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자연의 균형으로 인해 몰려오는 신(新)전염병

백신이 없던 시절, 인류는 전쟁보다 전염병을 두려워했다. 병에 걸릴 경우 나을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들어 과학기술의 발달로 각종 백신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전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백신의 개발 속도보다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하는 속도가 더 빠른 탓이다. 과학저술가 아노 카렌은 자신의 저서 『전염병의 문화사』에서 “오늘날 우리는 한 가지 질병이 정복되면 또 다른 것이 새로 등장하든지 아니면 재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종 전염병 "환경 전염병"의 탄생

오랜 시간 인류는 전염병과 투쟁해왔다. 문명의 발전과 함께 전염병과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했으나 인류는 다시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과 같은 새로운 전염병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러한 전염병들은 인간이 야기한 환경·생태적 변화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환경전염병(eco-demic)’으로 불린다. 올해 전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메르스를 비롯해 지난 2003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플루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와 같은 전염병에 대해 용태순 교수(의과대·환경의생물학교실)는 “전염병의 원인체가 새롭게 생긴 것은 아니고, 인간이 만든 환경 변화에 의해 감염을 일으키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환경전염병은 쉽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중 한 원인으로 흔히 ‘공장식 축산업’이라고 불리며 소를 가축이 아닌 고깃덩어리로 취급하는 현대 축산업계의 관행을 들 수 있다. 지난 2008년, 워싱턴에 위치한 퓨 연구소는 현대의 축산업에 대해 ‘산업식 동물 생산은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1980년 이후 본격화된 공장식 축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밀집 사육 환경을 선택하면서 동물의 자연적 습성을 철저히 배제했다. 소들은 햇빛을 거의 볼 수 없는 축사 속에서 배설물과 함께 지내는 동시에 병에 걸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항생제를 투여 받는 모순적인 환경에서 사육됐다. 이러한 사육 과정은 가축의 성장 환경에 적합하지 않아 가축을 병들게 하고, 가축 속에 내재된 균들은 보다 강력한 내성을 가지게 됐다. 아울러 현대축산업자들은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이며 초식동물을 억지로 육식동물로 만드는 비윤리적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 역시 환경전염병의 원인이 됐다. 용 교수는 “지구 온난화는 질병 매개체들의 분포를 확대해 곳곳에서 감염 질병을 전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실례로 온난화로 인해 진드기 분포지역이 확대됐고 개체 수까지 증가했다. 살인진드기로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는 치사율이 40%에 이르는 중증열성 혈소판감소 증후군(SFTS)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국내에서 처음 보고된 후 그해 감염된 36명 중 17명이 사망했으며, 올해에도 30명의 환자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염병과 멀어지기 위해

수의학자 마크 제롬 월터스는 저서 『에코데믹, 새로운 전염병이 몰려온다』에서 ‘우리는 세계를 인간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을 하다가, 오히려 질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류가 지구 환경과 자연의 순환과정을 대규모로 파괴하면서 생태학적 안정성이라는 보금자리에서 스스로를 내쫓는 위험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월터스에 의하면 1970년대 이후 등장하는 신종 질병 중 75%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으로부터 전파됐다. 인간의 과도한 생태계 개입으로 인해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 김준명 교수(의과대·감염내과)는 “최근에 발생되는 전염병들은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 된다”고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지구상 인간의 적정 개체수가 포화돼 인간의 주거 환경을 넓히기 위해 동물의 주거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동물과 사람이 접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감염 가능성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 교수는 “우리가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전염병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병한다”며 “환경오염이 심해지면 미생물들이 증식하는 상황으로 인해 장티푸스와 일본뇌염 같은 전염병들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 생태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 역시 병을 얻었다. 월터스는 우리가 이러한 병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다른 종 사이에 주거 상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터스는 ‘새로운 치료법과 치료약 개발에만 몰두해서는 그 일을 해낼 수 없다’며 ‘우리 건강의 토대가 되는 생태계 전체를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인간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발병하는 전염병은 자연 재해가 아닌, 인류가 추구한 편익에서 비롯된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오랜 시간 자연이 축적해온 시스템을 파괴하며 스스로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새로운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에만 힘쓰고 있다. 인류가 자연계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전염병이라는 재앙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육골분 사료 : 뼈가 있는 포유동물의 부스러기를 이용해 만든 사료로,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부터 사용이 제한되고 있다.
**인수공통 전염병 : 사람과 가축 양쪽에 이환되는 전염병으로, 특히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되는 병을 가리킨다.
 

 

송민지 기자
treeflam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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