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파리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로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여 있다. 파리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테러로 13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352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테러가 충격적인 것은 도심 한복판에서 저녁을 먹고 축구를 관람하고 공연을 보는 일상 속에서 대규모 폭력적인 테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는 미국의 9·11테러 이후 빈번하게 일상화된 테러에 노출돼 왔다. 2015년 8월에도 러시아 여객기에 대한 폭탄 테러로 탑승자 전원이 숨지는 테러가 발생했고, 이번 주말에도 IS 추종단체로 알려진 ‘안사르 알딘’이라는 조직이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 있는 호텔을 습격해 170명을 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파리 테러는 21세기 국제질서의 새로운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개인 혹은 단체도 치명적 무기에 접근할 가능성이 커지고, 통신을 이용해 거대한 조직을 형성한다. 그동안의 테러가 알 카에다나 탈레반과 같은 단체를 통해 간헐적으로 발생했다면 이번 테러의 배후세력인 이슬람 국가(IS)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일부 영토를 장악하고 국가임을 자처하는 국제적 테러조직이다. 또한 과거 테러가 인질, 암살, 납치를 통해 소규모 피해를 유발했다면, 최근의 테러는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대한 무차별 테러를 통해 대량살상과 대량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이념, 종교, 인종을 배경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뚜렷한 정치적인 목적과 명분을 중요시했던 과거의 테러와 그 양상이 다르다.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 정부는 테러를 프랑스에 대한 ‘전쟁 행위’로 규정하고 IS의 본거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도 여기에 동참하며 공세적 군사개입과 반테러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에 발생하는 테러가 그 조직과 활동이 네트워크(network)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테러는 테러범이 특정 국가에 폭탄을 가지고 잠입해 무자비한 살상을 가하는 형태가 아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국적과 상관없이 불만 세력을 포섭하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조자들을 규합해 테러를 벌인다. 이번 테러도 ‘몰렌베에크 세포’라고 불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벨기에, 시리아, 프랑스에 흩어져 있는 동조자들을 규합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시킨 것이었다. 따라서 프랑스, 미국과 같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국가라 하더라도 전 세계에 네트워크적으로 흩어져 비전통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테러 집단을 제압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실제로 세계는 지난 14년간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테러는 오히려 새로운 양상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은 제거되지 않았으며, IS와 같은 국제적이고 준국가적인 거대 테러 집단을 낳았다. 세계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해 왔으나 테러는 오히려 그 빈도, 희생자, 테러조직의 숫자에서 약 10배 가까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인류는 국제적인 공조와 연대를 통해 반인권적인 테러에 대항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9·11 이후 서방세계에서 지속되어온 일방주의적 테러정책이 오히려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에서 피해를 본 수니파를 주축으로 IS를 낳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IS를 없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무슬림의 불만, 종교에 대한 차별정책이 존재하는 한 테러리스트의 탄생을 막을 수는 없다. 서구의 테러 궤멸 전략은 종교에 대한 관용과 인도적 지원 속에서 이슬람권의 전폭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때 가능할 것이다. 

파리 테러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G20 중에서 일본, 중국을 제외하고 대테러방지법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미 우리는 북한에 의한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와 같은 테러를 경험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북한산을 배경으로 중동의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알누스라는 조직의 깃발을 든 외국인 노동자의 사진이 나와 국내에 IS 동조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테러의 징후를 포착하고 예방하며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대테러방지법의 제정을 통해 테러리스트에 대한 합법적인 감시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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