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스펙,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찾는 불편한 이유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

이는 지난 2014년 11월에 공표된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에 명시된 자원봉사의 정의다.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 자원봉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과 무대가성이다. 하지만 현재 대학사회의 봉사활동은 ‘자원’이 빠진 ‘봉사활동’만 남아있다. 청소년 시절부터 졸업과 입시를 위해 반강제적으로 봉사를 시작하는 학생들. 그리고 대학을 가서도 졸업을 위해서, 학점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좋은 스펙이 될 수 있어 봉사를 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하는 봉사활동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봉사활동의 기회를 접해봤을 것이다. 봉사활동은 중·고등학교 졸업을 위한 필수 조건인 동시에 대학 입시 평가 기준의 요소 중 하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5년 있었던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생긴 봉사활동 의무제 때문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학교별로 지정한 필수봉사활동 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이는 봉사의 생활화를 청소년 시절부터 심어주기 위함이다.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원주시 청소년수련관 이현주 관장은 “봉사의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의무 봉사활동은 봉사의 계기를 만들어 지역사회와 이웃에게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며 “사회 진출 시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영선(인예영문·14)씨는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시키지 않았으면 봉사활동을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기는 비자발적이었지만, 봉사활동을 하고 나니 보람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봉사활동의 취지가 늘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이 관장은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봉사시간을 채우거나 봉사경력을 쌓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다수의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동기는 ‘해야 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대학교를 비롯한 대부분 대학은 신입생 평가에 있어 비교과영역에 봉사활동을 명시해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 경희대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은 “봉사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소양’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며 “봉사는 자발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정한 봉사활동 외에 개인이 자발적으로 다녀온 봉사시간이 있는지를 평가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봉사는 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과 같이 정성적 평가를 중시하는 수시전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는 2016학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황유경(19)양은 “입시가 아니었다면 봉사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좋지만 시간만 채우는 봉사가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봉사활동 내역을 보면 보람차기보다는 부끄럽다”고 말했다.

대학생 돼도 비자발적인 것은 마찬가지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생들도 비자발적으로 봉사를 하는 이들이 많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이 지난 2010년 대학생 1천2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봉사활동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약 67%가 학점, 취업을 위한 스펙 준비 등을 이유로 봉사를 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우리대학교를 비롯해 많은 대학이 학문적 소양과 함께 인성을 갖춘 인재 함양을 목표로 봉사활동 과목 필수교양화와 사회봉사과목 학점인정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졸업을 위해서는 봉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봉사활동 필수교양화는 봉사활동 관련 교양강좌를 졸업을 위한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한 것을 말하는데, 세종대, 동덕여대 등 다수의 대학에서 이를 실시하고 있다. 세종대는 사회복지기관 및 시설에서의 봉사활동을 중핵*필수로 지정했고 동덕여대의 경우에는 전체 학부생을 대상으로 졸업 전 36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학사회의 봉사활동 의무화는 자발성과 무대가성이라는 봉사의 본질에 어긋나기도 한다. 학생들이 졸업을 위해 봉사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필수교양과목으로 지정된 봉사 강좌의 경우 봉사기회 제공에만 급급해 교육과는 거리가 멀거나 학생들의 봉사에 대한 반감을 조성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편, 우리대학교는 봉사가 졸업을 위한 필수요건은 아니지만,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RC교육의 일부인 홀리스틱 에듀케이션  중 사회기여파트 강좌(아래 HE1)를 운영해 봉사를 권장하고 있다. 이는 학기당 최대 이수학점을 초과해 수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참여가 유도되기도 한다. 이를 담당하고 있는 한봉환 학사지도교수(학부대·이학계열)는 “봉사활동이 물론 자발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활동에 직접 참여해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실제로 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서 봉사활동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후에 좀 더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목 운영에 있어서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지난 학기 우리대학교 HE1 과목 중 ‘외국인력지원센터’를 수강했던 곽경인(ISED·15)씨는 “봉사를 마치고 나니 뿌듯하긴했지만, 실제로 봉사한 것은 없어 민망했다”며 “봉사활동 내용이 부실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대학교 중앙봉사동아리 ‘YRC’ 회장 문희영(영어영문·14)씨는 “수강 경쟁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HE1을 수강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며 “그 중 하나였던‘연인**’과목으로 인해 멘토링 봉사 전반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 학생들이 비슷한 프로그램에 역시 참여하기를 꺼린다”고 우려를 표했다.

“우리는 봉사하는 인재를 선호합니다”


지난 2002년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취업준비생들은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을 ‘취업 5대 스펙’으로 꼽았다. 그리고 10년 후 2012년에는 봉사활동, 인턴 경험, 수상경력이 추가된 ‘취업 8대 스펙’을 발표했다. 취업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봉사활동 또한 취업을 위한 스펙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기업에서는 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요소로 봉사를 요구해 봉사활동마저도 스펙화 돼가고 있다. 대학생들이 스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스펙업’에서는 봉사활동만을 위한 게시판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이는 봉사활동이 스펙의 일환이 됐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한, 기업에서 신입사원 지원 시 자기소개서에 봉사활동 경험을 기재하는 칸을 채워야 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장유진(임상병리·14)씨는 “취업할 때 자기소개서에 있는 봉사활동 칸을 채우기 위해 방학 동안 병원에서 문서 정리하는 봉사활동을 했다”며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는 스펙을 위해서가 가장 크다”고 전했다.

스펙형 봉사활동에는 대표적으로 해외봉사활동이 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해외경험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지구촌 공동의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세계시민의식을 기르자는 취지와는 달리 자신의 해외경험과 스펙의 일환으로 해외봉사를 찾는 학생들도 많다. 특히, 기업에서 주관하는 해외봉사활동의 경우는 입사 지원 시 가산점을 부여받을 수도 있고, 금전적인 부담이 적어 많은 학생이 선호한다. 이로 인해 대기업 봉사활동의 경우, 경쟁이 다른 봉사활동보다 과열돼 60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곳도 있었다. 올해 한국전력공사에서 지원하는 해외봉사를 다녀온 지승현(전기전자공학부·15)씨는 “같이 봉사를 갔던 학생들에게 ‘장학금 신청할 때 쓸 이야기가 없어서’, ‘취업 준비를 위해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처럼 취업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대학생들에게는 봉사활동마저도 하나의 스펙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올해 해외봉사를 다녀온 남모씨는 “스펙을 쌓기 위해 해외봉사를 갔다 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스펙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며 “그러한 경험들이 취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스펙으로서의 봉사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봉사를 하는 이유에는 봉사의 본질적 특성인 자발성과 무대가성 그리고 이타정신이 사라져 가고 있다. 자원봉사 자체는 이타적인 활동이지만, 그 동기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봉사로 변질된 것이다. 대기업 S사 신입사원 채용 관계자는 “봉사는 단지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지 가산점이 있거나 필수사항은 아니다”라며 “마음에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스펙 때문이라면 봉사활동의 본질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대학생들이 취업에 대한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취업 8대 스펙’이 된 봉사를 반강제적으로 하는 학생들을 문제라고 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이 어쩔 수 없다면, 봉사의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중핵 :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활동을 중심에 놓고 그 이외의 것을 주변에 조직하는 교육과정의 형태.
**연인 : 우리대학교 HE1 과목 중 하나로 초·중·고등학생 멘토링을 해주는 사회봉사과목. 연세의 ‘연’과 인천의 ‘인’을 따서 만든 용어이다.

글·사진 문세린 기자
peace.maker@yonsei.ac.kr
글 서형원 기자
ssyhw35@yonsei.ac.kr
<자료사진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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