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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마주봐야 할 역사, 베트남전 전쟁범죄베트남의 눈물 속에 비친 우리의 슬픈 자화상
  • 김지성 기자
  • 승인 2016.03.04 20:37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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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1966년 12월 5일...(중략)...그들은 비단 양민 학살뿐만 아니라 온갖 야만적인 수단들을 썼다.
-베트남 꽝응아이(Quang Ngai) 성(城) 증오비 中-

(출처: 『미안해요! 베트남』)

지난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으로 미국이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제2차 베트남전(아래 베트남전)이 시작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트남전의 시작이다. 이어 지난 1964년 9월, 우리나라 정부는 베트남전에 국군을 파병한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자료에 따르면 1964년 9월부터 1973년 철수 시점까지 연 32만여 명이 파병됐으며, 5천여 명의 장병들이 희생됐다. 당시 우리 국군의 무용담과 전공(戰功)은 널리 알려졌으나,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는 오랜 세월 진실을 감춘 채 묻혀 있었다.

지난 1999년, 우리 국군의 베트남전 전쟁범죄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군의 전쟁범죄를 현지에서 직접 조사하고 세상에 알린 이가 바로 한베(한국-베트남)평화재단 추진위원 구수정 박사다. 베트남 정치국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수는 5천여 명이다. 하지만 구 박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소 9천여 명 이상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968년 퐁니(Phong Ni), 퐁넛(Phong Nut) 마을 학살 사건도 그중 하나다. 주월 미군 사령부 감찰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병대 청룡부대에 의해 두 마을의 무고한 양민 70명가량이 희생됐다.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아이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위 보고서의 사진자료를 보면, 가슴이 도려진 채 죽음을 맞이한 여성과 불에 타죽은 마을 주민의 참혹한 모습이 나온다. 또한, 베트남전 당시 곳곳에서 우리 국군에 의한 민간인 여성 강간 사건도 발생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 국군의 전쟁범죄가 공론화된 이후, 시민사회에서는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일었고 이는 오늘날의 위령비 사업, 마을 지원 사업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지난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양국 간의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서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처음으로 한국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고, 이후 대통령들도 유감의 뜻을 밝히거나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는 등 화해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정부의 더욱 책임 있는 사과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베트남 현지에서 활동 중인 구 박사는 “베트남 국민 중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며 “단순한 유감 표명에 그치지 않고, 정부 주도의 구체적인 진상조사와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은지(정외·12)씨는 베트남전 전쟁범죄와 관련해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고, 참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12월 타결된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에서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가 큰 논란을 낳았다. 이번 위안부 합의를 기점으로 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나 문제 제기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역사에 종지부란 있을 수 없다. 지나간 역사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성찰하며 미래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전 전쟁범죄, 모두 똑바로 마주 봐야 할 ‘우리’의 역사이다.

*통킹만 사건 : 지난 1964년 베트남 동쪽 통킹만에서 일어난 북베트남 경비정과 미군 구축함의 해상 전투 사건. 미국은 이 해상전투를 빌미로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호찌민(1890~1969) : 베트남의 혁명가·정치가, 구(舊)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 대통령. 베트남의 독립 총봉기를 주도해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1945년부터 지난 1969년까지 베트남 정부 주석으로 재임했다.


김지성 기자
speedbo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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