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고 싶은 책을 스스로 만드는 독립출판

기존 출판의 틀에서 탈피해 제작부터 인쇄, 유통까지 모두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하는 ‘독립출판’이 인기를 얻고 있다. 독립출판의 매력은 바로 내용과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이뿐 아니라 독립출판물을 찾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고 있어 화제다. 7~8년 전부터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독립출판물 서점은 현재 서울에만 40여개에 이른다. 독립출판이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와 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독립출판 작가와 독립 출판물 서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독립출판인가?

▲ 책방에 진열되어있는 독립출판물

문학으로 뜻을 모은 대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소녀문학』을 만들었다. 대학생들이 모여 창간한 『소녀문학』은 문예지와 사진집의 결합 형태를 띠고 있는 독립 잡지다. 『소녀문학』의 편집장 안여진(21)씨는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지면에 공식적으로 싣기 위해 창간했다”며 “독립출판 문예지나 독립출판 사진집은 이미 꽤 나왔지만, 문예와 사진의 결합 형태를 한 잡지는 최초”라고 소개했다. 안씨를 비롯한 편집인들은 소녀라는 대상을 통해 소수와 약자를 아우르는 상징을 배치시켰다.
대학생들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힘으로 책을 만들겠다고 패기 있게 모였으나, 이들에게 가장 먼저 넘어야할 산은 다름 아닌 금전적인 문제였다. 다행히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활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발행된 책의 가격은 화보 촬영과 인쇄비용을 합산한 뒤 최소한의 가격으로 책정했다. 안씨는 “돈을 벌기 위해 출판한 잡지가 아니기 때문에 수입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전했다.
이들이 지면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사실은 소수이고 약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안씨에 따르면 소수는 다수에게 억압받고, 약자는 강자의 폭력에 노출된다. 때문에 『소녀문학』의 편집인들은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소수자와 약자로서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안씨는 “‘독립출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과감히 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고 전했다. 편집인 이하림(20)씨 역시 “독립 잡지 한 권에 더욱 다양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기성 문인들도 편집권을 독립해 문예지를 창간하고 있다. 소설가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씨가 편집위원인 『악스트』가 그 예다. 이들이 『악스트』를 창간한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소설독자에게 소설의 더 많은 다양한 재미와 매력을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자유로운 소설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길 역시 편집권의 독립이었다.『악스트』의 작품들은 출판사를 통해 발행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출판사의 개입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을 싣고 있다.
『악스트』의 판매가는 2천900원이다. 기존 문예지의 가격이 1만 5천 원 정도라는 것을 봤을 때 파격적인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악스트』의 출판사 은행나무의 백다흠 편집장은 “잡지를 사는 데에 있어 저항감이 없어야 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며 “그런 기준에 입각해 가격적인 부분에서의 저항감을 없애고 싶어 값싸고 퀼리티 좋은 잡지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간한 지 한 달도 안 돼 1만 부를 찍은 점에 대해 백씨는 “『악스트』는 기존의 문예지와 조금 다른 시각, 다른 판형과 디자인 때문에 독자들의 호기심을 산 것 같다”며 “기존 문예지를 봐오던 독자들에게 새롭다는 느낌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독립출판계의 사랑방

▲따뜻한 분위기의 책방에는 책들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책을 쓴 저자가 있다면 책을 읽는 독자가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맺어주는 매개체인 책방이 있다. 아무리 다양한 형태로 좋은 질의 책을 만든다 해도, 그 책을 진열하고 판매할 공간이 없다면 그 책은 저자 개인의 소유물이 될 뿐이다. 독립출판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오후 다섯시’와 ‘일단 멈춤’을 찾아가봤다. 독립출판물의 색깔은 바로 다듬어지지 않은 듯 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절제되고 화려한 미사여구들로 책을 소개하는 문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기성출판에서는 볼 수 없는, 작가들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표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회기에 위치한 ‘오후 다섯 시’의 점장 오영(29)씨는 평일에는 일반 회사원으로, 책방이 열리는 주말에는 서점을 꾸리는 주인장으로서의 삶을 보내고 있다. 오씨는 사진집을 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 독립출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친구가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게 됐다. 스튜디오와 서점의 혼합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했고, 서점을 찾는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개관한 지 6개월 남짓한 책방 ‘오후 다섯시’를 운영하고 있는 오씨는 현재 독립출판, 매거진,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을 선택해 책방의 성격을 찾아가고 있다. 오씨는 책방에 들르게 될 고객들을 향해 “개성 넘치는 책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가셨으면 좋겠다”며 애정을 표했다.
이대역 근처에 위치한 여행서점 ‘일단 멈춤’은 여행을 주제로 한 일반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함께 소개하고 판매하는 소규모 서점이다. ‘일단 멈춤’에서는 기본적으로 ‘여행을 주제로 한 내용’으로 이뤄진 책들을 골라 진열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여행을 주제로 하지 않더라도 여행에 영감을 줄 수 있는 문학, 예술, 인문 등의 책도 함께 선정한다. ‘일단 멈춤’의 송은정 점장은 “온라인서점이나 대형서점의 메인에 노출되지 못한, 서가에 꽂힌 채 독자들과 만나지 못한 책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전했다.

완전한 독립을 위하여

▲ 독립출판물들이 모여있는 책방의 책장

독립출판이 작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오씨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거나,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을 전했다.
출판사에게서 독립해 책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워크숍을 통해 독립출판물을 제작하는 방법과 과정들을 알려주는 수업들 역시 늘어났다. 오씨는 “수강자들이 책 만드는 일이 의지와 지식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미디어에도 많이 노출되면서 홍보가 많이 됐다”고 독립출판 열풍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독립 출판에 매력을 느낀 김나연(20)씨는 “문예, 사진, 삽화 등이 합쳐진 시도가 참신하게 느껴졌다”며 “개인이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책임감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백 편집장은 출판사에서 탈피하고 있는 독립출판에 대해 “출판자들 스스로 본인의 취향, 관심,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면에서 독립출판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백 편집장은 “단행본에서의 획일적인 주제를 독립출판물에서 다양하게 확산시킨다는 점으로 인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그가 독립출판물에게 던지는 질문은 ‘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이 있는가?’다. 백 편집장은 “독립출판도 엄연히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출간하는 것이므로 독자가 그 책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지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며 “이를 확산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독립출판의 결과물인 것 마냥 생각하려는 출판인들의 시각에 대해서는 신중한 편이다”라며 독립출판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동시에 누구에게나 그 비밀을 털어놓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한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타인들과 삶을 공유하며, 나의 삶을 조명해보는 일에 무뎌진 것은 아닐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부끼는 기억들, 잘게 부수어지는 감정들을 한 편의 책으로 꿰어 놓아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그로인해 당신의 기관지 속으로 파고드는 공기들이 따뜻해 질 수 있길 기대한다.

*크라우드 펀딩 : 대중이 함께 만드는 기금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크라우드 펀딩을 위해 프로젝트를 개설하고 이를 많은 대중에게 알려 자금을 모금한다.

 

글 송민지 기자
treeflame@yonsei.ac.kr
사진 심규현기자
kyuhyun122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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