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에 나선 ‘10만 명’의 사람들

지난 11월 14일 광화문에서 ‘민중총궐기대회’가 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주최측 추산 10만 명(경찰 추산 4만 7천 명)의 노조·시민단체 회원들은 광화문과 서울광장 일대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집회 참가자(아래 집회자)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들이 광화문으로 모였다. 경찰과 집회자들의 충돌은 이때부터 예견돼 있었다. 이러한 갈등의 현장을 담기 위해 기자는 광화문으로 나가봤다.

▲ 기자의 취재 이동 경로 <자료사진 네이버 지도>

낮 2시부터 4시, 집회자들 속속들이 세종대로로 모여

▲ 서울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

지난 11월 9일 중구 정동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층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전국대표자회의 및 투쟁선포식(아래 투쟁선포식)’은 5일 후의 10만 명 집회를 예고했다. 당초 주최 측은 광화문과 서울광장 일대에 집회신고를 했지만, 광화문 광장은 원천적으로 집회 가능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서울시는 서울광장 일대에만 집회를 허가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투쟁선포식에서 서울광장에서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로의 행진 계획을 강행했다. 11월 14일, 집회자들은 서울광장·서울역 광장·대학로에서 개별 집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을 비롯해 세종대로에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산하 노동조합 ▲시민단체 ▲노동당 ▲농민단체 등이 결집했다. 대학로에 모인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그곳에서 출발해 종각역 부근까지 행진했다. 모든 집회자들은 서울역 광장에 모여 서울광장 인근까지 이동했다.

낮 3시, 서울광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최 측의 자료를 읽고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자료와 영상들은 모두 노동개혁 문제나 국정 교과서 문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등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집회자들은 ‘노동시장구조개악 저지, 학교비정규직 차별철폐’, ‘세상을 뒤집자’, ‘역사쿠데타 저지’,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외치고 있었다.

집회자들의 집회 참가 이유는 다양했다. 민주노총 일반노동조합 소속 박인수(49)씨는 “일반해고 문제와 임금피크제, 금융노동시장 개혁 등의 노동개혁은 ‘노동개악’이며, 이를 저지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참가이유를 밝혔다. 밝혔다. 김리은(사회·14)씨는 “국정 교과서 문제 해결 촉구가 집회 참가의 주요 이유였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不通)도 주요 이유로 언급됐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 박모(55)씨는 “국민들과 정부와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참가했다”고 밝혔다.

낮 4시 15분, 집회자들의 이동이 시작되다!

낮 4시가 되자 집회자들의 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세종대로 사거리에 설치된 차벽을 우회해 청계광장을 통해 광화문 광장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불법시위를 대비해 동원된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었고, 경찰 차벽이 부분적으로 설치되기도 해 광화문 광장 진입은 원천 봉쇄돼 있었다. 이에 집회자들과 경찰 측 간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경찰 측의 이러한 대응에 불편을 토로했지만, 경찰 관계자는 “시위대가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벽을 설치하고, 경찰 인력을 배치해 길을 막았다”며 “시민들에게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화문을 지나가던 시민 김모씨는 “우회하는 길을 알려주고 있지만, 계속해서 돌고 돌기만 할 뿐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불편을 전했다.

▲ 경찰의 대응에 불편을 제기하는 시민


이후 세종대로 사거리에서는 경찰 측이 “물대포를 발사할 예정이며 취재진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주길 바란다”는 경고 방송을 했다. 시민들은 집회 장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기자는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다시 들어가려고 해도 견고한 차벽으로 인해 불가능했다. 이에 여기저기서 집회자들과 시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안국동 사거리로 행진하는 집회 참가자들

얼마 후 기자는 연합뉴스 빌딩과 조계사를 통과해 안국동 사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광장에서 시작된 집회자들의 행진이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조계사 인근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집회·행진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고, 집회자들은 차벽에 막혀 행진을 저지당했다. 이에 대응한 집회자들은 차벽에 포스터를 붙여 차내에서 경찰이 증거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것을 막았고, 각 단체의 깃발을 차벽 인근에 꽂았다. 이후 집회자들은 우비를 입고 물대포에 저항하며 앞으로 쉽게 나가기 위해 뒤돌기 시작했다. 안국동 사거리 인근의 차벽은 4~5겹으로 이뤄져 있었고, 살수차가 동원돼 경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으로 거리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해산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강제해산이 있을 것입니다.”

