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지하, 언더시티를 들어 가보다!

지난 2014년, 석촌호수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전국적인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제2롯데월드 건설과 9호선 개통이 그 원인으로 지목됐고, 정부와 산하기관들은 대대적인 변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지난 4월 지하정보 지원센터를 올해 안에 설치하겠다고 한 국토교통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아직도 크고 작은 싱크홀이 서울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실제 지하 모습은 어떨까. 이에 기자는 한강, 노량진, 석촌호수를 직접 방문해 지하공간의 문제점을 진단해봤다.

지하공간 통합안전관리체계, 다 하지 못한 숙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고도의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속 성장 때문일까. 지하공간은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개발됐다. 이 때문에 현재 지하공간은 지하 시설물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며, 지하공간에 대한 통합적 관리와 개발 또한 이뤄질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금도 자연스레 무분별한 지하공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지하수 유출이나 지반침하와 같은 사고들이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지난 5년간 서울시에서만 싱크홀이 3천328건이나 일어났다는 통계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다수의 전문가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분별한 지하공간의 개발이 지하수 수위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한무영 교수(공과대·환경공학)는 “고층빌딩 건설을 위한 굴착이나 지하철 노선 증축 등 무분별한 지하공간 개발 때문에 지하수의 수위가 하락했다”며 “이 때문에 빈 공간이 생겨 흙이 하수관을 잡아줄 힘이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4년 서울시 곳곳에서 싱크홀이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 4월 지하공간 통합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인 추진 전략으로는 ▲지하공간 3D 지도 구축 ▲지하정보 통합활용체계 구축 ▲지하정보 지원센터 운영 ▲지하정보 관련 법제도 정비가 있다. 그러나 계획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위 4가지 계획을 오는 2019년까지 완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범운영 중인 서울 지하공간 3D 지도에는 가장 중요한 지하수 정보가 누락돼 있다. 더구나 올해까지 설치하겠다던 지하정보 지원센터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우리대학교 임홍철 교수(공과대·지하공간건축개발)는 “지하공간에 대한 통합 지도 구축은 다양한 주체가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에서 주도권을 잡고 시행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관리 속 위험한 지하공간

지하공간은 ▲지하 시설물(상·하수도, 통신, 전력, 수도, 난방 등) ▲지하 구조물(지하철, 공동구, 지하보도·차도, 상가, 주차장 등) ▲지반(시추, 우물, 지질 등) 3가지로 구성된다. 서울시 규정에 따르면 지하 시설물은 종류에 따라 각각 설치할 수 있는 깊이가 다르다. 상·하수관, 전기, 통신, 가스 등 생활 기반 시설은 지하 5m 위쪽에 매설해야 한다. 지하로 이동하거나 쇼핑할 때 이용하는 지하보도 및 상가, 지하 광장은 지하 5~20m, 지하철과 지하 차도는 지하 20~40m 구간에 들어선다. 지하 40m 아래 구역에는 초고압 전력이나 폐기물 수송 시설, 지하 발전소 등이 들어설 수 있다. 특히 이런 지하 시설물의 경우, 서울의 상수도를 다 연결하면 길이가 1만 5천774㎞, 하수관은 1만 157㎞에 이른다. 통신선(3천545㎞), 전력선(493㎞), 가스관(1천976㎞), 난방열관로(358㎞) 등도 거미줄처럼 땅속에 묻혀 있고, 깊이에 따른 설치 규정도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도별로 얽혀있어 노후화 된 시설물에 대한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관이 파열되거나 부서졌을 경우 지반에 스며들어 지하 생태계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고, 벌어진 틈으로 토사가 쏟아져 도로가 내려앉을 위험도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노웅래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노후 하수관 현황’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싱크홀 발생의 81.4%는 노후 하수관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기자가 영등포 지역에 있는 원형 하수관을 살펴본 결과, 하수관 내부는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고 천장의 콘크리트가 벗겨져 있는가 하면 철근이 그대로 드러난 곳도 있었다. 지난 14일 노량진에서 하수관 정비작업을 하던 준설업자 박재수(58)씨는 “준설 작업 중에 하수관에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물론 경차 ‘티코’까지 건져본 적이 있다”며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서 박씨는 “노량진 하수관은 수십 년 동안 썩은 생선이 굳어 냄새가 너무 심해 두 시간 만에 작업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준설업자 이현상(35)씨는 “작업 환경이 워낙 열악하니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는 인력과 작업 환경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배관과 전선도 지상에서 지하로 옮겨지며 지하공간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임 교수는 “근대화 이후에 시공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하나하나 다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하수관에 무분별하게 버리는 쓰레기나 공장에서 불법으로 버리는 폐수, 화학물질, 유독가스가 하수관의 노후화를 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 도쿄

지하공간 설계의 성공 사례로 일본 도쿄를 들 수 있다. 도쿄는 본래 서울보다 지질상태가 열악하고 지진의 영향과 노후 하수관으로 인해 지반침하가 수시로 일어났던 지역이었다. 이에 정부의 주도 아래 대대적인 노후 하수관의 정비와 첨단 탐사장비를 활용한 지하 동공탐사* 등의 예방 작업이 실시됐다. 또한, 일본 정부는 10년 전부터 지반침하에 대한 원인별 메커니즘을 분석해 30여 년이 넘은 노후 하수관에 대해 전수조사 후 개량 및 정비를 시행했다. 이는 도쿄시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도쿄시가 지난 2014년 하수관 관리에 쓴 예산은 6조 9천579억 원으로 서울시 예산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그 결과, 지반침하의 비율이 지난 1999년에 비해 28%로 대폭 감소했다.
우리나라도 서울시를 중심으로 정비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각 지자체는 예산이 적어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4년간 1조 2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노후 하수관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한정적인 예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정비를 하려면 세밀한 조사와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괴물’은 실험실에서 유독성 화학약품인 포름알데히드**를 무심코 하수관에 흘려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괴물이 탄생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영화 속 괴물처럼은 아니지만, 재해의 형태로 우리를 덮칠 수 있는 위험이 지하에 충분히 존재한다. 정부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더 세밀한 조사와 지하공간 통합안전관리체계 구축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설계 및 개발을 해 대형 사고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동공탐사 : 비어있는 공간을 탐사하는 행위.
**포름알데히드 : 공기 중에 포함된 메탄에 햇빛과 산소가 화학 반응하여 생성되는 가연성 화학 물질. 폐기할 경우에는 유해화학물관리법과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반드시 고온소각하거나 고온 용융ㆍ고형화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다.

 

글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사진 강수련 기자
training@yonsei.ac.kr
 

<자료사진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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