받는다”며 “취업 시 나이 제한이 당연한 규정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은 곧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정상성은 어떤 집단이 지닌 보편적인 특징을 의미한다. 이 관념이 주는 압박은 대학사회 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대학교에 재학 중인 문상현(성악·13)씨는 편입생으로 같은 학번의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다. 그는 “그저 남들보다 늦게 학교를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들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여러 해가 지나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되자 나이를 넘어 친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나이에 대한 편견이 선입견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나이차별

나이차별은 우리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뉴욕시립대 버룩 컬리지(Baruch College-City University of NewYork) 심리학과 박재현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인간의 인지 능력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개개인을 별개로 두고 생각하기보다는 인종, 성, 종교, 나이 등의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집단으로 묶어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어느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인지적 틀을 만들어 파악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심리학 연구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고정관념 적용’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이 이론의 맹점은 고정관념의 옳고 그름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나이차별적 편견에 대해 “노인의 체력적 한계 등 일정 부분 사실에 기초한 표현도 있지만 특정 인물을 판단할 때 이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여성의 나이와 관련된 편견은 한국 사회에서만 쓰이는 근거 없는 편견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이하게도 나이차별은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때도 있다. 이는 주로 젊은 층에서 많이 나타난다. 어린 나이는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나이 차서 미운 계집 없다고 했다. 이는 무엇이나 한창일 때는 다 좋게 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많으면 대부분 부정적인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글을 읽는 당신도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차별은 그들의 생계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나타나 이미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근로자의 모집, 승진, 해고, 퇴직, 전보 시에 나이를 제한할 수 없도록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바 있으며 미국과 네덜란드는 각각 1967년, 2003년부터 관련 법안을 제정했다.
소말리아에는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진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나이가 삶의 경험과 인간적 성숙의 정도를 대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나이는 한 개인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우리가 어린아이의 실수를 눈감아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에 근거한 추측일 뿐이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나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나의 특징으로 한 세대를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개인의 성장은 물론 다음 세대가 발전할 기회조차도 앗아갈 수 있다. 발전이 멈춘 사회가 지속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당장 이 시대를 살아갈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편견을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혜진 기자
jini14392@yonsei.ac.kr

그림 안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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