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혐오로 갚는 '혐오의 시대'

인터넷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김치녀’라는 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반면 ‘씹치남’은 어떤가? 숱하게 들어온 김치녀라는 말에 비해 씹치남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 것이다. 하지만 최근 씹치남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수년 간 지속돼온 여성혐오(아래 여혐) 프레임에 반발하는 여성들에 의해 대거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명분하에 남성혐오(아래 남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인터넷은 양성갈등의 전쟁터가 돼버렸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양성혐오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자. 

▲ 메르스 갤러리의 남혐 게시물

 

메르스와 상관없는 메르스 갤러리

지난 6월, 우리나라를 휩쓴 메르스는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메르스가 영향을 미친 것은 비단 보건 분야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아래 디씨)에는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메르스 갤러리(아래 메갤)’가 생겨났다. 하지만 메갤은 개설 취지와는 달리 양성 간의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발단은 메갤에 메르스 확진자와 같은 비행기를 탄 한국 여성 2명이 홍콩에서 격리치료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메갤에서는 이 여성들을 김치녀로 칭하며 한국 여성 전체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보로 밝혀지면서 숨죽였던 여성 네티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혐 게시물에서 흔히 쓰이는 어투와 논리를 주체만 남성으로 바꾼 미러링(mirroring)*을 통한 남혐 게시물이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메갤은 ‘이성혐오’의 투기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게다가 디씨의 대응은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디씨는 갤러리 이용자들에게 “욕설이나 심한 성적 표현을 계속하면 제재를 취하겠다”며 글을 올렸지만 수년 간 여성을 혐오하는 글이 올라왔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다가 남혐 발언이 나오자 그제야 규제를 시작했다는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여성 네티즌들은 ‘메갈리아’, ‘메갤저장소’ 등의 대피소를 만들며 활동을 지속했다.


이성혐오, 어떻게 진행되었나?


메갤을 시작으로 이전까지 김치녀, 된장녀 등 주로 혐오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이 이제는 혐오의 주체로 변했다. 그 중심에는 메갤 사건 이후에 탄생한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가 있다. 메갈리아란,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이 완전히 바뀐 가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메르스의 합성어이다. 이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메갈리안’ 혹은 ‘메갈리아의 딸들’이라고 자신들을 지칭한다. 이곳에서는 여혐의 대명사였던 김치녀를 씹치남으로, 김치녀는 3일에 한 번 패야 한다는 뜻의 ‘삼일한’을 씹치남은 숨 쉴 때마다 패야 한다는 뜻의 ‘숨쉴한’으로 바꾸며 반격을 계속했다. 여성들이 데이트 비용, 군대, 과시적 소비로 받은 공격을 데이트 폭력, 코피노**, 강력범죄 등으로 바꾸어 되돌리는 미러링 방식은 다소 험악했으나, ‘네거티브(negative)’를 선택한 이 방식은 바로 반향을 일으켰다. 메갈리아 이용자 A씨는 “그동안 여성들이 당해왔던 혐오스러운 발언들을 그대로 주어만 남성으로 바꿨을 뿐”이라며 “이것이 남혐이라면 그동안 여성을 비하하면서도 ‘일부 김치녀’들에게 하는 말이니 발끈하지 말라던 남성들의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메갈리아의 미러링 활동과 기존의 여혐활동들은 페이스북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와 ‘메르스갤러리저장소’가 있다. 한 사람 혹은 일부의 개념 없는 행동을 김치녀, 씹치남이라며 서로의 성별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을 통해 혐오의 틀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C씨는 “일부 커뮤니티들이 이성혐오를 주도하게 된 것 같다”며 “이를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이런 의식에도 불구하고, 일부 커뮤니티를 벗어나 SNS로 번진 성별을 둘러싼 혐오대결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혐오를 혐오로 갚는다

그동안 지속돼오던 여혐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는 하나 메갈리아를 중심으로 한 반격 혹은 남혐을 보는 시선이 고울 수만은 없다. 가장 큰 비판은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여혐 현상들을 조롱하고 남성들도 똑같이 느껴보라는 취지이지만 너무 저급한 텍스트를 그대로 답습해 재생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라는 문제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여혐을 극복하려는 지혜로운 설득과는 거리가 먼 공격적 모습을 띤다. 이에 대해 메갈리아는 ‘그들은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여혐에 대한 그들 자신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자신들의 표현 방법을 설명한다. 실제로 메갈리아에서는 ‘행동하는 메갈리안’ 프로젝트를 통해 불법 몰래카메라 촬영 근절 캠페인과 팔찌를 통한 기부활동 등을 전개하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프레임을 벗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러링 이외의 남혐 발언을 규제하는 메갈리아의 운영방침에 일부 여성 네티즌들이 불만을 느끼고 다시 메갤로 향하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단순히 지금까지 지속돼왔던 여혐에 대한 반작용에 불과했던 메갤의 미러링 혹은 여혐에 대한 혐오가 단순한 남혐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성 간 혐오의 전쟁터가 돼버린 인터넷 커뮤니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싸우는 것일까.

요즘 인터넷상의 이성혐오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게시글을 올리며 웃고 떠들고 공감한다. 그러면서 더 자극적인 자료로 혐오의 프레임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성을 서로의 반쪽이 아닌 적으로 생각하는 ‘혐오 시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공존해야 하고, 이를 위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비난을 지우고, 이성을 되찾아 ‘혐오 시대’를 끝내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미러링(mirroring) : 거울처럼 상대방의 언행을 따라 하여 그 기분을 느끼도록 하는 것.
**코피노 :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 합성어. 어학연수나 해외 출장, 여행 등으로 필리핀 현지에 체류하는 한국 남성과 현지 여성의 동거나 성매매 등을 통하여 태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이 편모 가정에서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냉대 속에 자라고 있다.

 

 

 

글 박은미 기자
eunmiya@yonsei.ac.kr
그림 김혜빈
<자료사진  메르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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