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캠퍼스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계절이다.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시간을 품은 교사(校舍)들이 보인다. 1917년에 이 곳에 자리잡은 후 100여 년간 채워진 캠퍼스의 곳곳에는 그 시간의 켜들을 간직한 건축물들이 놓여 있다. 캠퍼스 대표건축물들이라 할 수 있는 본관,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핀슨홀 등은 1920년대 서양인들에 의해 서양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교사들로 이후 한국 대학 건축의 전형이 된 건축물들이다. 한편 1950년~1970년대에는 철근콘크리트구조를 사용한, 가장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한국적 모던양식의 교사들이 주로 지어졌는데, (학생회관, 백양관 등) 같은 시기 지어졌지만, 이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건축물이 하나 있다. 바로 1960년대 말~1970년대 말까지 한국 건축의 화두였던 ‘현대건축에서 어떻게 한국성을 구현해낼 것이냐’라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는 ‘루스채플’이다. 

루스채플은 학생회관과 세브란스 병원 사이, 수경원이 있었던 언덕 위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주변의 분주함과 다른 고요함이 머무는 곳. 커다란 지붕이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건축물은 건축가 김석재의 1974년 작업이다.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의 제자였던 김석재는 김중업과 마찬가지로 한국전통건축의 조형적 형태를 현대적으로 번안하는 것에 몰두하였는데, 루스채플 역시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루스채플의 이미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려 17m나 뻗어나온 거대한 지붕이다. 이러한 거대지붕이 가능했던 것은 철골구조를 이용한 '캔틸레버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캔틸레버보, 일명 외팔보는 철골, 철근 등의 재료 사용이 가능해진 이후에나 가능했던 건축형식으로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Falling Water) 등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예로는 건물 입구에 주로 설치된 캐노피* 등이 대표적이다. 루스채플은 캔틸레버 구조를 지붕에 사용하였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거대한 지붕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 이 지붕은 그 내부가 구조적 부재들을 제외하고는 비워져 있으며 외피는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덮여 있어 상대적으로 가벼운 구조체이다. 지붕의 하중은 내부철골구조에 의해 수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전달됨에 따라 아래로 처질 수 있는 현상을 방지하고 있으며, 수평으로 전달된 하중은 하부에 있는 6개의 기둥으로 전달되어 전체 건축물의 구조를 형성한다. 심지어 하부의 6개 기둥들은 외부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아, 루스채플의 지붕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루스채플의 캔틸레버 구조를 이용한 형태는 한국 건축의 지붕과 처마가 만들어내는 조형미를 현대적으로 번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통건축이 길게 뻗어 나온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공포(栱包)**’라는 부재를 사용하였듯이, 루스채플에서는 길게 나온 지붕을 지지하기 위하여 캔틸레버보라는 새로운 시대의 재료와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루스채플은 1960년대 후반 ‘한국성’을 찾기 위한 한국 현대건축의 고민을 담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구현해내고 있는, ‘전통’과 ‘첨단’을 동시에 담고 있는 건축이다. 배흘림기둥을 닮은 듯한 기둥의 모습이나 기둥머리 부분의 모습, 종이 있는 부분을 둘러싼 구조체 모두 전통건축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있다. 채플 앞에 있는 ‘종’역시 이러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중세 교회에 있던 종탑을 한국적으로 해석해내어, 수직적 배치가 아닌 수평적 배치로 한국의 전통적인 종을 위치시켜 루스채플이 가진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캠퍼스 안에는 각 시대의 화두에 응답하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다수 있다. 그중 하나인 루스채플을 소개하며 100여 년 동안의 역사를 간직한, 100여 년 동안의 한국 근현대건축의 질문들을 간직한 캠퍼스 내 건축물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본다.  

 
*캐노피(Canopy) : 건물 입구 등에 돌출되어 설치된 지붕 혹은 덮개. 
**공포(栱包) : 전통건축의 처마 끝 하중을 받치기 위해 나무부재로 짜맞추어 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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