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속 ‘성평등의이해와 실천’은 먼나라 이야기?

세계경제포럼 ‘2014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는 136개국 중 117위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말로는 성평등을 외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성인들이 모여있다는 대학 사회에서는 성평등이 잘 이뤄지고 있을까. 대학 사회 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대학 속 성차별 실태를 진단해봤다.
 

성인지 관점이 결여된 대학문화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정기연고전(아래 정기전)에는 여성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뛰는 여성 선수는 0명. 정기전이 시작된 지 5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기전은 남성 선수의 몫이고 그것이 당연시 돼 왔다. 다른 대학 리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축구의 경우, 여성을 위한 대학 리그는 국민생활체육 대학리그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학 차원에서 진행되는 리그가 아니라 대학 동아리 위주로 진행되는 대회에 불과하다.
학생들 사이의 성인지* 수준 역시 매우 낮다. 일부 학생들에겐 여성은 항상 조신하고, 대외적인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동아리·기관의 장을 맡는 경우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은 물론 여성이 캠퍼스 내에서 공개적으로 흡연하는 경우 대놓고 비하를 당하는 상황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한성대 김태우(국문·12)씨는 “남자가 담배 피는 것은 어색함이 없지만, 여자가 담배 피는 것을 보면 시선이 가고, 어떤 친구들은 흉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수업에서도 이런 고정된 인식에 부딪혀 성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다. 대학의 몇몇 수업에서는 여학생들에게 다른 교수법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양성 모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A 대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들은 여성 하모씨는 “수영 수업 시간에 가면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라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같은 수업을 수강한 남성 남모씨 역시 “남학생이란 이유로 다른 수업을 받고, 여학생만 특별한 수업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며 "차별을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남학생 역시 낮은 성인지 수준으로 인한 양성차별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남학생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우리대학교 윤모씨는 “동아리 술자리에서 여학생들은 밤 11시 30분만 되면 기숙사 통금시간에 맞춰 비교적 자유롭게 자리를 뜨지만, 남자에겐 그렇지 않다”며 “대놓고 ‘들어가지 말라’는 강요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압박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또, ‘남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도 한다. 우리대학교 김모씨는 운동 동아리 관계자에게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하고, 빨간 안경을 써 여성스럽다며 보통 남성보다 운동을 못 할 것 같다’는 탈락사유를 전해듣기도 했다.
 

학생 사회의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처럼 그릇된 성차별적 문화와 행동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올바른 성인지 관점을 갖추는 것은 여전히 대학생들의 숙제로 남아있다. 경상대 사회학과 이혜숙 교수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하고 있듯, 대학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성 중심적 문화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대학생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성차별과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성차별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데에는 학생들의 소극적인 대처도 한몫을 한다. 지난 2013년 11월, 배재대 학생회에서 대학생 1천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성차별적 발언을 들었을 경우 47%의 학생이 ‘그냥 참는다’고 답했다. 또한, ‘신고한다’는 의견은 13%에 그쳐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대학생은 성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이모씨는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같은 직장에 다닐 수도 있는 선배나 동기이기 때문에 싫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전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김나영 교수는 “성차별적 문화는 성 관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차별적인 생각이 사회적으로 발현돼 나타나는 것”이라며 “차별적 발언이 실제 현실에서 또 다른 차별을 재생산할 우려도 있고 그걸 정당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제한해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전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잘못된 문화를 바꾸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교수 사회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성차별
 

“다른 사립대 원서를 냈는데 안 됐거든요. 그 이유가 여자는 아예 근처에 오지도 말라는 거였어요. 특히 법대 학생들이 여자 교수에게는 배우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가슴이 쓰리더군요. 당시 한국에서는 여자가 법대 교수가 되기는 어렵겠구나 싶었습니다.”
-H대 법학과 이모 교수

학생들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학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인 교수들 사이에서도 성차별은 주요한 화제 중 하나다. 교수 사회에서는 남성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보다는 여성이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2014년도 여성정책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교수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지난 2014년 기준 새로 임용된 여교수의 비율은 21.5%를 기록했다. 특히 국공립대학에서의 여성교수 비율은 14.5%에 불과했다. 4년제 대학에서의 여학생 비율은 39.4%이고 박사과정에서 여학생 비율은 38.2%인 것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여성교수와 여성 보직교수의 수가 적은 이유는 가사 및 가족 내 돌봄 기능이 여전히 여성에게 과도하게 부과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대학이 여성의 부담을 덜어줄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 후속세대의 가사, 육아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제도 및 시설이 부족해 학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교수로 임용 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고, 실적이 더 좋더라도 ‘웬만한 남(男)교수보다 낫네’라며 남성과 비교하는 표현을 듣기 일쑤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성 교수의 비율을 정책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는 여성교수 채용을 30%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쿼터제를 도입해 여성교수를 일정 이상으로 임용할 경우 주정부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책적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이 교수는 “여교수들은 자기계발과 노력을 통해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아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서 소외되거나 동화되는 경우가 있다”며 “성적으로 불평등한 대학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교수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함께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영국 옥스퍼드대는 평등과 다양성 기구(Equality and Diversity Unit)라는 성평등 전담 기구를 운영 중이다. 이 기구는 성평등 담당 직원을 배치하고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 교직원의 의견을 정기적으로 수렴해 중장기적인 양성평등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아동보육 서비스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학생과 교직원의 자녀 보육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교수는 옥스퍼드대의 사례처럼 “전체 대학 차원에서 성차별의 문제점을 공론화해 전반적 과제로 문제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양성 간의 인식 차이를 좁힐 수 있고, 성평등 문제를 대학에서의 중심적인 쟁점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평등 문제는 우리 대학 사회 속에서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 구성원 모두의 참여 속에서 솔직하고도 진지한 대화와 토론, 대안제시가 이뤄진다면 성 문제에 있어 평등한 대학 문화가 빠르게 정착될 수 있지 않을까.

*성인지 관점: 각종 제도나 정책에 포함된 특정 개념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 등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관점을 말한다.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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