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영화과 교사 임현엽씨를 만나다

연극은 우리 대학생들에게 영화나 TV 드라마보다는 생소할지 모른다. 연극을 보려면 대학로와 같은 극장가까지 찾아가야 하고, 살아있는 배우들이 눈앞에서 연기하는 것 또한 TV 속 배우의 모습보다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연극 또한 이러한데, 연극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얼마나 이색적인 사람일까? 안양예고 연극영화과에서 미래의 연극배우들을 가르치는 연출가 겸 교사 임현엽 씨를 만났다.

연출가와 교사, 두 번의 도전

평범한 청춘들은 누구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한다. 임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던 임씨는 수험생 시절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자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입학하고 보니 연극영화과의 학과 과정은 영화가 아닌 연극 쪽에 집중돼 있었고 임씨처럼 영화인을 꿈꾸던 학생들은 대다수가 학교를 그만두곤 했다.
그러나 임씨는 ‘지금 포기하면 다른 길을 간다 해도 행복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오기로 버티는 길을 택했다. 임씨는 무대 설치와 소품 준비 등 잡다한 일에 누구보다 먼저 나섰다. 그러자 점차 임씨의 오기가 통하기 시작했다. 선배와 교수들이 임씨를 인정하는 일이 많아졌고 임씨 자신도 순간의 예술이라는 연극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임씨는 대학생들에게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이 과연 나와 맞는지, 내가 이 일을 꼭 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게 느껴져도 한 번쯤은 끝까지 가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의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임씨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을 중시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안양예고 교사직을 선택한 것도 임씨의 인생에선 도전의 연장선이었다. 우연히 선배의 소개로 교사직을 맡게 됐을 때, 임씨에게 교사란 어색하고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단 한 번도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씨는 진솔하게 학생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했고 그런 임씨의 모습에 학생들은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특히 학생들이 시연하는 작품을 직접 지도하게 된 임씨는 한 걸음씩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고, 이것은 임씨가 교사를 계속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임씨는 “학생들의 연기는 기성 배우들과 비교해 봤을 때 부족한 면이 많지만, 기성 배우들에게선 볼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이 있다”며 “숨이 차오르는데도 쉼 없이 춤추고 연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 관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더불어 임씨는 “그러한 관객들의 호평이 아이들과 동고동락 했던 나날들에 의미를 부여해줬고 나 또한 교사직이 나의 삶에 가져다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고 말했다.

연극이 가진 힘

임씨에게 연극이란 ‘그 순간이 아니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그 특성상, 배우들이 관객 앞에서 직접 연기하는 그 순간에만 이뤄진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친다면 배우의 감정이 담긴 연기는 영원히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순간성’과 ‘소모성’은 임씨가 학생들을 교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임씨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그 순간의 공기를 느끼고, 배우와 감정을 교류할 때 오는 감동은 정말 크다”며 “실제로 특정 공연이나 배우의 연기를 보고 느낀 감동으로 인해 연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답했다. 이처럼 순간의 감동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임씨가 말하는 ‘연극의 힘’인 것이다.
하지만 연극의 힘을 느끼기 위해 시간을 맞추고, 직접 공연장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소 번거로울 수 있다. 임씨는 “그렇지만 연극에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상쇄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연극 관람은 배우의 살아있는 언어를 통해 다른 이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임씨는 “대학생들이 일상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에너지를 연극을 통해 경험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세웠으면 한다”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대학생활의 의미란

임씨는 대학생활을 연극의 제작과정 중 ‘작품 분석’ 단계에 빗대 이야기했다. 배우들은 무턱대고 무대에 올라가지 않는다. 대본을 받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 맡은 배역과 작품 전반에 대해 생각하는 작품 분석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작품과 인물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작품 분석 과정은 꼭 필요하지만 당장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길 원하는 배우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임씨는 “대학생활은 다양한 강의와 활동을 통해 사회를 미리 분석해보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작품 분석 시간과 같다”며 “‘작품 분석’ 시간에 공을 들일수록 졸업 후 사회에 나가면 곧바로 직면하게 될 다음 단계인 ‘무대 서기’가 쉬워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임씨는 “연극에서는 분석과정이 디테일할수록 배우들이 자기가 해야 할 것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 실수가 줄어든다”며 작품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인 임씨는 지도한 모든 학생이 철저한 작품 분석을 통해 무대와 사회 모두에서 더욱 생생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되길 바란다.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기 위해 연극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회를 비롯해 휴먼 다큐멘터리까지도 찾아보며 다방면으로 공부하는 임씨. 이는 연기 이론과 더불어 인간의 다양한 삶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터뷰 직전까지도 학생들과 함께하던 임씨는 “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연기해 관객에게 자신이 해석한 인물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며 “배우와 대학생 모두 자신의 한계에 계속 도전한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임씨가 자신만의 철학으로 길러낸 큰 배우의 스승이 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글 김광영 수습기자
송민지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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