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다시 떠나는 수학여행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은 경주를 수학여행 장소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단체여행에서는 풍경보다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의 수다에 마음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천 년의 고도인 경주가 여러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 낮에 방문하는 관광지들은 재미없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기자에게도 경주 수학여행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생이 돼 문득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을 돌이켜 보니 경주를 ‘다녀왔다’는 느낌만 남았을 뿐, 경주를 ‘여행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 일정이나 단체활동을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경주를 여행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비록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지만, 과거로 돌아가 당시의 감성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경주로 떠나보고 싶었다. 주책맞게 교복도 갖춰 입고, 기자는 몇 년만에 경주 수학여행길에 다시 올랐다.

▲ 매력적인 안압지의 야경


우리 곁에서 숨쉬는 유산, 첨성대와 교촌한옥마을


경주행 표를 끊기 위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창구로 갔다. ‘고등학생은 학생증 제시하면 할인 돼요’ 직원의 말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물론 당당하게 성인 요금을 지불하기는 했지만, 여행 시작부터 교복을 입은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한 마디였다. 설렘을 갖고 해가 채 뜨기 전에 버스에 올라 네 시간 가량 달려가니 어느새 경주에 도착해 있었다.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기자를 반긴 것은 꾸물꾸물한 날씨였다. 비를 뿌릴 듯 말 듯한 하늘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길을 건넌 뒤 고속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곧바로 여행객으로 보이는 여학생 무리가 버스 안을 향해 외쳤다. ‘보문단지 가요?’ 아저씨는 여학생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없이 문을 쾅 닫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버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니 출발했다. 기자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이 또한 수학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첨성대 정류장에서 내려 벽화가 화려한 동네 주민센터 뒷골목을 빠져나오면 과거 신라의 정치 중심지로서 첨성대와 궁궐 유적지, 교촌한옥마을 등이 위치한 월성지구가 펼쳐져 있다. 흐리고 바람 부는 날씨가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초목이 펼쳐진 월성지구에 도착해서야 느꼈다. 푸른 초원 위에 깔린 회색 빛깔의 하늘에는 십수개의 연이 색색으로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힘껏 달려 가며 날리는 연이 바람을 타고 꽤 높이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기자도 연을 날리고 싶었으나,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동양 최초의 천문관측기구라는 천문대는 가족들이 2인용 자전거며 전동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의 한쪽 편에 마치 공원의 조형물처럼 우뚝하니 서 있었다. 유물이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져 유리관에만 들어 있지 않고, 이렇게 비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따뜻해 보였다. 첨성대를 지나 몇백 살 먹은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교촌한옥마을이 등장한다. 교촌은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위치해 있던 곳으로, 경주 최부자의 고택으로 더욱 유명하다. 최부자는 ‘사방 1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는 가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의 만석꾼 집안으로, 마지막 부자였던 문파 최준은 독립활동을 위해 재산 대부분을 내놓았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된 교촌한옥마을에는 최부자의 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양반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장이 꾸려져 있었다. 전통 찻집이나 토기공방, 누비 체험장 등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기자가 방문한 때는 떡집에서 떡메치기 체험이 한창이었다. 물을 묻힌 떡방아로 밥을 내리치면 아저씨가 주걱으로 밥을 한 번 뒤집는데, 내리치면 내리칠수록 밥알이 서로 엉겨붙고 찰기가 생기면서 떡의 모양새를 갖추어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도 호기롭게 나서보았지만, 찐득찐득한 떡을 박자에 맞게 내려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몇 번 방아질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차례를 넘겼다. 체험장 한켠에서는 이렇게 체험으로 만들어진 떡을 콩고물에 굴려 만든 인절미를 판매하고 있었다. 떡방아도 찧었으니 한 번 먹어볼까 싶었으나 4000원이라는 가격에 단념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노동력도 제공했는데 왜 이렇게 비싸담?’ 투덜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 바람에 날리는 월성지구의 연

 

