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과 촛불로 세상을 밝힌 영화 『동주』

 우리나라 국민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가 영화를 통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바로 영화 『동주』가 그것이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는 교정에 있는 시비와 응원곡 「서시」로 유명한 윤동주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영화 『동주』 속 또 다른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송몽규라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가. 암흑의 시대에서 태어나 평생을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주제로 시를 써내려갔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에 참여해 국가의 안위를 온몸으로 걱정했던 송몽규라는 두 청년의 삶을 영화 『동주』를 통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방식으로 같은 꿈을 꾸다

우리나라 학생들 대부분은 시인 윤동주를 교과서를 통해 처음으로 접했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윤동주만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역사적 인물들은 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다. 최근에는 이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역사적 인물들이 현대인들 일상의 틈바구니로 들어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는 일본의 억압과 탄압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는 1917년에 한 집에서 이종사촌으로 태어났다. 이 둘은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같이 보냈고, 같은 사건과 죄목으로 얽혀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19일 간격을 두고 나란히 옥사했다. 두 사람은 평생 빛과 어둠을 함께 나눴으나, 현실을 마주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윤동주는 꿋꿋이 시를 썼고, 송몽규는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윤동주는 직접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송몽규의 현실참여적인 삶을 보며 늘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윤동주는 끝까지 시의 힘을 믿었다.
열악한 현실을 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은 잠시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동주』 속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문예지를 창간하기 위해 준비하는 순간이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암흑의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학우들과 함께 문예지를 창간하고자 힘쓴다. 그러나 문예지에 실을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윤동주와 송몽규의 생각이 부딪힌다. 송몽규가 생각하기에 글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전달해야 하고, 문제의식이 담겨 있어야 했다. 때문에 청년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산문을 문예지에 주로 싣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송몽규는 위태로운 시기에 문학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윤동주는 ‘시도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외친다. 그 외침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어쩐지 그 외침이 향하는 곳이 송몽규가 아닌 이 세계를 향하는 것처럼 들려온다.

암흑 속 불멸의 청춘

윤동주와 송몽규는 일본의 조선 통치를 비판하면서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망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 안에서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알 수 없는 주사를 지속적으로 투여 받다 사망했다. 윤동주의 동생 윤혜원씨는 『윤동주 평전』에서 아버지와 당숙이 윤동주의 유해를 가지러 갔다 나오는 길을 떠올리며 ‘몽규 오빠의 모습이 꼭 뼈에 가죽만 씌워놓은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시체에다 방부제를 써서 전혀 상하지 않고 평상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윤동주를 먼저 보낸 뒤 송몽규의 최후 또한 처절했다. 송몽규는 비참한 꼴이 돼서도 끊임없이 주사를 맞아야 했고, 그 주사로 인해 평생의 동료 윤동주가 이미 죽었고 자신 역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 시대의 청년들은 끔찍한 현실을 깨부수기 위해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나섰으나, 거대한 힘에 의해 안타깝게도 모두 이뤄지지 못했다.
‘시인의 고백, 힘, 생, 생존, 생활, 문학, 시란? 비애 금물…’ 이것은 윤동주가 「참회록」을 쓴 종이 여백에 적어놓은 낙서들이다. 「참회록」을 쓰던 당시 윤동주의 심적 고통과 의식의 행적들이 몇 가지 단어들 속에 옮겨 붙어 있다. 그는 어떤 고통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일까….

흑백의 화면과 어우러진 시

『동주』는 흑백 영화다. 때문에 이 영화 속에서 어둠을 밝혀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한 줌의 햇볕과 촛불뿐이다. 영화 속에서 윤동주는 시를 쓰기 위해 심지에 불을 붙이고, 송몽규는 내일의 태양을 위해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민족이 민족을 핍박하고 억압하던 그 시절, 두 사람은 일제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갖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일제의 지배 속에서 어둠을 밝혀줄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이다.
『동주』에서는 윤동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내레이션을 통해 「흰 그림자」,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자화상」, 「참회록」, 「서시」 등의 시를 한 편씩 낭독한다. 윤동주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 형사에게 연행되기 전 떨리는 손으로 휴지 조각에 시집의 이름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당시 윤동주의 서글픈 감정을 꿰뚫으며, 좌중을 단박에 압도했다.
또한 『동주』는 일제의 잔인한 고문이나 격렬한 독립운동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제국주의 아래 스러져가는 한 개인들의 서글픈 단상을 온전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동주』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를 억압하고 죄인 취급하던 일본 형사가 점점 변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동주』의 후반에 이르러 침울한 분위기가 극단으로 고조될 즈음, 일본 형사는 자신 또한 일제의 제국주의에 이용당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특히 『동주』의 막바지에서 일본 형사의 동공이 흔들린 것은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파들거리는 눈빛으로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정명교 교수(문과대·한국현대시)는 『동주』에 대해 “식민지 시대 한국인의 삶에 대해서 보다 중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며 “각기 다른 삶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뿌리와 사회적 환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이자 문학가인 송우혜씨는 자신의 저서 『윤동주 평전』에서 윤동주의 시를 ‘부끄럼이란 정서에 의탁해 우리 삶의 고뇌를 슬퍼하고 반추하는 구절들이 참으로 뛰어나다’고 서술했다. 한평생을 시로써 살았던 시인 윤동주. 그리고 독립운동가 송몽규. 그들은 그 시절, 그렇게 살다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오늘의 청춘들에게 한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달려 나가라고 등 두드려주고 있다.

송민지 기자
treeflame@yonsei.ac.kr

<사진제공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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