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템플스테이, 서울 끝자락에 두고 온 뜻밖의 인연들

많은 대학생의 하루는 5분단위로 울리는 알람소리와 함께한다. 시간에 쫓겨 달려가는 사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을 하루에 몇 번이나 확인하는지. 이처럼 오늘날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홀로 만끽하는 달콤한 일탈을 꿈꿀 것이다. 기자가 짐을 꾸려 북한산 기슭의 절로 템플스테이*를 떠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사람도 자동차도 없는 고즈넉한 절간에서 유유자적 하는 삶이라. 이에 기자는 부푼 마음을 안고 지난 2월 23~24일 개강하기 전 화계사로 템플스테이 체험을 다녀왔다.

 

첫째 날, 산자락에서 만난 뜻밖의 사람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템플스테이를 위해 강북구 화계사를 찾은 기자는 대적광전 2층 큰 방문을 연 순간, 그만 당황을 금치 못했다. 기자를 향해 쏟아지는 파란 눈, 초록 눈의 시선들. 방안을 가득 메운 외국인들을 보고 놀란 기자는 그만 침을 꿀꺽 삼켰다. 1박 2일 동안 템플스테이의 진행을 맡은 일심행 보살은 “오늘은 특별히 외국인 참가자들이 많으니 프로그램을 영어로 진행해도 되겠냐”고 웃는 낯으로 묻는다. “영어라니” 영어실력이 젬병인 기자의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템플스테이를 함께할 참가자 9명 중 6명이 외국인이었다. ‘산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신청했던 템플스테이는 졸지에 영어캠프가 돼버린 셈이다. 점심 공양을 드리며 잠깐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들은 국적도 직업도 너무도 다양했다. 미소를 띤 얼굴로 반갑게 인사했던 두 독일 여학생은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이었다. 영상제작자인 인도계 영국인 남성은 한국에서의 전시를 위해 런던에서 왔다고 한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는 불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텍사스 출신의 배낭여행자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자매까지. 그중 언니인 탈리사 뒤야니(Talisa Dwiyani, 25)씨는 이번이 한국에서의 두 번째 템플스테이라고 했다. 동생에게도 템플스테이를 소개해주고 싶었다는 탈리사씨는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늘 마감기한에 쫓기며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마침 동생과 서울 여행을 하게 돼 일상 속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금 템플스테이를 찾게 됐다”고 전했다. 서울의 끄트머리, 북한산 기슭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 휴양을 위해 찾아온 기자에게는 계획에도 없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파란만장한 하룻밤이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점심 공양 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하게 된 첫 일정은 ‘산행’이었다. 참선**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좌선과 걸으면서 하는 행선이 있다. 이번 산행은 묵언을 하며 천천히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행선의 일종이었다. 참가자들의 산행을 이끈 화계사의 연수국장인 산성스님은 “걸음을 걷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등산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다. 굽이치는 고목들 사이 가려진 틈으로 하늘이 보였고, 얼어붙은 개울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도 들렸다. 지난날 시간에 쫓기며 살다가 놓쳐버린, ‘대자연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느낄 수 있던 오르막이었다. 정상에 오르자 한 눈에 보이는 삼각산의 깎아지른 봉우리가 절경이었다. 서울의 탁 트인 전망을 카메라에 새겨 둔 채 참가자들은 다시금 절로 돌아와야만 했다.

 

 

 

4시 30분. 다소 이른 저녁 공양시간 이후에는 저녁 예불***과 좌선이 있었다. 우리나라 명상은 다른 나라의 명상과 달리 눈을 감지 않고 진행되며 더 엄격하다. 명상 중에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면 스님이 긴 대나무 회초리인 장군죽비로 등을 때려 주의를 주기도 한다. 이를 ‘경책’이라 한다. 좌선을 지도하며 산성스님은 “갖은 생각이 왔다가 다시 떠나갈 테니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는 말라”고 말했다. 허공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몰아내려 애썼지만 어제와 내일의 일들이 어찌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랴. 결국 좌선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다가 기자는 그만 죽비로 등을 차지게 얻어맞았다. “퍽” 유쾌한 성격의 마이클은 기자가 죽비를 맞는 모습이 신기했던지 ‘자신도 한 대 맞아보겠다’며 번쩍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퍽” 산성스님에 따르면, 오늘날 서구에서 참선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 심신의 안정을 위한 자기수양법으로 커다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외국인 참가자들은 명상 방법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일정을 마치고 방에 돌아오자 시간은 저녁 7시 30분. 기자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폭신한 이부자리에서는 나무 태운 냄새가 났다. 일상에서는 초저녁이라고 생각했던 시각인데 절에서는 마치 한밤처럼 느껴졌다. 여러 언어가 한데 섞인 말소리가 점차 아득히 멀어져갔다.