천 년의 여정을 위해 잠깐 쉼표, 불국사

불국사로 이동하기 위해 도착한 버스정류장에는 일본인 관광객 네 명이 어느 버스를 타야 하냐를 두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이나 경주역 인근 등 시내를 제외한 지역에는 버스가 그렇게 자주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버스가 언제 오는지에 대한 정보도 지도 앱에서조차 확인할 수 없다. 의자에 앉아 오매불망 기다리다 보니 다행히 불국사 행 버스가 도착해 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불국사가 목적지였던지 버스에 올라타 기자의 바로 앞좌석에 앉았다. 불국사까지 가는 길은 30분가량 걸리는지라, 기자는 잠시 눈을 붙였다가 문득 깨어났다. 앞에 앉아있던 이들이 ‘불국사’, ‘불국사’하며 바삐 내리고 있었다. 기자도 흐른 침을 닦으며 황급히 뒤따라 내렸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여야 할 불국사 주차장이나 입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지도 앱을 켜고서야 ‘불국사’정거장이 아닌 ‘불국사역’정거장에 내렸음을 깨달았다. 눈앞이 캄캄해진 기자는 결국 바로 앞에 있는 콜택시를 잡아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우왕좌왕하며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백미러로 이들을 지켜본 택시 기사 아저씨는 ‘저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해줘야 우리 택시를 탈 것’이라며 그들을 다른 택시로 인도했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타고 나란히 불국사에 도착했다. 그 일행 중 한 명은 ‘아까 우리 때문에 길을 잃게 되어서 미안하다’며 유창한 한국말로 사과의 말씀을 건넸다. 사과받지 않아도 될 일을 사과받아서 머쓱한 마음도 잠시, 여행지에서의 뜻밖의 짧은 인연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른 봄이라 그런지 불국사에 심어진 꽃나무들은 아직 앙상한 모습이었다. 목련꽃만이 피어서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봄을 맞아 관광 온 방문객들의 열기 때문인지, 꽃 없이도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어렸을 때 보았던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습을 상상하며 올라온 대웅전 앞뜰에는 다보탑만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석가탑은 유리 상자처럼 생긴 커다란 건물 안에 들어가 있어,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기단 덮개돌에 균열이 발견되어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2개월에 걸쳐 해체 보수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석가탑의 구조가 층수대로 분리되어 있는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소중한 문화재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든든한 느낌이었다. 해설사의 말을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불국사 대웅전 또한 보수가 필요한 상태인데 대웅전은 보물인 데 반해 석가탑은 국보이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따라 석가탑 보수 작업이 먼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듬해 봄에는 아마 보수가 끝난 석가탑의 모습과 함께 세월의 때를 벗어내는 대웅전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대웅전의 기둥이며 깎아지를 듯 가파른 돌계단에서 불국사가 견뎌온 세월이 느껴졌다.

 

과거를 탈탈 털어 모아놓은 곳, 추억의 달동네 

▲ 기자가 직접 만든 추억의 달고나

추억의 달동네는 불국사에서 11번 버스를 타면 1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불국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추억의 달동네에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로 불량식품들과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다. 난로에 쫀듸기를 구워 먹거나 쪽자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던 과거의 모습들이 눈 앞에 재현돼있다. 기자도 달고나를 하나 맛있게 만들어 아삭아삭 깨물며 전시관에 입장했다. 추억의 달동네에는 마치 만화영화 『검정 고무신』의 배경이 될 법한 다양한 가게의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다. 양장점이며 고물상, 연탄 가게 등 이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가게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각 가게들에는 사진이나 모형이 아닌 실제 가재도구들이 빠짐없이 모아져 있어 리얼리티를 더한다.
문득 어머니가 영화 『국제시장』을 매우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에게는 아주 옛날의 물건들이라 신기하고 생소한 느낌으로 관람했지만, 추억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각 가게 안의 물건 하나하나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했다. 실내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야외와는 다른 가게들이 꾸려져 있었다. 사진관을 재현한 전시 앞에서 어느 아주머니는 ‘어머 옛날 사진관이랑 똑같네’라며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교실을 재현한 장소에서는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 젊은 연인들이 인증샷을 남기기 바쁜 모습이었다. 전시관을 나오자 바로 앞에 작게 그네와 널뛰기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몇 년 만에 그네를 뛰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해질녘이 되어 경주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경주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안압지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안압지’라는 이름은 사실 조선시대에 부르던 이름으로서, 원래의 이름은 ‘동궁과 월지’라고 한다. 밤이 되자 안압지의 야경을 찍으러 사람들이 삼각대를 들고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밤의 호수에 비쳐 찰랑거리는 기와의 모습은 정신을 쏙 빼 놓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안압지를 보며 과연 여행하면서 무언가에 매혹되었던 적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에 부대끼고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에 온 것은 벌써 여러 번이지만, 경주의 매력을 제대로 알고 가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주를 수학여행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꽃이 필 무렵에 맞추어 경주에 방문해 보길 바란다, 그 때 느끼는 경주는 당신 기억 속의 경주와 같지 않을 것이다.


글 최서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사진 이재원 기자
wonderful_gir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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