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그림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다.

빛이며 빛깔인 너
너로 인해 회복된 내 영혼이여! - 샤를 보들레르

눈동자에 영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작품 속 모델들의 눈동자를 비워둔 그는 바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생을 이어가는 내내 병마와 맞서야 했던 모딜리아니는 전위예술*의 한 획을 그은 근현대 미술가다.

미술 작품 속 이미지에는 삶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다. 선과 색채 그리고 구도와 시점이 담긴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저서 『미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창작한다는 것은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행위’라고 진술한 바 있다. 모딜리아니가 꺼내든 실존에 대한 화두(話頭)는 ‘눈동자’다. 그는 모델의 얼굴 속에 눈동자를 삭제시킴으로써 모딜리아니 스스로가 모델의 영혼을 파악할 수 있는 일종의 유예기간을 갖게 했다. 그런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오는 10월 4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된다. 가장 생생한 빛으로 달아오르는 모딜리아니의 눈동자와 그의 작품 속 모델의 눈동자에 담긴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시관을 찾았다.

정처 없이 떠도는 피투성이 삶

모딜리아니는 1884년 여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모딜리아니는 몹시 병약해 11살에는 늑막염을, 15살에는 장티푸스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나 요양 중에도 미술 공부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장티푸스에서 벗어난 바로 그다음 해, 자신의 목숨을 완전히 앗아가게 될 폐결핵에 걸리게 된다. 하지만 지독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모딜리아니는 결코 미술에 대한 의지를 떨쳐내지 않았다. 20살이 되던 1906년, 파리에 정착한 모딜리아니는 미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으나 가난에 시달리게 되면서 술과 마약에 의존한다. 끊임없이 접근해오는 병마의 늪과 가난은 그를 서서히 죽음 속으로 몰아갔다.

그런 모딜리아니에게도 일순의 봄은 있었다. 1917년, 모딜리아니는 19살의 소녀 잔느 에뷔테른느를 만나게 된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에게 정신적 안식처이자 최고의 모델이 돼줬다. 그러나 잔느의 부모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인 모딜리아니와의 관계 지속을 극도로 반대한다. 그럼에도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더 깊은 감정을 나눴고 서로에게 위로받았다. 같은 해 모딜리아니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전을 개최하지만, 그의 누드화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전시회가 철거돼 자신의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처럼 모딜리아니의 삶은 늘 외부의 힘으로 인해 파편처럼 조각났다. 모딜리아니의 병색은 점점 짙어졌고, 결국 1920년 결핵으로 인해 3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튿날 모딜리아니를 잃은 슬픔에 임신 중이던 잔느 역시 모딜리아니를 따라 스스로 생과 작별하는 길을 택한다.

은밀하고 쓸쓸한 인물화

모딜리아니의 전시에는 온통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진 인물화뿐이다. 작품 속 모델들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도 않다. 단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이번 모딜리아니 전을 기획한 전시기획자 서순주씨는 네이버 미술캐스트 「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 展」을 통해 모딜리아니가 ‘인물에 대한 집착과 집념만이 화가인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이자 운명인 것처럼 그는 오로지 사람만을 그렸다’고 전했다. 이어 모딜리아니가 굳이 인물화를 그린 까닭에 대해 서씨는 ‘사람들과 만남의 수단이었고, 타인의 내면세계를 이해하는 정신적 교감 작업’이라며 ‘이러한 교감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로 가는 외롭고 긴 여행이자 자아 발견의 긴 시간’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메모장에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비사실이 아닌, 무의식이라는 인류의 본능에 대한 신비다’라고 자신의 관념을 표출했다. 이처럼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그리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토록 인물화를 그리는 것에 열정적이었던 것이다.

전시회장에서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던 길혜연(20)씨는 “눈동자 없는 인물들이 오히려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눈동자가 없는 인물화였으나,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인물들은 여타 작가들의 인물화보다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듯했다. 또 다른 관람객 박규현(20)씨는 “오로지 눈만을 통해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도리스 크리스토프는 모딜리아니에 대해 서술한 저작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를 통해 ‘모딜리아니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 차갑고 묘사적인 세계보다는 몽상과 시의 세계를 습관처럼 떠올리는지 모른다’고 모딜리아니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살아가는 동안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했으나 제대로 된 한 차례의 개인 전시회도 진행하지 못했던 모딜리아니. 그리고 그런 그의 너덜너덜한 세계를 사랑으로 꿰매준 잔느. 모딜리아니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대상이며 사랑의 원천지인 잔느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작과 사랑 모두에 격렬했던 모딜리아니의 영혼이 모딜리아니가 비워둔 모든 눈동자 속에 박제되길 꿈꾼다.

*전위예술 :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예술을 탐색하고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을 일변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예술경향 또는 그 운동

 

송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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