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한강시민공원 현장 르포

한강은 우리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태백산맥의 물줄기로부터 발원해 경기도를 거쳐 서울시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한강은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조선시대에 한강은 식수 조달과 교통의 요충지였다.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수로로서 물품과 재화가 집중됐으며 우리 민족의 생활의 터전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한강의 모습과 용도가 크게 변했고, 현대의 한강은 불과 수십 년 전과는 달리 아름다운 풍경과 야경을 뽐내는 시민들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2015년 한강의 현주소는 어떨까? 지난 5월 25일 석가탄신일에 기자는 한강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 캠핑을 왔던 시민이 버린 쓰레기가 식탁과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아침 6시
지난밤의 어스름이 다 가지 않을 시각, 한강의 장대한 물줄기는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아침을 맞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이 곳이 서울 한복판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연휴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일까? 한강변에는 전날 버려진 각종 쓰레기와 사람들의 흔적으로 심한 악취를 풍겼다. 잔디밭에는 먹다 남은 술병과 치킨 조각들이 나뒹굴고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캠핑장 직원이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담고 있다.

#아침 8시
지난밤의 흔적을 지우려 환경미화원들이 빗자루를 들기 시작했다. 헤아릴 수 없는 쓰레기의 양에 환경미화원들은 한숨부터 쉬었다. 환경미화원 김중안(44)씨는 “휴일이나 연휴 막바지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아 골치가 아프다”며 “시민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변에 위치한 편의점 주변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쓰레기통은 가득차 넘쳐 흐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곳에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버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강석우(24)씨는 “쓰레기를 주기적으로 모아서 정리하지만 사람들이 버리는 것이 워낙 많아 지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침 9시
열심히 쓰레기를 청소한 환경미화원 덕분에 한강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한강변에는 휴일인 석가탄신일을 맞아 나들이 온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많았다. 가족뿐만 아니라 연인 혹은 친구와 함께 한강을 방문한 이들의 모습은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 배달음식 냄새와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찬 한강변
 

#낮 12시
배꼽시계가 울릴 시각, 한강 공원은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했다. 오토바이들은 이륜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자전거 도로 위를 질주하며 배달을 서둘렀고, “자장면 시키신 분!”, “혹시 ㄴ치킨 시키셨나요?”하는 배달원들의 목소리가 한강변 가득 울려 퍼졌다. 한편, 근처 난지캠핑장은 고기를 굽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다. 이내 한강변은 어느새 거대한 만찬 장소가 돼 있었다.

 

▲ 한강시민공원 여의도 지구는 수많은 텐트들로 가득했다
 

#낮 2시
햇살이 내리쬐는 여의도 공원에는 오색빛깔 텐트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족들과 나들이를 나온 김지혜(37)씨는 “강바람도 시원하고 아직 초여름이라 그런지 그늘 아래 있으면 하나도 덥지 않다”며 “올 여름에는 텐트를 챙겨 가족끼리 집에서 가까운 한강으로 나들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족, 연인들은 따사로운 햇살아래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과 캐치볼을 하는 아빠, 손을 맞잡고 산책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저녁 6시
저녁 시간이 됐음을 알리듯 배달 오토바이 소리와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점심과 사뭇 달랐던 점은 배달음식 업체에서 광고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이소정(22)씨는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전단지를 8장이나 받았다”고 전했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와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애완동물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었고, 애완동물의 변을 치우는 장비가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갈현동에서 산책을 온 이경준(24)씨는 “애완견을 방치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며 “책임감을 가지고 애완견의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하고 애완견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밤 9시면 텐트들이 모두 철수돼야 하지만 10시 54분까지 철수하지 않은 텐트들이 많이 보인다.

#밤 9시
“9시에요! 텐트 접으셔야 해요!”

