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활자인쇄술,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늘날 우리의 한글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서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그 미와 실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글을 새겨 넣은 패션은 이상봉 디자이너로 인해 이미 유명해졌고 한글 자모의 조형성에 주목해 만들어진 한글 나무블록도 등장했다. 또한 한글 주택과 같이 건축에서 역시 한글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듯 단순히 ‘읽고 쓰는’ 차원에서 벗어나 ‘보고 느끼는’ 한글은 모두 한글 활자인쇄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한글 활자를 매일 쓰는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물론, 과제를 위한 발표 자료를 만들 때도 시종일관 마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뿐 한글 활자가 언제 등장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하지 않는다. 이런 우리를 위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특별한 전시를 준비했다. 바로 「꼴꼴꼴 한글 디자인」특집전(아래 전시)이다. 전시는 ▲활자의 전환 ▲한글 글꼴의 발전 ▲문화산업 속 한글 글꼴로,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한글날을 앞둔 지난 9월 28일, 그 특별한 전시에 기자가 다녀왔다.

우리 활자의 역사를 따라서

▲1만1천172자의 완성형 한글코드

근대 한글 활자인쇄술은 서양 납 활자 주조술의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조선 말기 서양 선교사들이 성경과 교리서 등을 번역하기 위해 시작된 근대 한글 활자는 1880년 ‘한불자뎐’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이 확인됐고, 최초로 한글신문을 발행한 ‘독립신문’ 등의 개화기 언론을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시는 자모조각기*의 도입으로 한글 활자 인쇄가 본격적으로 활발히 진행되던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짚는다.
1950년대는 ‘원도** 활자’ 시대로 이때 우리나라는 목판에 글자를 직접 조각하던 시대에서 자모 조각기를 통해 글자를 외곽 형태에 따라 ‘설계’하는 시대를 맞이한다. 한 글자 한 글자를 크기별로 제작해야 하던 이전과 달리 한 가지 크기의 원도로 글자를 설계하면 자모조각기의 렌즈를 통해 크기가 자유롭게 조절돼 다양한 크기의 활자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방식은 현재의 디지털 활자 제작방법의 기본이기도 하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작업환경이 컴퓨터 등 전자기기로 옮겨감에 따라 현재 우리가 ‘폰트’라고 부르는 디지털 활자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방식이 도입돼 제작이 이전보다 수월해지면서 한글 글꼴 시장도 커졌다. 디지털 폰트의 활용범위 역시 넓어지면서 점점 많은 글자가 필요하게 되자 한글 폰트 규격도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영문폰트의 코드를 차용했으나, 현재는 한글 폰트 규격에 따라 조합형 코드와 1만1천172자 완성형 코드가 복수 표준화됐다. 전시에서는 유리판에 인쇄된 1만1천172자의 장대한 한글 폰트 완성형 코드를 통해 한글 활자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1990년대의 전자 출판 시장과 한글 글꼴 디자인 회사들의 활자인쇄 동향을 첫 한글 활자인쇄술 잡지인 ‘정글’과 MBC와 그룹와이(구 윤디자인연구소)가 진행한 ‘예쁜 손글씨 공모전’ 입상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글글꼴, 그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최근 개발된 한글 글꼴들

현재에 이르러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공공기관과 기업이 공익을 실현하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홍보하는 데 있어 글꼴이 주목받고 있다. 공공을 위해 제작된 폰트로는 네이버의 ‘나눔글꼴’ 등이 있고, 기업의 전용 서체에는 대표적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부리’, 배달의 민족의 ‘한나는 열한살’ 등이 있다. 배달의 민족은 전용 서체로 재치 있는 문구를 적은 머그잔, 수건 등과 같이 다양한 상품들을 선보여 디자인 시장에도 진출했다.
전시에서는 현재 문화산업 속 한글글꼴에 대한 전문가의 진솔한 진단도 영상을 통해 들어볼 수 있다.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한재준 교수는 영상에서 ‘현재 문화산업 속 한글은 아직은 방황하는 수준’이라며 ‘아직은 한글의 ‘천지인’ 속 창제철학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조형미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천지인은 하늘과 땅, 사람의 순환구조를 표현하는 동시에 초성, 중성, 종성을 나타낸다. 초성이 하늘이고 종성이 땅일 때, 사람인 중성이 있어야만 비로소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창제철학을 가진 언어가 세계 어디에도 없기에 한글이 희소가치가 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입장이다. 이어서 한 교수는 ‘한글 표준화를 통해 이러한 한글의 기본개념부터 정리한 뒤 본질적인 부분을 살리면서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한글 디자인의 미래에 대해서 한 교수는 ‘한글의 무한확장성’에 대해 언급하며 ‘모든 가능성을 열고 미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한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한 교수의 자세한 이야기는 전시에서 들을 수 있다.

이처럼「꼴꼴꼴 한글 디자인」특집전은 한글 활자인쇄술의 변천사뿐 아니라 한글 활자 인쇄술의 제작 과정과 한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풍성하게 담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한글글꼴의 현주소와 미래적 가치의 중요성을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를 찾은 우리대학교 서수연(시디·14)씨는 “막연하게 한글 글꼴은 단순히 몇 자만 디자인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 천 수 만개의 자모조합을 일일이 고려해 디자인해야 해서 놀랐다”며 “디자인 전공자들이 아니더라도 와보면 좋을 전시”라고 전했다.「꼴꼴꼴 한글 디자인」특집전은 국립한글박물관 별관인 한글나눔마당에서 오는 11일까지 열린다. 다가오는 한글날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아 우리글 한글이 걸어온 길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함께 고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모조각기 : 활자자모를 금속재료에 조각하는 기계.
**원도(原圖) : 모사(模寫)나 복제(複製) 등의 바탕이 되는 그림.
 

 

글·사진 이주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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