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편견을 깬 조선시대 인물들

‘조선시대 요리사’하면 우리는 곱게 머리를 땋고 음식을 맛보는 여성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정관념이 과연 사실일까? 어쩌면 우리가 흔히 지니고 있는 생각들이 실제로는 완전히 빗나간 생각이었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주는 책 세 권 『블라인드 뮤지션』, 『요리하는 조선 남자』,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을 통해 진짜 조선시대를 알아보자.
 

관현맹인, 부자유한 시대에 장애를 극복하다

시각장애를 가진 음악인들에게 악보를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시각장애인들은 점자 악보를 읽거나 음악을 통째로 암기함으로써 한계를 극복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장애인이 전문 음악인으로서 일반 악단에 입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시각장애를 가진 음악인에 대한 복지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몇몇 시각장애인들은 지난 2011년 3월 직접 악단을 결성했다. 바로 조선시대의 ‘관현맹인’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아 창단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다. 100년 만에 부활한 이 악단은 조선시대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의 예술적 혼을 되살리고, 시각장애인 음악인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자는 목적으로 창단됐다. 해외 무대에서도 우리의 전통음악을 널리 알리며, 장애의 벽에도 불구하고 국악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 그렇다면 이들의 모티브가 된 조선시대 관현맹인은 대체 누구일까?

관현맹인은 관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는 시각장애인을 의미한다. 책 『블라인드 뮤지션』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시각장애를 가진 궁중악사를 따로 선발한 제도가 있었으며, 그렇게 뽑힌 연주가들은 궁궐의 관현맹인이라고 불렸다. 유교윤리가 자리 잡고 있던 조선시대에는 원칙적으로 여성들의 잔치에 남성이 참여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여성이 많지 않았기에 앞을 볼 수 없는 관현맹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잔치에 참여해 연주를 할 수 있었다.

『블라인드 뮤지션』의 저자 이승현씨는 관현맹인 제도를 ‘역사 깊은 장애인 복지정책이자, 음악정책이요, 인사제도’라고 소개한다. 또한, 이씨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현대사회보다 심했을 것 같은 조선시대가 실제로는 왕의 옆에서 연주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등 장애인 정책에서만큼은 오늘날보다 훨씬 선진사회’였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복지정책이 보다 많이 마련돼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다.

장애는 신분과 관계없이 발생한다.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실력만으로 관현맹인을 선발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음악적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한 조선시대의 관현맹인 제도. 『세종실록』 55권에는 ‘장애인을 나라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며 시각장애인에게 벼슬을 제공하고 사계절로 나눠 곡식을 제공하자는 예(禮)조의 건의에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 취약했을 것 같은 조선시대에도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과 정책적 기반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 잔치에서 요리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담긴 <선묘조제재경수연도>.

 

주방, 여성의 전유물이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궁중의 요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남자로서 부녀들의 아는 바가 아니다
-『세종실록』 62권

『세종실록』은 세종 15년에 요리하는 부녀자들을 공녀로 바치라는 중국의 요구에 위와 같은 대답을 했다고 전한다. 이 대답은 과연 사실일까? 책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요리가 조선시대 궁에서는 오히려 남자들의 몫이었다고 밝힌다. 책에서는 ‘요리에 쓰일 채소를 키우는 것부터 음식을 만드는 것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남자 요리사인 ‘숙수(熟手)’가 담당했다’고 하며, 여러 역사적 사료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수라간에서 일하던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자그마치 14.2:1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역관 이표가 당대의 이름 있는 음식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 『수문사설』에도 요리를 만든 사람들은 ‘죄다 남자들이었다’는 말이 등장한다. 선조 때의 잔치 풍경을 그린 『선묘조제재경수연도』에서 또한 잔치를 준비하며 칼을 들고 요리를 하는 인물들은 주로 남성으로 표현돼 있다.

이렇듯 요리가 여자들의 몫이 아니었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먼저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실제 음식을 만들고 수라상에 올리는 것까지 궁중요리에서 노동의 강도는 매우 높았다. 또한, 남녀가 유별하다는 유교윤리 아래 임금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주로 남자의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왕의 수라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 주로 맡곤 했다.

물론 성평등의 가치가 실현돼 남성과 여성이 함께 주방에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민중에서는 여전히 여성이 요리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숙수의 사례는 당시 손에 물을 묻히고 요리를 하는 것이 여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자고로 주방은 여자가 봐야지!’라는 이야기는 잘못된 편견이며, 남녀를 불문하고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여성, 내 편이 아닌 세상에서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하다
 

책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에서는 제목 그대로 조선이라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몇몇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갔는지를 다룬다. 책은 이들에게 ‘위대하다’, ‘특별하다’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 속에서 이들이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고 살아간 방식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먼저, 조선시대에는 당대의 철학가이자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인 임윤지당이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교육을 받은 똑똑한 여성들은 많았지만 혼인 이후에도 학업을 이어간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사회상과 달리 윤지당은 혼인 이후에도 가족과의 계속된 학문적 대화로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확립했다고 전해진다. 윤지당의 문집 『윤지당유고』의 일부인 「송씨댁 부인」에서 윤지당은 조선시대의 여성교육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세속에 쓸데없는 말’이라며 단호하게 비판한다. 이는 윤지당이 당시의 사회상에 그저 순응하지 않고 여성교육의 의미를 지각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윤지당유고』의 「극기복례위인설」에는 ‘나는 비록 여자지만 부여받은 본성은 남녀 간에 다름이 없으니 …(중략)… 내 견해를 대략 풀어서 내 뜻을 밝힌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는 윤지당이 남성 유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성리학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 당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확고히 했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학문 수양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조선시대의 관습에도 불구하고 윤지당은 끊임없는 자기도전을 해낸 것이다.
 

조선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또 다른 인물이 존재한다. ‘조선시대 여성 CEO’라고도 불리는 김만덕이다. 만덕은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기생의 양녀가 돼 결국 그녀 자신도 기생으로서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만덕은 단 한 번도 기생이란 신분에 종속되지 않았으며 늘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당대에는 한 번 몰락했다면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만덕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설득력만으로 결국 양인의 신분을 회복해낸다.

신분 회복 이후 만덕은 무역업으로 더 큰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다. 그러나 만덕은 부를 혼자 누리지 않고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돕기 위해 사용했다. 조선 후기 때 가뭄이 발생하자 그녀는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엄청난 양의 쌀을 기부한다. 훗날 정조로부터 사람을 살린 의녀(醫女)라는 직위를 부여받은 만덕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경영했을 뿐 아니라 당대 남성들도 누리기 힘들었던 공적인 명예까지를 누렸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 여성을 생각하며 자유롭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에 순응해 살아가던 인물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여성 CEO 김만덕은 사회와 제도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설계한 인물이었다. 또, 스스로의 능력으로 획득한 물질을 아낌없이 베풀었다는 점에서 만덕의 삶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조선시대에는 차별적인 사회상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 ‘고정되지 않은 성역할’, 그리고 ‘출신보다는 능력’의 가치를 실현한 사회와 인물들이 존재했다. 이처럼 앞의 책 세 권은 우리가 가진 생각들이 사실 편견이었음을 알려준다.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곤 한다. 이제는 우리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색안경을 벗고 다시 한 번 바라봐야 한다.

 

주은혜 기자
gracechoo@yonsei.ac.kr
<자료사진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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