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우리는 과연 무슨 색을 떠올릴까? 도시의 주를 이루는 빌딩의 시멘트,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이 모두는 우리로 하여금 회색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최근 사람들이 이런 회색 도시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니 이 반가운 전쟁이 이름하여 ‘게릴라 가드닝’이다.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

게릴라 가드닝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정원사가 사용할 법적 권리나 사적소유권을 갖지 못한 땅에 정원을 가꾸는 활동’을 말한다. 비정규군의 변칙적인 전투를 뜻하는 단어 ‘게릴라’와 정원 가꾸기를 뜻하는 ‘가드닝’이 합쳐진 이유는 정원을 가꾸는 게릴라 가드너들의 활동 방식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기보단 각자의 작은 전투를 이어가는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게릴라 가드닝의 목적은 토지의 ‘내버려진’ 또는 ‘모자란’ 상태에 대항해 투쟁하는 것이다. 지금의 도시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쓰레기장이나 무의미한 공터로 방치되고 있다. 반면에 사람들이 자연을 느끼며 치유 받을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꽃과 나무를 심어 버려진 공간을 쓸모 있게, 혹은 아름답게 만들어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선사한다. 이러한 그들의 활약은 범죄율 하락과 같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로 이어지고 있어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로 뉴욕에선 게릴라 가드너들이 만든 '클린턴 공동체 꽃밭'이 생긴 이후 해당 지역의 매춘과 마약이 현저히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매춘에 가담하거나 마약을 하던 사람들이 꽃밭으로 인해 활동영역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게릴라 가드닝, 어디서 시작됐을까?

사실 게릴라 가드닝의 시작은 지금과 같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정원 꾸미기는 아니었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게릴라 가드닝은 제라드 윈스탠리(Gerrard Winstanley)라는 파산한 섬유상에 의해서 시작됐다. 1649년 잉글랜드, 부족한 경작지 때문에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윈스탠리는 ‘구속과 자유를 구분하도록 모든 잉글랜드인에게 호소함’이라는 전단을 통해 다음과 같이 버려진 토지들과 관련된 문제를 지적했다.

"공유지는 왕과 영주들의 치하에서 내내 황폐하게 버려져 있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까지 그대들과 그대들의 아버지들은 가난에 시달렸다. 곡식이 풍요롭게 자랄 그 땅에는 갈대와 이끼와 잡초만이 가득하다."

이후부터 그는 경작이 금지된 버려진 토지에 잡초를 정리하고 콩, 홍당무, 보리 등을 심기 시작했다. 최초의 게릴라 가드닝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말이 실제로 사용된 때는 이보다 훨씬 뒤인 1973년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화가 리즈 크리스티(Liz Christy)는 쓰레기 더미에서 토마토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당시 계속되는 철거와 범죄로 몰락하고 있던 뉴욕 한복판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몇 년에 걸쳐 뉴욕의 버려진 부지들을 정원으로 만들며 이를 행동으로 옮겼는데 이것이 오늘날 게릴라 가드닝의 시초가 됐다.

실전! 게릴라 가드닝!

그렇다면 게릴라 가드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게릴라 가드너들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도시를 정원으로 가꾼다. 첫 번째 방법은 버려진 땅들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갈아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지로 만든 뒤 꽃이나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각 토지의 특성에 따라, 또 주변 지역사회의 환경에 따라 생명력이 강한 식물, 겉보기에 화려한 식물, 혹은 향기가 강한 식물 등으로 식물의 종류를 분류해 적절한 식물을 심는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씨앗 폭탄을 던지는 방식이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꽃이 뿌리를 내리기조차 어려운 장소를 자주 맞닥뜨리곤 한다. 주로 돌이나 쓰레기로 뒤덮인 땅이 그 예. 씨앗 폭탄은 흙, 물, 비료, 씨앗을 하나로 뭉친 폭탄으로서 그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더불어 씨앗 폭탄은 울타리로 막혀있거나 장시간 파종을 하기에 어려운 장소들에서도 유용하다.

게릴라 가드닝, 우리나라에선?

우리나라의 게릴라 가드닝은 주로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일부 관공서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게릴라 가드너를 모집해 지역을 꾸미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활동은 불법적으로 공간을 점거해 가드닝을 하는 게릴라 가드닝 본래의 의미와는 어긋나지만 확실한 사실은 게릴라 가드닝이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추세에 맞춰 우리대학교 국제캠에선 학생들이 HE1에 해당하는 외국 인력 자원봉사 과목에서 게릴라 가드닝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 4월 5일 외국인력지원센터 인근 공원에 식물을 심는 활동을 했는데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많은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날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한 우리대학교 백조운(경영·15)씨는 “처음 해보는 가드닝이 재미있었다”며 “황량했던 공원이 예뻐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게릴라 가드닝은 아름다운 꽃으로 도시의 오아시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였던 모택동은 게릴라전 안내서에 “이긴다는 확신이 없으면 공격하지 않으며 작전 지역을 좁게 제한한 뒤 그 안에 있는 적을 타격한다”고 적었다. 쉽게 말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일을 하나씩 해나가라는 것이다. 게릴라 가드닝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공원을 만드는 것이 아닌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진정한 게릴라 가드닝이다. 그러니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오늘부터 게릴라 가드너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글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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