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소방서 구조대장 권영철씨를 만나다!

‘영웅’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직업을 꼽자면 소방관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시민과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해 몸을 던지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영웅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화마와 마주하면 누구라도 느낄 법한 죽음의 공포를 뒤로하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여기, 위험을 불사하고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우리대학교가 위치한 서대문구의 작은 영웅, 서대문소방서 현장대응단 권영철 구조대장을 만나봤다.
 

시민의 곁에서 함께하다

지난 1995년 구조대에 입대한 권씨는 21년차 소방관이다. 그는 오랜 시간 서대문구와 은평구 일대를 지켜왔으며, 지난 2006년 1월 19일 문을 연 서대문소방서의 개서요원이기도 하다. 권씨는 “군대 특전사 출신이라는 점이 직업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제대한 후 4~5년간 경찰로도 일했던 권씨는 “공공기관에서 일한 지 30년이 넘은 셈”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찰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됐다.

권씨는 화재 진압에서부터 각종 민원처리까지 소방관으로서 일하는 매 순간 보람을 느끼고 있다. 구조대원이 처리하는 민원들은 커다란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막상 화재를 진압할 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 오히려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반지를 낀 상태로 몸이 부어 곤란을 겪은 임산부나 주전자에 엉덩이가 낀 세 살배기 등 약자들을 구조할 때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항상 시민들을 통해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낀다. 권씨는 “도움을 받은 시민들이 소방서에 직접 오셔서 감사 인사를 할 때 가장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 시민들로 인해 곤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소방서에서 처리할 일이 아닌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시민들도 있기 때문이다. 권씨는 “가끔 당황스러운 민원을 받아 난감한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사선(死線)에 선 구조대원의 삶

지난 2001년 3월 4일 새벽 4시경, 홍제동의 한 골목길이 빨간 불길에 휩싸였다. 소방차가 골목길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좁은 골목에 세워진 차들로 인해 들어갈 수 없어 화재 진압이 늦어졌다. 가까스로 구조대원 9명이 현장 안으로 투입됐지만, 심각한 부상과 함께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3명뿐이었다.

6명의 구조대원의 목숨을 앗아간 홍제동 화재 사건(아래 홍제동 화재)은 화재 원인이 입주민의 방화로 밝혀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권씨는 이 홍제동 화재의 산 증인이다. 당시 건물 안에 아들이 있다고 말한 노부부의 주장으로 구조대는 건물에 진입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권씨는 “현장에서 나오는 도중 건물 한 쪽이 붕괴됐는데, 그 부근에 있었던 동료들이 순직했다”고 말했다.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의 죽음도 큰 충격이었지만, 홍제동 화재 이후 경위조사의 과정은 그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다. 당시는 ‘외상 후 스트레스’가 인정되지 않아 생존한 구조대원들이 계속해서 경위서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동료를 잃은 상처들을 극복하지 못해 구조대원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다.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때도 권씨는 현장을 지켰다. 지난 2008년 8월 20일 새벽 5시경 발생한 이 화재사건으로 3명의 구조대원이 순직했다. 생존자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구조대원들이 건물에 진입했지만, 건물 벽이 천장 구조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됐다. 권씨가 기억하는 그날의 현장은 처참했다. 권씨는 “나이트클럽이 가건물로 만들어져 화재 진압 이후 현장이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며 “사상자들의 시신도 매우 처참해 수습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권씨는 현장에서 죽음과 자주 마주하게 되지만, 생각보다 죽음에 대해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권씨는 “하루에도 생과 사를 왔다 갔다 하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게 됐다”며 “힘들어도 자긍심을 가지고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대원을 넘어 함께하는 삶을 위해

구조대원이 하는 일은 위험에 빠진 사람과 동물을 구조하는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권씨는 양로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누구보다 봉사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어르신들 앞에서 색소폰을 불며 ‘재롱’을 부리기도 하고, 행사가 열리면 사회를 보기도 한다. 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권씨에게 봉사활동은 일상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또한, 권씨는 청와대 근방에서 경찰 근무를 하던 시절, 그 근처의 농아학교 학생들을 보고 수화를 배우게 됐다. 수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권씨는 “농아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위급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후 본격적으로 수화를 배우고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서 차원에서는 독거노인들에게 김장을 담가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일 외적으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권씨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행복함을 느낀다”며 “봉사도 건강할 때 할 수 있으니 시간이 허락해줄 때까지 최대한 많이 봉사를 하려 한다”고 전했다.
 

권씨와 같은 구조대원들은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그리고 시민들의 목숨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사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 권씨는 “사이렌 소리 들으면 비켜주기, 협소한 골목에 주차하지 않기, 교차로에서 이어폰 사용하지 않기 등 기본적인 약속들만 지켜준다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며 “아직까지 소방과 관련된 측면에서 시민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방서 차원에서도 시민들의 의식 개선을 위해 매년 민방위 훈련과 연계해 ‘소방차 길 터주기’ 국민 참여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에도 서대문구 구조대원들은 연희교차로 근처에서 발생한자동차 추돌 사건을 수습하러 현장으로 출동했다. 물론, 그 속에는 권씨도 함께 있었다. 단 한 명의 목숨이라도 지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현장으로 향한다.

 

   

글 김은지 기자
 _120@yonsei.ac.kr

글·사진 한선회 기자

thisun01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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