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색 없는 지역 축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야

“거기, 젊은 양반! 이것 좀 도와주쇼!”

연천의 한 축제에서 축제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기자는 축제 관계자의 부탁으로 축제 진행 장비와 음향 장비를 옮기는 일을 도왔다. 축제 관계자는 “주말이라 따로 행사인력을 배치하지 않아 일손이 부족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축제 진행에 있어서도 미숙한 점이 많았다. 책자에 홍보된 풍선아트와 페이스 페인팅은 찾아볼 수 없었고, 고구려 유적지에는 간단한 설명과 말뚝만이 박혀있을 뿐이었다. 지역 축제의 씁쓸한 단면이었다.

▲ 연천의 한 축제 마지막 날 현장.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다.

특색도, 관광객도 없는 지역축제

지역 축제는 지역만이 갖는 독특한 차별성을 부각한 축제로서, 전통문화를 계승 및 발전시키고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며,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지역 축제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늘어났다.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전국 지역 축제의 개수는 664개로 하루 평균 2개꼴로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각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비슷한 지역 축제를 만들고 있어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제주도에서는 매년 4월 중순, 유채꽃큰잔치가 열린다. 하지만 유채꽃 축제는 제주도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서울, 구리, 수원, 삼척, 태백 등 10개가 넘는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4개 지역에서 유사한 도자기 축제가 있고, 비무장지대(DMZ)를 주제로 열리는 축제도 3개나 있다. 지자체들은 지역 이름을 내걸고 여는 축제를 통해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상권을 살릴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진부한 축제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많지 않다. 한국국제대 박준수(어문계열·13)씨는 “그 지역만의 특색을 보고 싶어 지역 축제를 찾는 것”이라며 “수익과 관광효과만을 얻기 위해 개최하는 특색 없는 축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지역이름, 명승지, 특산품 이름을 앞세운 축제가 난립하다 보니 많은 지역 축제는 방문객도 식상해하는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인천의 한 축제는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고 폭죽으로 마무리하는 단순 이벤트성 축제였다. 축제 곳곳에는 기존 테마와 관계없는 상품들이 진열돼 있었고, 잡상인들로 길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서 축제를 찾아온 이소정(41)씨는 “사람이 많아 흙먼지만 날리고 주차 공간도 부족해 실망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상품 가격들도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다시 오기 싫다”고 전했다. 축제에 포함된 행사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축제는 유명가수의 라이브 공연과 레이저쇼, DJ쇼, 불꽃놀이 등으로 진행됐는데 시민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축제를 찾은 인하대 임수성(아태물류·11)씨는 “행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시했다”며 “이런 행사에 국민의 혈세가 포함됐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지난 8월 5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전국 480개 지역 축제를 표본 조사한 결과, 만족도가 높은 축제는 5.8%에 불과했다. 한국관광공사 이수진 팀장은 “지자체들이 지역 홍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축제를 유치하다 보니 각 지자체에 맞는 고유의 특성을 살리기 보다는 유명한 타 지역 축제를 무분별하게 모방하고 있어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축제에서 낭비되는 예산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기자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공시 시스템인 ‘내고장알리미’에서 공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4월 기준 395개의 국내 지역 축제에는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4천575억 2천100만 원의 예산이 사용됐다. 1개 축제당 평균 11억 5천828만 원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무분별한 축제 개최로 인해 사람들의 참여가 적은 축제에도 수억 원의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인천의 한 축제 현장. 축제의 테마와 달리 무분별한 상업성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지역 축제

전문가들은 유사 축제를 통폐합하고 지자체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경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 함께 축제 이후 사후관리에 더욱 철저히 신경을 써서 축제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후 지역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지자체들이 무분별하게 지역 축제를 개최하면서 수천억 원의 예산과 인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지역별로 차별화된 축제를 육성하고, 비슷한 축제를 통폐합하는 것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양대학교 관광경영학과 최규환 교수는 “지자체 공무원들은 축제 기획과 관련해 전문 인력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축제시설의 사후 유지·관리 비용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인력과 함께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그러나 특색없는 지역 축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살려 성공을 거둔 축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 진흙을 활용해 지역적 특성을 살린 국내 최대 축제로 거듭난 보령머드 축제가 있다. 이처럼 성공하는 축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의 축제를 모방하지 않고 그 지역만의 특색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더불어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자체의 유기적인 지원이 잘 조화돼야 비로소 좋은 축제로 거듭날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축제는 단순한 홍보성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익구조를 구축하고, 지역 특유의 전통을 계승하며, 지역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화합하는 장이 돼야 할 것이다.

 

글·사진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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