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 소금길을 걷다

신촌 일대는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 매우 익숙한 장소다. 늘 지나다니는 장소인지라, 우리는 쉽게 주위 환경에 무감각해지곤 한다. 하지만, 주위를 더 자세히 둘러보면 무심히 지나친 곳에 숨겨진 색다른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색다른 장소를 찾아내는 것은 마치 보물찾기 같다. 우리 학교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보물, 염리동 소금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범지대에서 관광명소로의 변신

염리동 소금길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약 3분 정도 걸으면 찾을 수 있다. 평소 오고 가면서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명소이다. 이러한 까닭에 ‘등잔 밑의 어두움’이라는 수식이 잘 어울리는 장소이다.
먼저 소금길이라는 명칭은 염리(鹽里)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름을 통해 이곳이 소금과 관련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근처에 마포나루터가 위치했고, 인근 대흥동에는 소금 창고가 있었기에 과거 소금장수들이 이곳에 거주해 염리라는 지명이 붙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소금의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소금장수들이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소금장수들이 떠나면서 이곳의 주택가에 사람이 비게 되고 이에 따라 길목이 어둡고 복잡해지게 됐다. 그러자 이곳은 점차 범죄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는 장소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서울특별시의 ‘범죄 예방 디자인 사업’ 차원으로 실시한 소금길 조성사업 이후 이곳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골목마다 벽화가 그려진 후 실제로 범죄가 줄어들어, 사람들은 보다 안전하게 이곳을 지나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가기 꺼려졌던 어두운 골목길은 아기자기한 색감으로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고, 사진 찍고 싶은 장소로 거듭났다.

알록달록 색깔의 향연

이대역 5번 출구에서 조금 걸어가면 노란색으로 칠해진 예쁜 전봇대가 염리동 소금길의 시작을 알린다. 길 위에는 노란색 점선으로 코스가 표시돼, 사람들이 쉽게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돼있다. 이목을 끄는 옆면의 벽에는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길 아래에는 어렸을 때 한 번 쯤 해 봤을만한 땅따먹기 놀이가 그려져 있어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주위를 둘러보는 내내 이곳 벽화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계속 새롭게 그려지고 있었다.
골목골목이 어지러운 염리동 소금길은 처음 오는 이들에게는 매우 복잡하고 낯선 공간일 수 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길. 앞서 언급한 길 위의 노란 점선 외에도 찾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 전봇대마다 매겨진 번호와 이 번호를 바탕으로 그려진 지도가 있다. 이러한 지도는 범죄 예방이라는 소금길 조성 사업의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소금길 이용을 보다 수월하게 한다.
또한 중간 중간 운동시설과 스트레칭을 하며 쉴 수 있는 쉼터가 조성돼있어 주민들의 건강증진은 물론 관광객들이 1.7km 남짓의 길을 걷는 도중 한 숨 돌리며 쉴 수 있었다. 염리동 소금길의 묘미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이다. 오르막길에서는 힘들다가도 내려갈 때는 상쾌하게 걸어 내려갈 수 있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찾았을 무렵에는 단풍이 물든 풍경도 아름다웠고, 높이 올라갔을 때 내려다보이는 신촌 일대의 모습도 새로웠다. 매일 지내는 신촌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도 이곳이 제공하는 낙 중 하나이다.

사람 향기 넘치는 공동체

염리동 소금길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은 길 곳곳에 그려져 있는 그림에 그치지 않는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또 다른 장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높이 솟은 아파트에 사는 오늘날, 골목의 좁은 벽을 사이로 한 동네의 주민들이 가족처럼 친밀하게 사는 모습은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소금길을 걸으며 만난 주민들은 담벼락이 옆방 벽인 양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채소를 정리하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감 넘치는 이곳 소금길의 삶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다.
또한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이곳의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오래된 동네에서 볼 법한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때가 한껏 탄 동전 장난감 판매기가 줄지어 있는 예스러운 구멍가게도 볼 수 있고, 롤러스케이트 같이 어린 시절에 사용했을 법한 물건들이 진열된 동네 문방구도 만날 수 있다. 그냥 걷기만 하면 힘들고 단조로울 수 있지만, 이런 소소한 풍경에 흥미를 느끼며 소금길을 돌아보면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대가 높은 곳에 상수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어졌던 시설인 상수도 가압관이 1번 전봇대 부근에 ‘소금마루’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소품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고, 공예품도 전시돼 있다. 카페, 옥상텃밭 등도 있기 때문에 걷다가 잠시 들러 아기자기한 소품을 둘러보는 것도 이곳 염리동 소금길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염리동 소금길이 여러 가지 매력을 지닌 채 기다리고 있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사진 찍기에도 좋고, 사람 사는 모습을 느낄 수 있으며 잠시 어린 시절 추억에 젖어볼 수도 있다. 학업에 지쳤을 때 잠시 학교를 나와 가까이에 있는 이곳 염리동 소금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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