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train을 타고 떠난 안보여행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바람이 얼굴에 스치던 일요일 아침.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서울역에 도착한 기자는 서울역을 출발해 도라산역에 도착하는 DMZ-train에 몸을 실었다. 서울역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는 여러 번 타봤지만 북한을 향해가는 기차는 처음이었기에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코레일의 안보관광상품*은 5명의 승무원이 라디오 DJ처럼 승객들과 소통하여 재미를 더했다. 덜컹거리며 느릿느릿하게 가던 DMZ-train은 서울역에서 능곡역, 임진강역 등을 지나 대한민국 최북단에 있는 도라산역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봤을 땐 최북단에 있는 역이지만 70년 전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 될 수도 있었던 도라산역, 그곳으로 함께 떠나보자.

민통선을 넘어서

민간인통제선(아래 민통선)을 지나기 전 임진강역에서 DMZ-train을 탄 모든 승객은 신분증을 꺼내 육군 헌병들에게 검문을 받아야 한다. 혹시나 인원이 잘못 집계될까봐 이중삼중으로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카운트하는 헌병들의 모습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24개월 간 공군 헌병으로 근무했던 기자도 정문을 출입하는 민간인들을 점검할 때마다 틀리지 않게 기록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괜스레 기자 앞 헌병들의 어깨를 한 번 툭 쳐주고 싶었다.
DMZ-train 승무원 최영지(30)씨는 “아무래도 민통선을 지나다 보니 이북에 고향이 있거나 사연이 있는 분들이 많이 이용한다”며 또한 “서울에서 가까워 당일치기로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최씨의 말처럼 기자와 또래인 승객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주로 가족 단위이거나 노인들, 혹은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단출하게 5명의 승무원과 함께한 세 칸짜리 기차는 편안한 진행을 해준 승무원들의 노력으로 금세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 지정된 구역만 출입할 수 있고 혹시나 모를 보안사고가 발생할 시 모든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살벌한 경고 문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안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서울에서 불과 52km, 제3땅굴

도라산역에서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는 제3땅굴 발견 이후 설립된 도라부대(5967부대)를 지나 제3땅굴의 도보 관람로 앞에 관광객들을 내려줬다. 제3땅굴은 지난 1974년 귀순한 김부성씨의 제보로 발견한 땅굴로 규모 면에서는 압도적이지 않지만 그 위치가 서울에서 불과 52km 떨어진 지점이었다는 점에서 발견 당시 큰 충격을 줬다. 기자는 코레일에서 안보관광상품을 구매한 덕분에 추가적인 표 구매 없이 곧장 땅굴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는 직원의 말에 가지고 간 DSLR 카메라는 라커룸에 보관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전모를 쓰고 내려간 땅굴 속은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특히 그리 크지 않은 기자의 신장에도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했던 땅굴의 낮은 높이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이런 땅굴을 통해 몇km씩 이동해 대한민국을 침공하려 한 북한의 발상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이른 아침부터 도착한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땅굴 속은 중국어와 영어로 가득했다. 땅굴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저 가까운 관광지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을 체험할 기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DMZ라고 써진 촌스러운 하얀색 야구모자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이 조금은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함께 참여한 강순옥(45)씨는 “평소 아들이 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우리나라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왔다”며 이번 여행의 목표를 밝혔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제3땅굴 관광은 이러한 점에서 관광객들에게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개성까지 보인다, 도라전망대

▲ DMZ에 위치한 도라전망대

뒤이어 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이동하니 도라전망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망원경이 일렬로 늘어선 전망대로 다가서니 좋지 않은 기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과 판문역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관광객 허제원(29)씨는 “자연이 보존된 DMZ를 기대하고 왔는데 이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며 “이런 안보 상황을 잘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한 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흔히 DMZ라고 하면 생각나는 고라니나 그밖에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동물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자연이 보존된 넓은 평원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비무장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다소 씁쓸했다. ‘비무장지대’가 없는 그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지, 헌병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루빨리 조국통일의 염원을 이루기를 바래보았다. ‘대통령 각하의 경륜을 받들어 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고 조국통일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이 전망대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석상 앞은 기념사진을 찍는 줄이 끊이지 않았다. 과연 지난 1986년부터 서 있는 이 석상의 문구를 우리는 얼마나 신경 쓰고 살았는지. 통일의 염원이 이제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단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상황 자체를 해결하기보다는 그냥 안주하려고 하는 청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에 탁 트인 전경과는 반대로 마음이 착잡했다. 하늘색 UN 마크 옆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이라고 써놓은 도라전망대 옆 군건물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라 아쉽게도 들어갈 수 없었다. 20분간의 짧은 관람을 마치고 기자는 다시 서울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의 즐거움, 여행을 하면서의 즐거움, 마지막으로 여행이 끝난 뒤 여행을 추억하며 느끼는 즐거움으로 나뉜다고 한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 여정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안타까움은 어느 여행보다 크게 느껴졌다. 이것은 해외여행을 하며 느끼는 경이로움이나 신비로움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자기반성과 씁쓸한 현실에 대한 재인식을 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도라산역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분단 70주년을 맞이해 DMZ로 떠났던 여정, 대기실에서 서울역행 기차를 기다리며 ‘평양으로 가는 길’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니 ‘언젠가는 우리가 부산행 열차를 기다리듯 평양행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평양까지 한걸음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코레일 안보관광상품 : 왕복 기차표를 포함해 제3땅굴, 그리고 도라전망대를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코레일의 관광상품

▲ 도라전망대 너머로 보이는 개성지역과 이를 지켜보는 초소

글 김민호 기자
kimino@yonsei.ac.kr
사진 심규현 기자
kyuhyun122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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