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연전타임즈」부터 1957년 「연세춘추」까지

「연전타임즈」, 자유의 횃불을 밝히다

올해 80주년을 맞은 우리신문은 언제 시작됐을까? 바로 1935년 9월 1일 창간된 「연전타임즈」가 그 효시다. 「연전타임즈」는 당시 일간신문의 체제와 동일한 형태로 제작됐으며, 총 8면으로 구성됐다. 구독료는 1부에 5전, 1년에 40전을 받았고, 문과·상과·수물과 3과가 연합해 발행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유억겸 교장, 백낙준의 축사 ▲문예 수필·시 ▲학술 및 연구 기사 ▲각종 광고 ▲편집후기 등이 실렸다.
이러한 「연전타임즈」가 국내 대학신문의 소중한 역사로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창간사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 적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위당 정인보 선생이 쓴 것으로 추측되는 창간사를 들여다보면, 「연전타임즈」가 현실사회의 진리와 자유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창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현실생활의 진상을 반영할 거울이 되며 우리를 세련하며 도야하며 영도할 줄 믿으며, 여기에 있어서 우리 「연전타임즈」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뿐더러 여하한 신문일지라도 이러하여야만 될 줄 믿는다.”
- 연전타임즈 창간사 중 일부 발췌

「연전타임즈」는 일제강점기 속에서 연희전문학생들이 직접 순우리말 신문으로 제작한 것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사회적 제약 속에서 본질을 밝히는 보도신문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발행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연전타임즈」가 창간된 후 1930년대 후반은 일제강점기 중에서도 우리 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이 극심하던 때다. 일본은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황국신민화*, 내선일체 사상**을 주입시켰고,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강제적 폐간을 맞기도 했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 대학신문이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때문에 창간 이후 몇 호를 더 발행했던 「연전타임즈」도 발행이 중단됐다. 창간호는 현재 그 원본이 남아있으며, 사본은 우리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 보관돼있다. 하지만 창간호를 제외한 나머지 원본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두 유실돼 현재 남아있지 않다.
발행이 중단됐던 「연전타임즈」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연희타임즈」로 이름을 바꿔 다시 발간됐다. 이때 「연희타임즈」에는 「연전타임즈」와 마찬가지로 편집후기, 논문 등이 실렸고, 해방 직후의 혼돈을 드러내는 기사들도 보도됐다. 하지만 「연희타임즈」는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고 만다. 지난 1952~1953년 전쟁의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 약 1년간 몇 차례 속간됐으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속간사에서 ‘학문의 순수성의 고양은 이점에서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각 개성의 유기적인 협조를 바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는 부분을 통해 당시 편집인이 주장하는 학생들의 역할을 살펴 볼 수 있을 뿐이다. 「연희타임즈」 의 보존물은 대부분 남아있지 않고, 제12호와 제20호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 속에서 자유의 횃불을 밝히는 「연희타임즈」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정론직필의 뜻이 담긴 「연세춘추」

지난 1953년 6월 15일,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연희춘추」가 발행됐다. 이 시기에는 제대로 된 신문 인쇄 환경이 마련돼 있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전쟁 속 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고취하고자 반월간***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고려가 몽고에 침략을 당했을 때, 고려인들은 고려대장경을 만들었는데, 이 모습이 당시 남한의 피난 모습과 닮아있었기에 「연희춘추」의 제호를 고려대장경에서 집자****해 그 뜻을 잇고자 했다. 「연희춘추」 창간호의 발행부수는 2천 부였으며, 3호는 윤동주 시인의 특집호로 발행되기도 했다.
「연희춘추」는 참신한 신문란들을 많이 신설했는데. 교수들의 유머를 올리는 <닭갈비>, 연세인을 소개하는 <연희명물>, 백양로에서의 생각을 적는 <백양로>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논단>, <투서함>을 통해서 학생들은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을 투고했다.
연희와 세브란스의 합병으로 교명이 연세대학교로 바뀌면서 지난 1957년 4월에는 제호를 「연희춘추」에서 「연세춘추」로 바꿔 발행하게 됐다. 이때부터 기존에 신문에 실리던 논문을, 각 단과대에서 여러 논문을 묶어 발행하는 「논총」에 싣게 됨에 따라 「연세춘추」에는 교수와 기자의 비판적이고 고발적인 글이 더 많이 실리게 된다. 1958년 발행된 118호부터는 기존의 한자 제호 ‘延世春秋’를 한글 제호 ‘연세춘추’로 바꿔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사용된 한글 제호 ‘연세춘추’는 지금까지 약 60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강상현 교수(사과대·디지털방송,정보사회론)는 “다른 학보사처럼 연세신문이 아니라 연세춘추라는 제호를 써 춘추필법 즉, 억압에 굴하지 않고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언론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대 가는 길이 역사다’라는 기조를 가진 우리대학교 공식 학보사 「연세춘추」의 전통은 오랜 역사와 함께 대학 신문의 시발점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 교수는 “연세춘추는 학생 스스로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대학신문의 역할을 다했으며, 세로쓰기가 지배적이던 시기에 한글 가로쓰기를 도입한 신문으로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각 시기마다 학내의 다양한 사안을 다루면서 정론직필의 신념을 갖고 대학사회를 밝히고자 했던 연세춘추의 정신은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황국신민화 : 일본이 우리 국민을 일본 천황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내세운 정책
**내선일체 사상 : 내(內·일본)과 선(鮮·조선)이 하나라는 사상
***반월간 : 잡지 따위의 출판물을 보름에 한 번씩 간행
****집자 : 글씨를 쓰거나 시문을 짓기 위해 옛 문헌 따위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


이유림 기자
yurrr11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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