청원경찰*로 보이는 남자가 텐트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몰 후에 텐트를 걷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9시가 되면 텐트를 접어야 한다는 방송도 나왔지만 좀처럼 피서객들은 텐트를 접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한강시민공원에서는 ‘캠핑지역이 아닌 곳은 일몰 후에 텐트를 접어야한다’는 규정이 있으며, 이를 지키지 않을 시 과태료 100만 원이 부과된다. 기자는 텐트 때문에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옆으로 다가가 사정을 들어보니 청원경찰이 텐트를 철수해달라고 말했으나 피서객이 그 말을 듣고 역정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피서객은 “다른 사람들도 다 안 가는데 왜 나만 나가라는 거냐”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청원경찰이 규정에 대해 말하자 피서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청원경찰은 “매일 9시에 방송과 함께 순찰도 돌지만 5월부터는 피서객이 너무 많아 현실적으로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텐트를 철거하지 않고 있던 또 다른 피서객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어봤다. 갈현동에서 온 신기정(28)씨는 “8시에 와서 이제 즐겨보려 하는데 오자마자 텐트를 접으라고 하니 당황스럽다”며 “9시는 너무 빡빡한 것 같다”고 전했다.

#밤 10시
서로 누가 목소리가 큰지 자랑이라도 하듯 한강에는 고성방가가 가득했다.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화투를 치고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잔디밭 이곳저곳에는 소주병이 뒹굴고 건조한 한강 바람에 쓰레기가 휘날렸다. 밤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가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한 남성은 맥주캔을 모은 포대 5자루를 자전거에 싣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ㄱ씨는 “연신내에서 맥주캔 피규어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강에서 맥주캔을 쉽게 구할 수 있냐는 질문에 ㄱ씨는 “여기를 한 번 둘러보라”며 “굳이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고도 사람들이 버리고 간 맥주캔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자랑한 맥주캔 뭉치들은 한강을 이용하는 피서객의 부족한 시민의식을 여실히 보여줬다.

#밤 11시
대낮의 더위는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서서히 밤의 한기가 돌았다. 한강에 비친 달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빛났다. 그러나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들이 목격됐다. 함께 캠핑을 온 커플은 텐트 안에서 껴안고 잠이 들어있었고, 또 다른 커플은 수위가 높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한강공원의 텐트는 두 면이 개방돼야 한다는 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문란한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폭주도 문제였다. 많은 자전거들이 조명을 달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어 길을 지나다니는 보행자들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성산대교 북단에 있는 홍제천과 한강이 맞닿는 삼거리는 특히 위험했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피하느라 멈칫했고, 자전거는 위험천만한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 폭주족을 막을 방법은 마땅히 없는 실정이다. 일반 도로와 달리 자전거 전용 및 자전거·보행자겸용 도로에 대한 처벌 규정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일반 도로에선 중앙선 침범, 도로 횡단 위반, 신호 위반, 보행자 횡단 방해, 앞지르기 위반 등 각각에 대한 범칙금이 부과되는 반면, 자전거·보행자겸용 도로에서는 모두 권고사항이다. 한강변에 제한속도 표지판이 즐비해 있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빛나라(24)씨는 “한강에서 조깅할 때마다 빨리 달리는 자전거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했다.

 

▲ 시민들이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떠나 잔디밭에 쓰레기들이 방치돼있다.

#새벽 1시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는 각종 술병부터 치킨과 수박 찌꺼기까지 온갖 쓰레기로 가득했다. 많은 이용객들은 쓰레기를 두고 가면서 그들의 양심까지도 두고 가는 듯했다. 나무 옆에 있던 작은 쓰레기통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곳곳에 위치한 편의점들도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강씨를 저녁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강씨는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것 같다”며 “다음 주도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강아, 강아. 한강아 말 없는 한강아
이 강의 역사를 말하여 다오.
먼 후일 그 누가 너를 물을 때
나도야. 벙어리 되란 말이냐    
 -김도현, 「한강」 中

반만년 우리나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한강, 위의 노랫말처럼 한강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2015년의 한강은 많은 시민들이 만드는 쓰레기와 소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 한강의 주인은 한강을 이용하는 시민이다. 한강공원에 대한 규제와 단속을 늘려가기 이전에 시민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청원경찰 : 어떤 시설이나 기관의 요청에 따라,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글 송진영 기자
sjy0815@yonsei.ac.kr
글·그림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사진 강수련 기자
train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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