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좀비런 할로윈 에디션」 체험기

불이 꺼진 스산한 놀이공원, 언제 어디서 습격해올지 모르는 그들을 피해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다리를 멈추는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들, ‘좀비’들이 달려들어 당신의 목숨을 노린다…!

영화나 게임의 줄거리가 아니다. 바로, 「2015 좀비런 할로윈 에디션」(아래 좀비런)에서 만난 풍경이다. 지난 10월 31일 할로윈의 밤, 폐장시간을 넘긴 과천 서울랜드에서 기자가 직접 좀비들에게 쫓겨봤다.

즐길 준비 됐나!

밤 10시, 낮이었다면 코끼리 열차로 올라갔을 서울랜드 정문까지의 길은 으스스했다.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 불빛마저 닿지 않는 과천 저수지는 할로윈의 밤을 실감케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행사현장의 떠들썩한 음악 소리가 아니었다면 감히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을 것이다. 도착한 현장에는 이미 좀비런을 즐길 준비를 마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밤늦은 시각에 달려야 한다는 행사의 성격 때문인지 대부분 이십대 이상 참가자들이었다. 날씨가 춥기에 두꺼운 겨울옷으로 무장한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폐병동 간호사나 마녀 등 추위쯤은 상관 않고 개성 있는 분장을 뽐내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본격적으로 입장 전! 스태프가 나눠준 생존키트 안에는 좀비로부터 지켜낼 생명띠 3장과 그것을 고정시킬 허리띠, 지칠 때 에너지를 보충해줄 약간의 간식 등이 들어있었다. 등에 부착할 배번표도 받았다. 배번표에는 단순히 참가번호가 적혀있는 것이 아니라 좀비런 캐릭터 선택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유형을 드러낼 수 있었다. 종류는 총 4가지로 혼자서는 못 가는 ‘쫄보형’과 좀비보다 강한 ‘허세형’이 있고, ‘로맨스’가 필요함을 강조해 ‘남자끼리 왔어요’나 ‘여자끼리 왔어요’ 유형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한 편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어떤 문구로 자신을 드러낼지 잠시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 귀신과의 포토타임은 서비스!

달릴 때 방해되는 무거운 짐까지 맡기고 밤 10시 30분, 드디어 입장!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사람들을 반겨주는 포토 월이었다. 포토월을 배경으로 할로윈 의상을 차려입은 참가자들이 스타들처럼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포토월을 지나자 입구부터 들려온 떠들썩한 음악 소리의 근원지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서울랜드 ‘세계의 광장’에 위치한 ‘문라잇 스테이지’였다. 스테이지에서는 다양한 분장의 사람들이 저마다 요즘 핫 하다는 ‘EDM’에 맞춰 출정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좀비 분장을 한 스태프들도 리듬을 타며 참가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광장 왼편 ‘삼천리 동산’에 마련된 체험 이벤트 존에서는 뷰티아카데미 전문가의 손길로 좀비 분장을 받을 수 있는 부스 등 다양한 행사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체험 이벤트 존까지 길게 늘어진 게임코스 입장대기 줄 때문에 기자와 참가자들은 혼선을 겪었다. 컵라면이나 추운 날씨를 배려한 핫팩 등 다양한 물품을 증정해주는 줄이 입장대기 줄과 잘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입장하기로 된 일정과 달리, 10시 타임에 5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코스 내로 입장하는 바람에 진행이 더뎌져 스태프에게 직접 불만을 토로하는 참가자들도 일부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날카로워진 참가자들의 기분은 밤 11시 게임코스 진입과 더불어 흥분으로 바뀌었다. 게임의 첫 코스는 노천극장에 설치된 ‘닥터 Z’의 연구소다. 닥터 Z는 한반도에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장본인으로 유전자 변형을 통해 다양하고 치명적인 좀비들을 만들어 내며, 대학살까지 계획하는 인물이다. 그런 위험인물을 평범한 대학생 ‘아영’과 ‘해광’이 좀비대항군대인 ‘KEDA 군’과 협력해 그의 계획을 막는다는 것이 좀비런의 줄거리다. 참가자들은 좀비들을 피해 폭탄을 설치하고, 숨겨진 실험체들을 탈취하는 미션에 함께해야 한다. 보기만 해도 추운 맨다리 투혼의 닥터 Z와 그가 아끼는 좀비들 그리고 아영이가 무대에 올라 이 세계관을 연극을 곁들여 설명해준다. 막간을 이용해 한 참가자 커플을 무대에 올려 커플댄스를 추게 하는 등 이벤트 적으로도 재미를 더해 좀비와 맞서기 전 참가자들은 긴장을 풀게 됐다.

그럼 이제 달려볼까?!

