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소설 『소금』을 따라가 강경에서 맛본 인생의 짠맛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

당신은 평소에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봤는가? 언제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박범신의 소설 『소금』에 담겨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아버지의 본모습, 우리는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생각을 따라 충남 논산 강경읍으로 향했다.

이야기의 시작, 서술자와 여자주인공 시우의 만남

소설 속 서술자 ‘나’의 직업은 소설가이다. 이 소설은 서술자가 가출한 아버지 선명우를 찾아 나선 여주인공 ‘시우’와 강경에서 만나며 전개된다. 서술자 역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시우의 상황이 마냥 남 일 같지 않아 그녀의 가족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시우는 아버지를 찾아다니다 강경까지 왔다고 한다. 아버지를 홀로 찾아 나선 시우에게는 사실 두 명의 언니가 있다. 언니들은 아버지를 오로지 경제적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가출한 선명우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이에 비해 시우는 선명우와 인간적인 유대감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딸이었기에 아버지를 찾아 나설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이런 시우조차 평소 선명우에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시우는 학창시절 눈 오는 날 집 밖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선명우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그의 그늘진 뒷모습에 선명우를 반갑게 맞이하지 못했다. 하필 그날 선명우는 가출을 택한다. 그가 가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우가 선명우를 반가운 목소리로 맞아주지 않아서였을까.

그녀(시우)는 창유리에 잠시 이마를 댔다. …(중략)… “아빠야!” 그녀는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그때 시선에 잡혀든 게 바로 아버지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창에서 이마를 떼어내고 미간을 모으자 비탈길을 올라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좀 더 뚜렷이 보였다. …(중략)… 구태여 말하자면 그때의 아버지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느릿느릿 올라오던 아버지가 걸음을 멈춘 것은 비탈길을 반쯤 올라온 다음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그녀가 서 있는 빌라의 창 쪽을 올려다보는 듯했다. 그녀는 얼른 창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들키면 안 될 것 같아 그랬으나, 이미 아버지와 찰나적으로 시선이 마주쳐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 하고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좋았을 거라고 뒤늦게 생각했다. …(중략)…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이 지나고 출근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 강경 시내에 위치한 강경 젓갈 단지

기자는 논산역에 도착해, 선명우의 주요 근거지였던 강경 젓갈 단지로 향했다. 이곳에서 서술자 ‘나’는 친구이자 강경 젓갈 단지에서 젓갈을 파는 텁석부리를 만난다. 텁석부리의 집을 거처로 삼아 서술자 ‘나’는 강경에서 선명우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이곳 젓갈 단지에서 선명우의 흔적 일부를 찾게 된다. 선명우가 사랑했던 세희 누나와의 추억이다. 선명우와 세희 누나는 젓갈 발효실에서 함께 놀며 사랑을 키워갔다. 선명우와 세희 누나는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서로 관계를 지속하지만, 현재 아내의 임신으로 헤어지게 된 옛 연인이다. 세희 누나는 선명우를 그리워하다 강경에서 죽는 운명을 맞는다.

기자는 젓갈 단지 곳곳을 다녀봤다. 젓갈 단지의 건물들은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젓갈 단지에서 느껴지는 정감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는 이 건물, 저 건물에서 젓갈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짭조름하면서도 정겨운 냄새였다. 선명우는 중학교 시절, 이 건물 중 어딘가의 젓갈 발효실에서 세희 누나와의 사랑을 키웠을 것이다. 기자의 눈앞에 추억을 쌓는 선명우와 세희 누나가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매일 밤 만나면서 풋풋한 사랑을 키웠을 것이다. 어쩌면 선명우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의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 한 젓갈 가게 안에 있던 젓갈 발효 창고

그 사건이 생긴 건 이른 여름이었다. 날씨가 더워서 잠깐 젓갈 발효실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강경상고 운동장 앞의 늙은 팽나무 밑을 지나 채운역까지 철길을 따라 걷다 돌아온 끝이라 시원한 발효실에 들어가자 그만 잠깐 잠이 들었었던가 보았다. “얘, 일어나봐!” 누나가 그를 흔들어 깨웠을 땐 실내가 캄캄했다. “우리, 큰일 났어!” 누나가 말했다. …(중략)… 누가 부주의해 문을 열어두고 갔다고 생각한 아주머니는 당연히 다가와 발효실 문을 닫았고 발효실 전등 스위치도 내렸다. 누나는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당황해서 끝까지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발효실 철문의 잠금장치가 밖에서만 열고 닫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등 스위치와 온도조절기도 또한 밖에 있었다.

현대 사회의 가족 관계를 비유하는 말, ‘빨대’

소설에는 ‘빨대론’이라는 소제목이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빨대질’이란 부모를 인간이 아닌 자신의 통장이나 지갑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부모에게 끊임없이 돈을 받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빨대질을 하는 상황 속에서 부모는 화수분의 의미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많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빨대를 꽂고 반대로 부모가 돼 빨대에 꽂히면서 가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서술자와 시우 모두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선명우가 가출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선명우는 부인과 세 명의 딸의 과시욕·소비욕을 감당하기 위해 돈을 벌었지만, 그들의 욕구를 채우는 것은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부인과 세 명의 딸은 엄청난 소비욕을 가지고 있었다. 딸들은 취미 생활을 위해 2천만 원짜리 클라리넷을 원하기도 했고, 부인은 과시욕 때문에 좋은 집과 차를 계속해서 원했다. 선명우 본인 역시 가족들의 희생 덕에 중학교부터 대학교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결혼 이후, 가족들에게 무조건적인 수탈을 당한다는 사실에 선명우는 회의감을 느낀다. 선명우는 현대 사회의 모든 가족에게 발생하는 ‘빨대질’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가출을 택하게 된다.

