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하우젠 증후군과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에 대해

그렇다고 사고가 심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을 살짝 부딪치거나 뒤가 조금 긁히거나 하는 정도로, 언제나 속도는 느린 상태였고, 상대방은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들이었다.……할머니가 진짜로 부상을 당하거나 병원을 가야했던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사고를 만들어냈다. -줄리 그레고리(Julie Gregory) 『병든 아이』 中

책은 저자 그레고리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그녀의 기억은 참혹하다. 그레고리는 갓난아이 시절부터 할머니와 부모로부터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았다. 그의 부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동 위탁소를 열어 다른 아이들을 모으고 그들에게까지 학대를 이어갔다.
 


뮌하우젠 증후군?

그레고리의 할머니와 부모는 왜 이러한 학대를 자행했을까? 그들은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였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란 증후나 병이 없는 사람이 거짓으로 고통을 호소하거나 자해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가장성 장애 혹은 인위성 장애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1951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리처드 애셔(Richard Asher)가 독일소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 뮌하우젠 남작의 이름을 따와 이 증세를 처음으로 묘사했다. 소설에서 남작은 손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허풍과 과장을 더해 말해주면서 진지하게 자신의 경험이라고 주장하는데, 새로 발견된 정신질환의 증상이 이와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보호자가 피해자를 학대하거나 가해하고 이들을 간호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받고자 하는 증세다. 그레고리의 할머니는 자신이 뮌하우젠 증후군의 환자이면서 동시에 그레고리를 피해자로 하는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환자였던 것이다.

관심에 대한 목마름, 질환이 되다

뮌하우젠 증후군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관심에 대한 욕구로 추측되고 있다. 주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과잉보호를 받은 이들이 성장한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 없이 병원의 보호를 받고 관심을 끌고자 하는 심리로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는 타인의 관심 이외에 다른 사회적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거나, 법정에서 죄를 경감받기 위해, 신체적 편함을 얻기 위해 꾀병을 부리거나 자해하는 경우는 뮌하우젠 증후군에 해당하지 않는다.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 현재의 증상과 과거의 병력을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의료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 의료진에게 따지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특성들로 인해 의료진도 환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판별하기 쉽지 않고, 여러 차례 거짓말이 들통 났을 때야 비로소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판별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신과의사는 “뮌하우젠 증후군 의심환자의 경우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해 진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설사 진단을 하더라도 환자 본인이 치료 의사가 없는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치료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관심을 위한 학대,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 일레인 메이슨은 남편 스티븐 호킹을 수차례 학대했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폐해는 뮌하우젠 증후군의 폐해보다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경우 증후군 환자가 아닌 피해자가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며, 그 대상이 노인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와 말을 할 수 없는 동물인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자신의 자녀, 간호하는 아이, 자신의 부모 혹은 친척, 간병하는 노인 등을 학대하고 이들을 치료받게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몇 가지 특성이 있다. 피해자의 친모가 가해를 가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친모들은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질병이나 상해를 과거에 겪었던 사람이 대다수다. 따라서 해당 질병과 상해에 대해 의료지식을 갖추고 있고 피해자가 겪은 질병의 원인에 대해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피해자들이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막는데, 이는 보호자의 학대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들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지속적으로 칭찬하는데 이 역시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동물을 대상으로 일어나기도 하는데, 동물의 경우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만큼, 그 피해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경우, 타인과 동물에게 그 피해가 미치기 때문에 가정폭력과 동물 학대 등의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의 경우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거해 죄질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으며, 동물학대범의 경우 「동물보호법」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구형될 수 있다.
뮌하우젠 증후군과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본질적으로 정신질환이기에 환자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두 증후군 환자는 의료진의 의심을 받게 되면 빠르게 병원을 옮기기 때문에 병원 간의 정보 교류를 통해, 증후군 의심 환자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추정되는 환자의 의료 기록을 유심히 확인해야 한다. 의사는 이들이 불필요한 치료나 검사를 받지 않도록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관심을 과하게 원하는 데서 비롯한 뮌하우젠 증후군, 그리고 그런 관심을 자신의 보호대상을 이용해 얻고자 하는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회의 단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로에게 관심을 더욱 갖는 것, 그것이 이러한 사회적 질병을 치료할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학 기자
minor158@yonsei.ac.kr
<자료사진 : 데일리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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