정말로 방심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노천극장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좀비들로 인해 현장은 비명소리와 함께 달려나가는 참가자들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좀비 분장을 받은 일반 참가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좀비라서 취재에 동행한 사진기자는 게임이 시작된 지 5분도 안 돼 생명띠를 하나 뜯겼다. 취재 카메라를 들고 있어도 사냥에 예외는 없었다며 사진기자는 울분을 토했다. 폭탄 설치완료까지 3분의 제한시간 동안 좀비들을 피해 다음 코스로 이어지는 경로를 찾아 탈출해야 하는 ‘타임어택’ 코스와 침입 경보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함정을 피해 달려야 하는 ‘좀비인더트랩’ 코스가 연달아 나타났다. 스태프들은 안전사고를 유의해 3분 단위로 참가자들을 일정 수대로 끊어서 입장시켰다. 제대로 된 경로를 찾기 위해 서성이고 있자 한 좀비가 “같이 사진이라도 찍을까요?”라며 말을 걸었다. 기자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친절한 좀비는 사진찍기를 좋아해’라고 써진 포스터를 떠올리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친절한 좀비’ 플레이어 최재환(23)씨는, 좀비런 주최사 ‘커무브’와 함께 행사를 만들어가는 동호회 ‘크루세이더’의 멤버다. 최씨는 “군대 전역하고 지난 6월「인천 좀비런 파놉티콘 에디션」때 서포터즈로 참가 했는데 재밌어서 ‘크루세이더’에 가입했다”며 “이번 할로윈 에디션에는 ‘크루세이더’를 통해 좀비 플레이어로 참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는 “동호회에서 다양한 인연을 만들어 좋고, 행사에서는 좀비분장을 하고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하니 즐겁다”고 소감을 전했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사이렌이 울려, 최씨는 좀비로 돌아갔다. 기자 역시 생명띠를 사수하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다음 코스는 ‘용감한 로맨스’ 코스였다. 코스 입구부터 광대 분장을 한 좀비가 열심히 “솔로이신 분!”을 외쳤다. 남녀가 손을 잡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위기상황에 피어나는 연애감정을 노린 코스! 그 덕분에 ‘여자끼리 왔어요’와 ‘남자끼리 왔어요’ 배번표를 단 솔로남녀들이 광대좀비를 통해 매칭을 하고 코스로 뛰어들었다. 손을 조금이라도 놓으면 무서운 얼굴을 들이대며 손잡으라며 무언의 협박을 하는 좀비들을 보니 반강제로라도 커플성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용감한 로맨스’ 코스를 벗어나면 로맨틱한 분위기를 이어가라는 센스인지 불 켜진 회전목마가 기다린다. 이곳을 포토존 삼아 참가자들은 발걸음을 멈춰서고 한숨 돌리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라스트 미션’ 코스인 만큼 난이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좀비의 숫자도 늘어날뿐더러 이곳의 좀비들은 정말 끈질기다. 포식자의 증거로 자신이 뜯은 생명띠를 한 뭉치씩 들고 있는 몇몇 좀비들의 모습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별다른 미션 없이 그저 무사히 골라인에 골인하면 되는데 그게 가장 어렵단 것을 깨닫게 해주는 코스다. 그래도 참가자들이 지쳐있다는 것을 배려해 전력질주가 아닌 좀비들과 눈치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생명띠를 빼앗는 똑똑한 좀비들도 있다. 실제로 그 방식으로 뺏긴 사진기자는 차라리 뛰어서 뺏겼으면 억울하지도 않았다고 2차로 울분을 토했다. 기자는 『메이즈 러너』 주인공들 마냥 전력질주를 택했다. 그러나 평소 저질 체력인 기자는 골라인을 앞두고 숨을 고르다가 생명띠 두 개를 한 번에 뜯겼다. 

▲ 걱정마세요. 든든한 군인들이 좀비들로부터 지켜준답니다

골라인에 무사히 골인하고 아쉬움을 느낄 참가자들을 위한 보너스 코스인 ‘서든어택’ 코스가 마련돼 있었다. 동명의 게임 속 맵을 실물크기로 구현해둔 세트에서 KEDA 요원들의 엄호 하에 참가자들은 좀비들을 피해 탈출해야 했다. 원래 서바이벌 게임용으로 지어진 세트장이기 때문에 제대로 군복을 갖춰 입고 좀비들에게 총을 쏘며 “뛰어!"를 외치는 요원들과 총에 맞으면서도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좀비들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학과 동기들과 함께 참가했다는 우리대학교 김설아(의류환경․15)씨는 “좀비 플레이어들이 실감나게 연기를 잘한 나머지 너무 무서웠다”며 “열심히 뛰어다니라 정신이 없었지만 즐거웠다”고 참가소감을 전했다.

주최사 ‘커무브’는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지난 2013년 창업한 벤처기업으로 같은 해 5월, 우리대학교에서 최초로 「좀비런」을 선보였다. 커무브 대표 원준호(경영․08)씨는 각박한 현실에 치인 사람들이 흥미로운 세계관과 스토리를 접목한 스포츠 콘텐츠에 참여함으로써 활력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좀비런」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참가자들 모두가 그저 좀비를 피해 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해보였다.
다음「좀비런」은 한 해를 마무리 하는 ‘Year End Party’로 오는 12월 26일 서울에서 열린다. 일상에 지쳤다면 잠시 좀비들의 세계로 일탈해 과감히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달리면서 개운해진 몸이 일상으로 돌아올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 줄 것이다.

글 이주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사진 심규현 기자
kyuhyun1223@yonsei.ac.kr

<포스터 출처 좀비런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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