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교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 사람들에게서… 잊혀 졌을 때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간지러울 수 있는 대사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가슴이 뜨거워지는 대사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원피스』는 지난 8월 30일까지 용산, 부산, 대학로를 돌며 1년 2개월 동안 ‘원피스 메모리얼로그 정상전쟁 완결편’이라는 이름으로 단독 전시 이벤트를 진행했다. 또한, 2014년 9월부터 2015년 4월 5일까지 용산에서 진행된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조형전’은 지난 3월 1일까지 전시가 예정돼 있었지만 방문자가 많아 4월 5일까지 연장 전시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은 마니아들의 전유물, 혹은 어린이들이나 보는 하위문화*라는 인식을 벗고 이제 모두를 위한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의 절대 강자, 미국

월트 디즈니 컴퍼니(아래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아래 픽사)는 『겨울왕국』,『인사이드 아웃』 등의 작품들로 글로벌 영화시장에서 3D 애니메이션의 흥행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겨울왕국』은 세계 영화사상 매출액 7위를 기록했고 개봉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영화관에서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왔다는 정은조(경영·11)씨는 “상영관에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며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영화에 몰입했다”고 말했다. 미국 3D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또 다른 축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아래 드림웍스) 역시『슈렉』, 『쿵푸팬더』등의 작품들로 애니메이션이 전 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임을 보여준 바 있다.
미국의 3D 애니메이션은 막강한 자본을 기반으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례로, 디즈니가 2014년 선보인 3D 애니메이션 영화 『빅 히어로』는 총 제작비용이 약 1억 6천500만 달러가 들었고 최대 103명의 애니메이터가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게다가 8만 3천400채의 건물, 6만 그루의 나무, 21만 5천 개의 가로등 등을 모두 3D로 구현했다는 점은 그 자본과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미국은 내수시장의 규모도 클뿐더러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목표로 제작을 진행한다”며 “그동안의 성공이 전례가 되어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만화의 인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이어가는 일본

일본 애니메이션은 아니메(アニメ), 또는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라고 불리며 일본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전 세계 만화 시장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이러한 강점을 애니메이션 산업에 연장해 이어가고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웃집 토토로』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처럼 극장판 제작에 주력하는 제작사도 있지만 『나루토』, 『은혼』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동명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액션, 코믹, 멜로 등 일본 만화의 장르가 다양한 만큼 애니메이션 역시 취향에 맞게 골라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만화뿐 아니라 라이트노벨**, 게임 등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다수 제작돼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사무소 이경은 과장은 “최근 일본 출판업계의 불황과 맞물려 출판사에서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화에 더욱 힘쓰고 있다”며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큰 시장규모를 가진 만큼 다양한 분야로 그 파급효과가 이어진다. 가수 윤하는 일본 활동 당시 2집 싱글「혜성(ほうき星)」이 일본 애니메이션 『블리치』3기 맺음곡으로 선정되면서 오리콘 데일리 차트 12위를 기록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 이처럼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OST가 음반차트 상위권에 올라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종종 ‘실사판 영화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올해 2월과 5월에 2개의 파트로 나눠서 개봉된 소메타니 쇼타 주연의 영화 『기생수』는 원작 만화와 일본 NTV 방송국에서 방영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배우들을 캐스팅해 영화를 촬영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의 규모는 2013년 기준 5억 9천900만 달러로 세계 5위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일본에 비하면 아직 규모나 실적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점점 그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 130개국에 수출되면서 이제는 세계 어린이들의 ‘뽀통령’이 된 『뽀롱뽀롱 뽀로로』를 필두로 다양한 국내산 캐릭터들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또한 지난 2014년 1월 개봉한 『넛잡: 땅콩 도둑들』은 레드로버라는 국내 기업에 의해 제작된 영화로 박스오피스 실적 6천500만 달러를 달성하면서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의 발전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처럼 애니메이션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산업으로 평가받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넘어야 할 한계가 많다. 목원대 애니메이션과 김병수 교수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해 “현재는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기보다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치중돼있다”며 “완구 개발에 용이한 소재 위주로 작품을 채택한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이로 인해 투자자를 찾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역시 더딘 발전의 이유로 지적된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대중들이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꾸준히 노출한다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4 해외 콘텐츠시장 동향조사’에서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 규모가 지난 2013년 기준 약 133억 6천400만 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가져오는 부가가치를 고려했을 때 애니메이션 산업은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위문화: 어떤 사회의 지배적 문화와는 별도로 청소년이나 히피와 같은 특정 사회 집단에서 생겨나서 발전하는 독특한 문화.
**라이트노벨: 일본에서 등장한 소설의 장르로 일반적으로 만화풍의 일러스트가 들어간 작은 판형의 소설을 가리킨다.
***실사판 영화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의 원작을 실제 인물들이 배역을 맡아 영화를 촬영하는 것

 

글  전준호 기자
jeonjh121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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