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휴먼라이브러리, 사람책을 빌려드립니다!우리사회 곳곳의 휴먼라이브러리를 살펴보다
  • 주은혜 기자
  • 승인 2016.03.12 20:49
  • 호수 1768
  • 댓글 0

여행 동안 타고 다닐 자전거부터 평소 읽고 싶던 책까지, 우리는 여러 이유로 때때로 무언가를 구매하지 않고 대여하곤 한다. 그런데 물건이 아닌 ‘사람’을 대여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한 서비스가 있다. 바로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한다는 기조로 운영되는 ‘휴먼라이브러리’다. 덴마크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에 의해 처음 시작된 휴먼라이브러리는 책이 아닌 사람이 하나의 정보원이 되는 이른바 사람책을 대여해주는 신개념 도서관서비스다.

▲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서 사람책과 독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휴먼라이브러리, 지역사회에 녹아들다


책 대신 사람이 매체가 돼 독자와 상호작용하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휴먼라이브러리. 모든 사람책은 기본적으로 자원봉사를 원칙으로 하며, 대출부터 만남까지 독자들에게 제공되는 일련의 서비스는 모두 무료다. 이곳에서는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서부터 우리사회 소외된 사람들까지, 나눌 ‘경험’만 있다면 누구나 사람책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휴먼라이브러리는 현재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특정 기관 또는 단체의 개최 하에 이벤트성으로 끝나는 행사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독립된 도서관으로 상설화된 휴먼라이브러리도 존재한다.

노원구에 위치한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경우, 전국 최초로 사람책과 독자들을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상설화시켰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허정숙 관장은 “도서관은 편견을 가지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성을 지닌 공간”이며 “타인에 대한 이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밝혔다. 또한 허 관장은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도서관의 공공성을 활용하고 더 나아가 일상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하나의 독립된 도서관으로 상시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누구에게나 들려줄 이야기는 있다’는 기조를 지닌 이 공간에는 현재 일반 주부부터 각계각층의 전문가까지 650명가량의 사람책이 활동하고 있으며 독자들의 연간 사람책 열람 수는 6천 건에 달한다. 프로그램은 수시열람과 이벤트성 열람으로 나뉜다. 전자는 휴먼라이브러리에 등록된 사람책을 독자가 대출해 정해진 시간에 만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휴먼라이브러리의 일상화와 상설화에 일조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단기적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있는데, 상설 사람책으로 등록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해고노동자, 새터민, 인권운동가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초대해 독자와 만나는 ‘인권 휴먼라이브러리’가 대표적이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 여러 차례 사람책 열람을 해본 하성호(28)씨는 “사람책과의 만남을 통해 단순히 직업과 관련된 정보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만남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하씨는 대학원 진학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의사이자 교수인 최수전씨를 사람책으로 열람하며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인문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의학 외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고 한다.

사람책을 열람하는 독자만이 수혜자인 것은 아니다. 허 관장은 “주부들이 기러기 아빠들에게 반찬 만드는 법을 전수하는 것처럼, 본인의 단순한 경험이 타인에게는 큰 도움으로 다가갈 수 있다”며 “이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책들이 효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한,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책들은 휴먼라이브러리 내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한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관계자 정상훈씨는 “상설기관이기 때문에 기존에 이런 봉사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책들을 불러 모으고, 지역주민인 사람책이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재 사람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복대 컴퓨터정보과 신효영 교수는 소개 책자에서 ‘휴먼라이브러리에서 기획한 ‘다른 휴먼북 회원의 강연과 만남’ 등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후기를 남겼다.

이렇듯 개인의 삶과 경험에 집중하는 휴먼라이브러리. 퇴직한 노부부가 여행을 가기 위해 컴퓨터 수리공으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광경을 이곳이 아니면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사회 곳곳에 부는 휴먼라이브러리 열풍


한편, 대학가에서도 휴먼라이브러리에 뛰어든 학생들이 있다. 타인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소수자들과 대화하는 장을 대학교 내에 마련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연세대-고려대 휴먼라이브러리’. 10명의 우리대학교와 고려대 학생들이 모여 기획한 이 행사는 지난 2015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이들은 대안학교 졸업생, 난민, 남자간호사처럼 우리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사람책으로 선정해 열람자들의 생각 전환을 촉구한다.