 

이튿날, 절에 내려놓고 가는 다양한 이야기

 

새벽을 알리는 고즈넉한 사찰의 종소리는 이윽고 여성 참가자들이 머물고 있는 대적광전 2층 큰방에까지 널리 퍼졌다. 눈을 떠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온 뒤야니 자매는 이미 자리에 없었고, 두 독일 유학생 친구들은 조용히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때는 새벽 4시 20분. 절에서는 새벽과 저녁, 하루 두 번 이곳 법당에 모여 예불을 한다. 예불은 저녁예불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며, 아침에는 ‘헌다게’라고 하는 아침예불문을 독경한다. 독일 유학생 마리 윙클러(Mareile Winkler, 21)씨는 “이곳 법당에서 드리는 예불이야말로 스님의 생활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의식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4층 선방****으로 향했다. 새벽 참선은 좌선, 몸 풀기, 또다시 좌선 순으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아 어스름한 새벽 달빛 아래 쥐죽은 듯 고요한 선방의 분위기는 일찍 일어난 참가자들을 수면에 취하게 할 법도 했지만 더 이상의 경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침 6시, 구수한 밥 짓는 냄새는 참가자들을 1층 공양실로 인도했다. 채식 위주의 사찰음식은 의외로 외국인 참가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언니와 함께 참여한 베르나디아 뒤야니(Bernadia Dwiyani, 21)씨는 “그 어떠한 조미료나 육류를 사용하지 않고도 맛이 나는 이곳 음식이 정말 신기하다”며 “조리방법을 배워서 이슬람 신자인 엄마한테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고 전했다.
중생의 108가지 번뇌를 의미한다는 108배는 불가의 종교의식이자 마음을 비우는 수행법 중 하나다. 아침 8시 정각. 법당 안은 엄숙하고 나직한 음성의 ‘영문 108배 참회문’이 울려 퍼졌다. 불상을 향한 스님의 합장인사와 함께 시작된 108배는 약 30분간 쉼 없이 진행됐다. 스님을 쫓아 일정 구호와 속도에 맞춰 절하는 과정은 지루할 틈도 없이 지나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에 온 외국인 참가자들은 국적뿐 아니라 종교도 각기 달랐다. 그들은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동기를 하나같이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인 마이클 라미레즈(Michael Ramirez, 30)씨는 “기독교 신자로서 예불의식은 가장 어려운 과제였지만, 타종교의 믿음을 엿볼 수 있는 관찰행위이자 도전으로 여김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마이클씨는 “덕분에 새로운 종교, 언어, 음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며 만족을 표했다. 또한, 천주교 신자인 탈리사씨는 “종교적 가르침을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의 질을 증진시킨다”고 말하며 다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환경에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화계사 템플스테이 실무자로서 약 1년간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일심행 보살은 “종교적 간극을 해소하고 보다 개방된 마음으로 템플스테이를 하나의 경험으로써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 한복판의 도심 속 자연에 위치한 사찰, 화계사에서 보낸 1박 2일간의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흘러갔다. 속세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휴식과 안정을 취하고자 찾아온 템플스테이.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 속에서 기자는 또 다른 세상살이를 경험했다.

 

 

*템플스테이 :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사찰문화를 알리기 위해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체험을 원한다면 템플스테이 홈페이지(http://www.templestay.com/)를 이용하자. 날짜나 프로그램, 위치에 따라서 예약 가능한 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참선(參禪) :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불교에서 하는 수행으로서의 명상을 말한다.
***예불 : 부처 앞에 경배하는 의식을 말한다.
****선방 : 불교용어로 참선하는 방을 말한다.

글·사진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글 최서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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