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면 이미 지금쯤이면 여덟 학기를 마치고 교정을 떠났을 거다. 하지만 여느 대학생들이 그렇듯 중간에 휴학도 한 번 해 봤고, 이번 학기는 졸업을 미루기 위해 또 한 번 휴학을 신청했다. 취업 준비에 필요한 공부만 하면서 한 학기를 보내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평일 밤낮으로 1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연세춘추 활동을 함께하며 틈틈이 공부하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졸업을 앞둔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이런 약속은 그리 특별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감히 말해본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자주 듣는 노래 한 곡이 있다.


어제 만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면 행복할 거야
너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에서 열심히 사는구나

-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발매된 지 1년 남짓 지난 노래이지만 요즘 들어 귀에 자꾸 맴도는 건 그야말로 내가 없어져도 상관없을 부품처럼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깨달을 틈도 없이 일하면서도 늘 생각한다. 세상 모든 사람은 각자의 특별한 인생을 살아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또 많은 사람이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내가 없어지더라도 지금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일은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누군가 금방 배워서 할 수 있다. 장안의 화제인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거침없이 이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 모르겠다. 자신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람은 참 슬퍼진다.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공부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걸 보니 희한한 시대가 맞는 말이긴 한가 보다. 조금이나마 특별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돈 버는 일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취업을 위한 영어시험과 한국어, 한국사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독서나 여행같이 나 자신에게 자양분이 될 시간과 여력은 없다. 부모님께 손 벌리긴 죄송한 마음에 생활비는 벌어야겠고, 남들 다 하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혼자 도태될까 봐 있는 힘껏 따라가야 하고 내 역량이 부족한 탓이겠거니 하고 더, 더 열심히 한다. 이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리고 쳇바퀴 같은 다음 날이 밝아온다.

1930년대 공장에서 온종일 나사못을 조이던 찰리 채플린, 1970년대 서울 재개발 구역에서 하늘로 공을 쏘아 올리는 난쟁이를 보면 소외된 것만 같은 이 감정이 비단 오늘 우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곳에 있든 그것에 만족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하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행복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참 희한하지만, 드물거나 신기하지 않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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