해당 방송은 거리 전체를 메우고 있었고, 수많은 집회자들은 상황을 지켜본 후 발걸음을 돌려 종각역으로 돌아갔다.
 

▲ 차벽 앞에 막힌 집회 참가자들

낮 5시 종각역 부근, 사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로 가득 메워진 거리

종각역 인근 거리는 수많은 집회자들이 메우고 있었다. 보신각 인근에서는 대학로에서 모인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일부 대학생들은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하고 있었고, 결집한 대학생들은 광화문 광장으로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대학교 이모씨는 “광화문 광장을 막는 차벽을 끌어내려 그곳으로 행진하고 싶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그래도 밤늦게까지 목소리를 내기 위해 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종각역 인근의 대학생들

한쪽에서는 농민단체의 행진이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농민단체 회원들은 상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농민은 죽어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였다. 이외에도 종각역 인근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종로 거리에는 노동가가 울려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율동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저녁 6시 다시 돌아온 세종대로 사거리, 아비규환의 현장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로 돌아가던 중 종로구청입구 사거리 부근에서는 차벽 위의 경찰들과 집회자들 간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집회자들은 사다리와 벽돌을 이용해 경찰들을 차벽 위에서 떨어뜨리려 했고, 일부 집회자들은 경찰 버스의 기름 주입구를 뒤적이는 등의 행위를 했다. 대다수의 집회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거나, 촬영해 SNS에 올리고 있었다.
 

▲ 차벽 위의 경찰을 끌어내려는 집회 참가자와 캡사이신으로 대응하는 경찰

경찰 측은 차벽 앞을 가로막는 가로수를 자르기도 하고, 충돌이 심해지자 캡사이신을 뿌리기 시작했다. 한 경찰이 캡사이신 분사기를 통해 집회자들에게 캡사이신을 투하하자 캡사이신 가루는 바로 가라앉지 않고 공기를 타고 확산돼 종로구청입구 사거리 인근의 집회자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 그리고 기자에게까지 퍼졌다. 일대가 뿌옇게 변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캡사이신 가루를 들이마신 집회자들과 시민들은 연거푸 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기자는 캡사이신을 피해 황급히 세종대로 사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도 경찰 측과 집회자 측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차벽을 제거하려는 집회자들의 움직임과 차벽 제거를 제지하려는 경찰 측의 대응이 맞붙어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동원해 집회자들의 행위를 막고 있었다. 집회자들은 플라스틱 장벽과 차벽에 밧줄을 묶어 벽을 끌어내리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진 일부 집회자들은 쇠파이프와 도끼를 들고 와 경찰차 유리나 플라스틱 장벽을 깨고 있었다. 경찰 측은 피해가 상당해 이러한 상황을 제지하기 위해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을 들고 있거나 밧줄을 당기는 집회자들에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대포를 가했다. 저녁 8시경, 이 과정에서 백남기(69)씨가 강한 물대포를 맞고 뇌진탕을 일으켜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재 백씨는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경찰 측의 대응에 분노한 집회자들은 횃불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경찰측과 주최측 모두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배제한 채, 대립관계만 지속할 뿐이었다.

집회는 밤 11시가 되자 오는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대회를 예고하며 끝이 났다. 이번 민중총궐기대회로 인해 집회 측과 경찰 측을 합쳐 약 140명이 다쳤고, 50대의 경찰 버스가 파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집회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민중총궐기대회는 ‘과잉대응’과 ‘폭력시위’라는 프레임으로 정치권과 언론 사이에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폭력성이 짙어진 이번 시위를 논하면서 ‘10만 명의 시민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결책 등은 간과되고 있다. 과연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인터뷰한 수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내재된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 우리 사회에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공론장이 없던 것은 아닐까.


글 박상용 기자
doubledragon@yonsei.ac.kr
사진 전준호 기자
jeonjh121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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