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계산법 이면에 놓인 잘못된 서열 인식부터 개선해야

매년 신학기마다 학교, 동아리, 학회를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우리는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사람을 사귈 때 먼저 묻게 되는 것이 바로 상대방의 나이이다. 한국인들은 첫 인사를 건넬 때 “How old are you?”부터 묻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나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나이를 통해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우리 문화를 두고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오가는 것은 비단 오늘 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선 한국에서는 나이 계산법으로 크게 세 가지가 존재한다. 태어나는 동시에 한 살을 먹는 ‘세는 나이’, 현재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연 나이’, 0살을 시작으로 생일이 돌아오면 나이를 먹는 ‘만 나이’가 있다. 한국식 나이 계산법이 가져오는 가장 큰 혼란은 ‘만 나이’와 ‘세는 나이’ 방식이 사실상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52년부터 법적으로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문서나 법조문, 보도 기사에서도 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세는 나이’를 통해 서열을 가르기 때문에 사회 혼선이 더욱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정치, 경제, 행정 전반에 걸쳐 나이를 둘러싼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분열된 나이 계산 방식을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점에는 필자 역시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식 나이 계산법을 논하기에 앞서, 이번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다. 바로 우리의 서열문화에 관한 것이다.

먼저 서열문화 형성에 영향을 준 유교의 오륜(五倫)을 살펴보자. 오륜은 대인관계에 있어 상호가 지켜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장유유서의 기치가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으로 굳어진 까닭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식과 예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사회 기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서열문화는 소기의 목적과는 다르게 예절이란 이름의 소리 없는 폭력으로, 상호 존중의식이 사라진 구습의 산물이 됐다. 수직적 상하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왜곡된 서열인식이 우리 사회에 공고히 자리매김한 이상, 한국식 나이 계산법을 둘러싼 갈등은 쉽사리 불식되기 어렵다. 결국 나이 계산법이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된다 할지라도, 폐습에 가까운 서열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나이를 둘러싼 사회 논란은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열을 따지는 한국식 나이 문화를 악습에 가깝다고 질책만 할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한국식 나이 논란은 더 이상 독립적으로 다뤄질 의제가 아니다. 나이 논란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경어법과 서열문화가 가지는 역사·문화적 배경을 짚으면서 본연의 의미를 아로새기고, 그릇된 마음가짐은 바로잡아야 한다. 단순히 서양의 사례를 우리의 것과 비교하며 한국식 나이 폐지를 주장한다면 우리가 가진 기존 인식 체계를 교란시키거나, 우리 사회의 흠결을 바로잡는 노력을 무력화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나 역시도 대접해야 한다는 황금률의 정신이 필요하다. 개개인이 가진 존엄한 권리를 인식하고, 나와 상대 모두를 존중하는 경어법을 사용한다면 나이를 초월한 성숙한 문화의 꽃이 이 땅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