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몰락,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하여

임대료가 저렴한 동네에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들어와 공방이나 스튜디오를 차린다. 몇 년 후, 동네는 그들의 작품 활동과 감각적인 가게들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탄다. 이를 놓칠세라,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과 옷가게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동네의 임대료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과 예술가들은 동네를 떠나기 시작해, 남은 것이라곤 대규모 상업시설뿐.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문화적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결국, 동네의 고유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왔던 관광객은 점점 사라지고, 상업 시설들도 하나둘 철수하면서 동네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위 사례는 지난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묘사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도심 지역의 노후화된 주택 등으로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원래 낙후된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을 활성화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을 밀어내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인다. 서울에서는 대표적으로 홍대 인근 지역과 삼청동, 가로수길, 경복궁 인근, 합정동, 상수동, 서촌, 경리단길 등에서 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의 순환주기는 최근 들어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이는 SNS가 발달하고 젊은 층의 미학적 감각이 변화하면서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신현준 교수는 “SNS가 발달하면서 공간과 장소에 대한 정보가 활발하게 퍼지게 됐다”며 “더불어 2000년대 중후반 ‘전국부동산거래전상망’이 공개되면서 부동산 투자자들이 실시간으로 지가의 변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층의 미학적 감각의 변화에 대해 신 교수는 “이전의 젊은 층이 주로 대형 몰(mall)에 관심을 가졌다면, 요즘은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 낯선 곳으로 몰려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리단길을 찾아가 보다

▲ 경리단길의 모습

휴일이던 지난 5월 25일 기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장 ‘핫’하다는 이태원 경리단길을 찾아갔다. 경리단길은 현재 국군재정관리단(과거 육군중앙경리단)의 담을 둘러싸고 있는 거리로, 불과 2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주거단지였다. 그런 경리단길에 아기자기한 상업시설이 들어오면서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단기간에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됐다.
인기를 반영하듯, 기자가 경리단길 입구에서 처음 마주한 풍경은 카페와 츄러스 전문점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이었다. 조금 올라가보니 군부대의 담벼락을 따라 아기자기한 카페와 옷가게, LP바, 브런치 전문점 등이 들어서 있었고, 가게 안엔 역시 사람이 가득했다. 경리단길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길 중턱에 있는 한 부동산을 찾았다.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지난 2014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주택 건물들을 상가로 리모델링하면서 관광객이 늘어났고, 그 후 월세와 권리금이 치솟았다”며 “우리 부동산이 있는 자리도 월세가 60만 원에서 120만 원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기자는 ‘이태원부동산’의 김주원 대표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경리단길은 거주지의 경우 월세가 20~30%, 주택에서 상가로 용도를 변경한 경우 월세가 50% 정도 인상됐다”며 “이 정도 가격이면 강남 대치동 정도의 시세로 볼 수 있지만, 장사가 워낙 잘 돼 비싼 월세와 권리금을 주고도 입점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전했다. 이어서 김 대표는 “하지만 지금보다 가격이 더 오를 경우 장사를 통한 수입과 임대료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사람들이 떠나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경리단길의 신생 가게들은 대부분 주택이나 오래된 가게를 상가로 용도변경한 형태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월세가 치솟았고 없던 권리금까지 생겨났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장사가 잘 돼 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해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자는 20년째 작은 간이건물에서 꼬치 장사를 하고 있는 박모씨를 만났다. 박씨는 조그만 자신의 건물을 비싼 돈을 주고도 사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박씨에 따르면,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곳은 땅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주택가였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늘면서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집을 팔고 떠나고,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박씨는 “부동산에서 얼마든 줄테니 이곳 건물주들에게 1층을 내어달라고 한다”며 “1층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은 쫓겨나거나, 1층에 살던 건물주들도 1층을 상가로 내주고 자신들이 위층으로 올라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경리단길은 현재 부동산 가격 상승과 상업지역의 형성으로 거주민들이 대체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홍대 인근, 정체성을 잃다

그렇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의 초기 단계인 경리단길과 달리, 젠트리피케이션이 막바지에 다다른 홍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홍대에서는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들과 소규모 가게 주인들이 홍대 근처 상수동이나 합정동 등으로 옮겨갔으며, 그들이 비운 자리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상점, 대형 클럽, 주점 등이 들어왔다. 이전에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홍대만의 차별화된 분위기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홍익대 김민정(건축·12)씨는 오래전부터 홍대 인근에 거주하며 공간의 변화를 목격해왔다. 김씨는 불과 몇 년 전 홍대 인근의 지역을 ‘음악, 미술 등의 예술 관련 작업실과 그 특색이 녹아있는 상업시설이 혼재된 공간’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김씨는 홍대의 그러한 정체성을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씨는 “원래 있던 소규모의 가게들과 작업실은 대형 상업시설에 밀려 인근의 상수동과 합정동 쪽으로 옮겨갔고, 노후화된 건물들은 허물어지고 대형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며 “단골집이 문을 닫거나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을 보니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젠트리피케이션은 공간을 이용하는 주체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도시를 개발하고 이익을 창출하려는 정책수립자와 기업의 입장에선,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반면 공간에 원래 살던 주민과 예술가, 소규모 상가 주인의 입장에선 젠트리피케이션은 저항의 대상이다. 땅값 및 임대료의 상승으로 지역을 떠나야 하며, 기존 지역의 독특한 분위기와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대형 상업지구만이 남기 때문이다.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은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라는 의문을 남기게 된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에는 승자와 패자라는 명백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며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장소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이 현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분석했다.
홍대와 경리단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은 아래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외부의 힘이 특정 공간과 구성원들의 특성을 변화시킨다는 점 ▲공간의 변화는 원주민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 ▲공간을 구성한 예술가들이 자신들 노력의 결과로 오른 임대료 때문에 다른 공간으로 밀려난다는 점 ▲도시의 특성이 획일화되고 상업화된다는 점이다. 기자가 찾아갔던 경리단길도 이제 막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어, 아직 임대료가 감당 못 할 수준까지 치솟진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조짐을 보이며 머지않아 그러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사실상 막거나 늦추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신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거나 늦출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나 실천을 고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 교수는 “특정 지역에서 쫓겨난 예술가들이 경사가 급하거나 주차 공간이 없어 상권 형성이 어려운 공간에 새둥지를 틀기도 한다”며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한 번 경험한 예술가들이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조건을 찾는 자구책”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2013년 억울하게 쫓겨난 상인들이 모여 결성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은 소규모 자영업자를 부당하게 쫓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으면 회원들이 몰려가 저지하기도 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거나 늦추려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빈곤한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해 균형적인 도시발전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살고 싶은 곳에서 거주민들이 쫓겨나기도 하고, 지역이 획일적인 상업화 지구가 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한 이에 맞서 저항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장단점이 있는 만큼,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과 사라져 가는 문화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더욱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글 고석현 기자
shk920211@yonsei.ac.kr
사진 정서현 기자
bodowom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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