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니쉬 걸』, 남자의 몸에 갇힌 여인의 영혼이 해방되기까지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영혼과 정신은 육체를 통해 발현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몸이 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몸과 정신이 늘 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물며, 정신과 신체가 완전히 뒤집힌 사람의 삶은 어떨까? 영화 『대니쉬 걸』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깨닫고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 아이나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주인공 아이나는 덴마크의 주목받는 화가로, 화가인 아내와 함께 화목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 모델이 필요한 아내의 부탁으로 여자의 옷을 입은 순간, 내재해 있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낀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던 여장이 더는 그에게 장난으로 여겨지지 않고, 점점 그는 ‘아이나 베게너’가 아닌 여성인 ‘릴리 엘베’로서의 자아를 찾아간다. 하지만 ‘릴리 엘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가 정신분열자 등으로 매도당할 때 아내만이 그를 온전하게 받아들여 줬다. 남성의 신체와 여성의 정신 사이의 부조화로 괴로워하던 그는 완전한 여자가 되기 위해 수술대에 오른다.

‘그녀는 늘 내 안에 있었어’

오늘날, 사회 통념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아웃사이더로 고통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아이나의 고통은 타인에게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괴로워했던 이유는 목소리와 손, 성기를 비롯한 모든 신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데 있었다. 아이나는 릴리의 영혼으로 살고 있지만,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면 그곳에는 여성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의 육체를 갈망하지만, 여성의 부드러운 몸짓을 흉내 내는 손은 핏줄이 선명한 남자의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아이나에게 거울은 혼란의 근원이다. 지나가는 창문 한 장에 비친 상조차도 그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아이나의 표정에서 내비치는 경악과 슬픔, 그 정도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으리라. 이러한 아이나의 신체는 여성의 영혼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출한다. 한 달에 한 번 월경하듯이 코피를 흘리는 것이다. 신체와 정신의 괴리로 인해 그는 아이나와 릴리의 두 자아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신을 질책하기도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 ‘내가 누군지를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본질이 릴리임을 인정하고 이제는 타인을 위해 아이나로 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잠옷조차 여성의 것을 입으며, 언제나 릴리이기를 소망한다. 용기를 내기 시작한 그는, 더 나아가서 ‘신의 실수’인 자신의 성을 바로잡기 위해 여성이 되는 수술을 받기로 한다.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위험한 수술 앞에서도 그는 자신의 뒤틀린 존재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주저하지 않는다. 수술 후 눈물을 흘리며 ‘이제 완전한 나 자신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자아를 찾은 그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고통과 그 부조화를 깨부수기 위한 용기가 그의 표정과 미장센을 통해 영화 전반에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나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당신

아이나의 방황의 순간에 그와 함께하는 인물은 바로 그의 아내 게르다 베게너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아이나의 고통이 깊어질수록 함께 주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아내 게르다의 비애와 희생이다. 잃어버린 아이나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원망하지만, 그 사랑을 릴리에게 치환하여 결국은 여자가 된 아이나를 받아들이는 아내 게르다. 릴리가 돼버린 남편 앞에서 혼란에 빠지는 것도 잠시, 게르다는 아이나를 향한 무한한 헌신과 애정을 보여 준다.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게르다는 다가오는 새로운 남자도 마다하고 이제는 남편이 아니게 된 릴리를 보살핀다. 릴리가 외출할 때나 아플 때, 기댈 곳이 필요하거나 홀로서기를 할 때, 게르다는 친구이자 동반자로서 늘 릴리의 곁을 지킨다. 극중 여자로 살아가는 릴리의 모습에서는 진정한 행복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그 행복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아내의 존중이었다. 의심과 호기심의 눈초리는 릴리에게는 또 다른 고통일 뿐이었다. 릴리의 의지가 좌절당할 때면 게르다의 사랑이 버팀목이 되었다. ‘사랑해, 당신은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고 나를 존재할 수 있게 해 줬어.’ 라는 릴리의 말에서 게르다가 릴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플라톤은 육체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말한다. 릴리의 영혼도 남성의 육체에 가둬져 있었다. 이 영화는 릴리가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운명에 도전하며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과정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그를 지켜보는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나가 여자의 모습을 하고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여자로 여겨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체적 성과 정신적 성의 괴리로 고통 받는 성전환자들 모두에게는 어쩌면 게르다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드레스를 입고 기뻐하는 아이나를 존중한 게르다처럼, 영혼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세상의 수많은 ‘릴리’들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최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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