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하여

대학가에서 학생회의 정치 참여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광화문에서 열리는 무수한 집회에서도 ‘XX대학교 학생회’라는 집단의 이름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그리 멀리 가지 않고 당장 학과 채팅창의 공지에서 보이는 학생회의 이름을 걸고 서명 운동을 요청하는 등의 일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일상화된 일이라 의문을 제기하기도 쉽지는 않지만,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학생회의 정치 입장 표명은 사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일이다. 자유로운 의견 표명의 암흑기에 대학생들은 국가에서 몇 없는 지성인이라는 위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고, 이런 대학생들의 집단인 대학 학생회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집단이기도 했다.

언론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대학 학생회는 하나의 대안이 되어 지성인들의 목소리를 내었고 현재 우리의 자유로운 언론에 대한 권리를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한 시대상에서, 대학 학생회의 정치 입장 표명은 하나의 빛이 되었다. 영예롭고 책임감 있는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의 학생회가 정치 입장 표명을 굳이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전의 대학 학생회들과 여러 정치 집단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에는 정말 셀 수 없는 정치 집단과 그 수를 능가하는 언론이 존재한다. 다양한 대학 언론이 만들어져, 사실상 같은 대학에서도 다른 정치적 입장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글을 쓰고 의견을 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민하고 의견을 내는 사안도 다양해져서, ‘정치’라는 것이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마당에야 온갖 ‘정치 사안’에 대한 의견과 반박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의견 범람의 시대에, ‘대학 학생회’가 특정한 정치 사안들을 선별하여 그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정말 그 대학 학생들의 정치적 입장을 힘을 합쳐 전달하는 것인지는 그 의견의 대표성에서부터 이제는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학 학생회라는 집단은 그 이름을 공유하는 대학과 구성원들에게서 대표성을 위임받아 존재하는 집단인데, 도대체 이 다양한 의견을 가진 대학생들의 무리에 대표성을 가진 정치 입장이 존재하냐는 의문을 해소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학생회의 선별적인 정치 사안 선정과 그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은 또다른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 학생회가 담당하고 있는 학생 집단 속 반대 의견, 혹은 소수 의견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부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 입장 표명이란 단순히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시위의 현장 등에서 그 의견을 지지하는 다른 집단과 함께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대학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구성원의 소수 의견 및 반대 의견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학생회가 정치 입장 표명을 위해 학생들을 그 과정에 참여시킬 때를 예로 들어도, 대체로 상명하달 식으로 의견이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지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상황에서 반대 의견을 가진 학우의 경우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 힘들 뿐 아니라 표명을 할 경우에도 그 입장은 학생회의 입장 표명에는 소외되고 마는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주적인 사회를 위해 일어섰던 대학 학생회가 비민주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은 학생회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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