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죽교 앞 자남산 여관에서 경원선을 마주보는 연세대학교 정문 앞까지 버스로 45분이 채 안 걸린다. 그래서인지 연세대는 항상 통일논의의 중심에 서 있었고 민족고대의 포효를 통일연세의 비상으로 압도해 왔다. 사실 북한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정향을 결정짓는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형제도나 동성애 같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친북이냐 반북이냐가 보수와 진보의 잣대가 돼왔기 때문이다. 인권이라는 단어 앞에 북한이라는 두 글자를 붙임으로써 진보가 보수로 바뀌는 진풍경은 우리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김 왕가의 정치적 생존을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경제파탄에 주민들이 굶주리는데도 핵만 포기하면 대규모 경제원조를 해준다는 걸 마다하는 건 김 왕가와 주변 엘리트들만 살고보자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과 남한의 군사위협 운운하지만 유엔제재가 북한주민을 위협하는 게 아니란 건 김정은 정권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유엔제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일반주민들의 일상적 삶에는 악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유엔제재와 우리 정부 등 각국 정부의 독자적 대북제재로 북한 선박의 입출항이 원천봉쇄 됐고 핵 및 미사일관련 사업에 연관된 인사들의 금융거래도 중지됐다. 북한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하자원의 수출길도 막혔고 중요한 외화벌이수단이었던 북한식당들도 속속 문을 닫는다. 가까스로 제재대상에서 빠진 해외근로자들 상황도 녹록치 않다. 화장실 바로 옆에서 식사하는 장면은 전 국민을 경악케 했다.

이번 대북제재는 북한의 돈줄을 꽁꽁 묶어놓겠다는 게 목적이고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북유엔제재가 실효성이 없었던 건 중국 때문이다. 엄연히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도 금지품목에 포함된 물자를 북한에 제공해 왔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군사퍼레이드 때마다 등장하는 장거리 미사일이 중국제 다륜 트럭에 실려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중국 교통운송부가 제재대상 31개 선박에 대한 유엔제재를 엄격히 시행하면서 북한선박들이 연이어 중국항구 앞에서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 단동과 훈춘에서도 북한으로 가는 발길이 끊기다시피 됐다.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정권을 보호해 줄 것으로 믿었던 핵무기가 결국 자신들의 파행으로 이끄는 근원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핵을 포기하고 남북경협과 경제패키지를 수용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는 길만이 자신들의 안위를 보호해 준단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혹여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땐 단호히 대응하여 정당하지 않은 수단으로는 쌀 한 톨, 돈 한 푼 얻지 못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북한의 돈줄은 철저히 묶되 북한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타격을 받아선 안 된다. 잠정 중단된 인도적 지원도 즉시 재개해야 한다. 유진벨 재단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로 북한의 중증결핵환자에게 보낼 치료약이 발이 묶여 1500명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한다. 또한 산모 및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즉시 재개돼야 한다. 자기 땅에 사는 환자와 취약계층에게 제때 의약품과 영양품 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주제에 불장난만 하려는 자들을 징벌하려다 무고한 생명들을 잃을 순 없다.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목숨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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