선명우는 유랑의 세대라고 할 수 있었다. 중공군이 38선을 넘어오고, 부산까지 밀려났던 유엔군이 다시 서울을 수복하던 전쟁의 불모에서 태어난 그는 4·19와 5·16을 차례로 겪어야 했던 절대 빈곤의 격변기에 성장기를 보냈으며, 대학은 휴교를 거듭하고 언론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던 유신의 그늘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농(離農) 현상도 두드러졌던 연대였다. …(중략)… 가출 전의 그는 빨대 하나 들고 세상의 구조에 충직하게 복무했다. 만족은 오지 않았다. 불가사리 같은 자본 중심의 체제에 기생해 그 역시 빨대를 꽂고 죽어라 빨았으나, 넷이나 되는 처자식이 그의 몸뚱이에 빨대를 또한 꽂고 있었으므로 그가 빨아올리는 꿀은 늘 턱없이 모자랐다. 모자라면 더욱 몸이 달았다. 그 체제는 그에게 약간의 꿀을 제공하는 대신, 그를 계속 노예 상태로 두고 부려먹기 위해 그의 후방에 있는 처자식을 끊임없이 부추겨 그가 빨아 오는 꿀을 더 재빨리 소모시키도록 획책했다.

▲ 소설 『소금』에 나오는 소금집을 보존 해 놓은 모습

기자는 젓갈 단지를 떠나 선명우가 생각을 정리했을 옥녀봉의 ‘소금집’으로 향했다. ‘소금집’은 ‘선기철소금’을 팔고 있었던 집에 붙여진 이름이다. 소설 속 소금집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옛 초가집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의 모습

옥녀봉 주변의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다. 햇빛은 옥녀봉을 감싸서 도는 금강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기자의 눈에 비친 금강은 참 많은 이들의 회한을 머금은 채 흐르는 것 같았다. 금강에서는 선명우의 금빛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게 했던 빨대의 존재가 없는 곳이 이 옥녀봉과 금강이었을 것이고, 그는 금강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선명우의 금빛 눈물은 어디로 빨려가지 않은 채, 고요히 그리고 선명히 흐르고 있었다. 그 아픔들은 빠른 속도로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기자는 금강을 조용히 바라봤다. 회한의 목소리들이 한데 모여 기자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기자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는 방향을 바꿔 탄청호로 향했다. 탄청호는 아버지를 찾아 강경에 온 시우와 서술자가 만나는 곳이자, 사랑을 나눈 곳이다. 시우와 서술자 모두 아버지를 수단으로밖에 바라보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다. 탄청호 호수 주변에 있는 장소 중 평매(坪梅)마을은 시우와 서술자가 처음 만나 함께 걸어가던 길이었으며, 둘이 첫 키스를 나누던 장소도 탄청호 주변 효암서원이었다. 시우와 서술자 모두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고, 둘은 탄청호에서 둘의 아픔과 사랑을 나눴다.

탄청호는 매우 넓고 큰 호수다. 기자는 시우와 서술자의 아픔을 느끼며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호수의 경치는 매우 수려했다. 호수에는 시우의 아버지가 가출하고 가족이 해체된 아픔을 담은 물안개가 낮게 껴있었고, 고요한 슬픔을 담고 있었다. 기자 또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어떤 존재라 생각했는가. 아버지는 나에게 아버지였는가, 혹은 제한 없는 통장이었는가.’


소금에 담긴 인생의 철학

“끝이 없었네!” 선명우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염전의 소금 창고에서 함께 밤을 지새운 그날 새벽의 일이었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는 걸 창 너머로 내다보면서 선명우는 말했다. “아무리 연봉이 올라도 그네들의 소비 온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 그네들이란 그의 아내와 세 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빌라로 이사 들어가고 나서 얼마 후 아내가 말하는 것이었어. 양평에 별장 자리가 하나 나왔는데 경관이 빼어나더라고. 자기 친구는 LA에도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다고. 아내의 다음 목표는 별장이었네. 그 순간 알았지. 그네들의 소비 욕망을 따라가는 짓이 죽기 전엔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 강경역 근처 소금 창고로 추정되는 판자촌의 모습

마지막으로 기자는 ‘선기철소금’을 쌓아놓은 강경역 근처의 소금 창고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옛날 모습의 판자 소금 창고는 사실상 염전 근처 외에는 없는 상태였지만, 강경역 근처에는 판자촌의 모습이 아직 보존돼있었다.

선명우의 아버지는 지독한 가난이 선명우에게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에 선명우가 열심히 공부해 성공하는 것만이 가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족을 지켜낼 것이라 생각했다. 선명우가 가족이 그리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분노에 차 선명우를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선명우의 아버지는 ‘아들을 학교에 보낸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선명우의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모습, 선명우가 학창 시절 이 소금 창고로 왔을 때 이곳을 떠나 성공해야 한다며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았던 모습, 선명우가 논산으로 내려온 후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어 이곳으로 옮기던 모습들이 하나의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금은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을 모두 담고 있다. 소금 하나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애달픈 기억들도 모두 소금에 집약됐다. 선명우가 강경으로 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기자는 선명우의 인생이 보관된 소금 창고에서 짠내음을 맡으며 잠시 동안 사념에 잠겼다. 그렇게 선명우의 흔적을 따라간 여정은 마무리됐다.

기자는 강경역으로 돌아왔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기자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명우의 흔적을 따라다니다 돌아오는 길에 받은 아버지의 전화. 이전과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기자의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면서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기자의 아버지도 선명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는 진정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이 드러워있을지 모른다. 잠시라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해보자. 그 속의 서술자 ‘나’의 모습, 그리고 선명우의 모습이 보이게 될 것이다.

 

 

글 박상용 기자
doubledragon@yonsei.ac.kr

사진 강수련 기자
train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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