프로젝트의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윤신호(영문·09)씨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대화 한 번 해보지 못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을 휴먼라이브러리의 가장 큰 의미로 꼽는다. “성소수자와 대화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우리는 단순히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남성을 ‘게이’라고 지칭한다”며 “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책들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의 편견과 마주할 수 있다”고 윤씨는 말한다.

이 행사가 진행되는 30분 동안 사람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20분은 대화를 통해 독자는 사람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소수자인 사람책은 독자에 대한 두려움을 깨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또한 윤씨는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살아온 삶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소수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대학사회 내 휴먼라이브러리의 의미”라고 덧붙였다.

휴먼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도 있다. 경험공유플랫폼인 ‘위즈돔’은 온라인을 통해 사람책과 독자 간의 만남을 중개하고 일정 부분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기존 휴먼라이브러리와는 달리 위즈돔은 사람책에게 봉사만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들이 콘텐츠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끔 돕는다. 또한 위즈돔에는 정보·경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책과의 만남 이외에 ‘슬로우 리딩 클럽’, ‘사람책 되기 워크숍’과 같은 체험형 만남도 존재한다. 위즈돔 홍보 담당 매니저 임지우씨는 “위즈돔은 창립 후 4년간 사회적 자본 양극화와 기회·정보의 불평등을 해소시키는 플랫폼 구축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책을 발굴해 온·오프라인 지식공유플랫폼 생태계를 확장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휴먼라이브러리에 남겨진 과제들


이렇게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의 휴먼라이브러리는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아직까지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먼저 대부분의 휴먼라이브러리가 이벤트성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이벤트성 휴먼라이브러리에서의 독자와 사람책의 만남은 매우 간헐적이기에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며, 유명인사가 아닌 사회적 소수자가 사람책으로 참여한다는 것 이외에는 일반 강연회와 큰 차별성을 지니지 못한다.
휴먼라이브러리에서 원래의 기조인 ‘편견 극복을 위한 열람’보다 ‘당장의 취업을 위한 열람’이 주를 이룬다는 것도 문제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허 관장은 “아직까지는 진로 탐색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가 가장 높다”며 “생계·직업 등과 관련된 사람책 열람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위즈돔의 휴먼라이브러리 서비스 역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독자들이 희망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취업에 유용한 실용적인 기술을 직접 배울 수 있는 사람책과의 만남이다. 이는 소외된 사람들의 경험을 나눈다는 기존 휴먼라이브러리의 취지는 잘 실현되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또한, 상설 휴먼라이브러리의 경우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한계가 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사서 장희정씨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인권영화를 상영한 이후 특정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의 공공기관으로서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주제만을 다루기를 요구받는 것이다. 사람책의 신변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사회적 소수자들의 수시열람은 한계점에 직면한다. 정창훈씨는 “노숙인 또는 동성애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 본인의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상시 운영되는 휴먼라이브러리 체제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휴먼라이브러리에 관한 법체계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허 관장은 “휴먼라이브러리는 현행 도서관법에서 거론되지 않는다”며 “외형적으로는 독립적인 활동을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도서관 소속의 하나의 특별 사업팀으로 취급돼 활동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허 관장은 “휴먼라이브러리가 확산되면서 이러한 법적 한계가 해결돼 자생적 구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여러 휴먼라이브러리들이 우리나라에서 각양각색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방식은 다양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나의 매개체로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보와 가치를 공유한다는 기조는 모두 동일하다. 아직까지 완전히 정착되지는 못했지만, 우리사회 곳곳의 휴먼라이브러리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누구나 ‘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주은혜 기자
gracechoo@yonsei.ac.kr
<자료사진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주은혜 기자  eunhyecho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