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복학생들의 군대 이야기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꼽으면 3위는 ‘축구 얘기’ 2위는 ‘군대 얘기’, 그리고 대망의 1위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고 한다. 이는 기자만이 들어본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복학생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얘기가 군대 얘기다. 대체 뭐가 그렇게 할 얘기가 많은 걸까? 육군 출신 P씨(25), 공군 출신 서울대 조재민(원자핵공학·10)씨, 해병대 출신 우리대학교 이재원(신소재·11)씨, 의무경찰(아래 의경) 출신 가천대학교 박세원(전자공학·11)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투사 출신 우리대학교 K씨(23)와 함께 군대 얘기를 나눠봤다.

예비역, 그들만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남자 대학생들은 1학년이나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게 된다. 이때 남자들은 일생일대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육군을 갈 것이냐 공군을 갈 것이냐! 최근에는 의경 경쟁률이 31대 1까지 치솟으며 높아진 의경의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경에 지원하는 것일까? 성북경찰서에서 21개월간 복무한 박씨는 “의경에 입대할 당시까지만 해도 위계질서가 강하고 시위 현장에 나가는 게 힘들다는 소리가 많았다”며 “하지만 힘들게 군 생활을 하더라도 사회와 가까운 곳에서 군 복무를 하고 싶어 의경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편 충남 계룡의 공군기상단에서 24개월간 복무한 조씨는 “자대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군에 지원했다”며 “천안에 집이 있는데 집과 가까운 계룡에 자대를 가서 부모님이 자주 면회를 오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귀신 잡는 해병대는 확실히 달랐다. 해병대 1160기로 포항 1사단에서 복무한 이씨는 “힘들다고 소문난 만큼 재밌을 것 같았다”며 특이한 지원 동기를 밝혔다.

짬에 관하여

본인들의 군 생활은 어땠을까? 가장 힘들다는 이병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자. 카투사 출신의 K씨는 “이병 때 밥 먹으면서 두 손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놓지 못하고, 선임이 담배 필 때 열중쉬어 자세로 있는 등 불합리한 일이 많았다”며 “심지어 폭설이 내린 12월의 어느 날에는 혼자 사무실 앞의 눈을 모두 치우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P씨가 알려준 일화는 이 정도는 약과라고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P씨는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면서 코를 곤다는 이유로 전투화가 날라온 적이 있다”며 “그 이후로는 선임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P씨는 “120명이나 되는 선임들의 관등성명을 외워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며 “압존법*을 틀리게 쓰는 날에는 일주일이 피곤했다”고 밝혔다.
이후 짬**이 찬 뒤의 모습을 묘사해달라고 하자 신기하게도 모두 비슷한 답변이 나왔다. 바로 ‘선임들에게는 싹싹하고, 후임들에게는 관대했지만 할 말은 다 하는 선임’이었다는 것이다. P씨와 K씨는 “어느 정도 짬이 차고 나서는 선임 앞을 지나갈 때마다 허락을 맡아야 하는 것 같은 자질구레한 악폐습을 없애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K씨는 “막내 때는 혼자 하던 청소도 나중에는 다 같이 공평하게 배분하려고 노력하는 등 나름 열심히 했는데 전역식 때 왜 맞았는지 모르겠다”며 웃어보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싫어하는 선·후임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일하기 싫어하고 다 같이 힘든데 힘든 티를 내는 후임을 좋아하는 선임들은 없었다. 이씨는 “엄살 부리면서 훈련 빠지고, 짬 좀 찼다고 하극상 일으키려는 후임들도 보기 싫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싫은 선임 유형으로는 일 못하기로 소문났는데 자꾸 훈수 두려 하는 선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선임 등이 꼽혔다. 다들 비슷한 말을 하는데 기자의 고개도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러나 짬이 찼다고 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닐 터. 짬이 차면 모든 걸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혹은 이제는 나갈 곳이라는 생각에 군기가 해이해져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K씨는 “짬이 차고 나니 과감해져 점프***도 수시로 뛰다 걸릴 뻔하고 휴가 나와서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싸울 뻔한 적도 많다”며 “한 번은 싸우다가 알고 보니 서로 카투사라 좋게 화해하고 넘어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군대가 그들에게 남긴 것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안 좋은 기억만 남았던 것은 아니다. P씨는 “소대원 2명과 함께 손기정 마라톤 대회 하프 코스를 나가 낙오자 없이 완주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한, 박씨는 “재래시장 부근에서 방범순찰을 돈 일이 있었는데, 장사하시는 할머니께서 팔고 남은 꽈배기를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또한, 미군들과 함께 아일랜드산 위스키를 마시며 시가를 펴봤다는 카투사 출신 K씨의 얘기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군대에서의 가장 큰 추억은 운동을 한 기억일 것이다. 굳이 즐거운 기억이 아니더라도 기자와 같이 군대에서 다이어트를 했다는 등 어떤 특정 목적을 이룬 사람이라면 운동하며 얻은 그 성취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군대에서 운동을 즐긴 이들은 크게 축구나 족구 등 단체 운동을 즐긴 사람과 혼자 헬스를 하며 몸을 만들었다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조씨는 “군대에 있으니 사람들을 모으기 좋아 축구를 자주 했다”며 “축구를 잘하지 못해 사회에서는 수비를 주로 했는데 병장을 달고 나서 공격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 K씨와 이씨는 “축구가 싫어 체력단련장에 가서 헬스와 같은 개인 운동을 하곤 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탄탄한 몸을 자랑하는 이씨는 “처음에는 토 나올 것 같던 8km 구보도 매일 하다 보니 어느새 몸이 버틸 만했다”고 말했다. 한편 P씨는 “신병 시절 부대원들과 축구를 하다가 일이 벌어졌다”며 “공을 찼는데 공이 그만 분대장 얼굴에 정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P씨는 그 사건 이후 군 생활이 고달파졌다며 지금은 추억이 돼버린, 당시에는 악몽 같았던 사건을 회상했다.

학교로 돌아온 예비역들

지금은 모두 ‘복학생’이 된 이들.  다섯 명은 하나같이 복학 이후가 씁쓸했다고 표현했다. 어느덧 말년 병장에서 취준생이 된 조씨는 “전역한 직후에는 하루하루가 참 소중했는데 지금은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고시생이 된 P씨는 “복학하고 나니 혼자만 훌쩍 나이를 먹은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교환학생을 떠난다는 박씨만이 “전역 이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여자친구도 사귀고 학점도 많이 오르는 등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소위 ‘복학 버프’를 받았다고 복학 이후 긍정적인 면을 설명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가서 즐겁고 알차게 보내고 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복학생들의 바닥없는 푸념처럼 들렸을지 모르지만 군대에서 벗어난 후 바라본 자신들의 군 생활은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도 꽤 괜찮았던, 그런 추억이니 말이다.

*압존법 : 화자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 낮은 사람을 얘기하면서 높이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짬 : 짬의 경우, 군대에서 먹는 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입대 후의 경력을 의미한다.
***점프 : 외출을 나갈 수 있는 부대 근처 위수지역을 넘어 몰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위반 시 영창 등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글 김민호 기자
kimin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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